당진시통합일자리센터 이경수 센터장의 고향은 신평면 거산리다. 천안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유치원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두고 심리상담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가정복지상담사로 자원봉사를 하다가 취업정보센터에 공채로 입사하게 된다. 현재는 취업을 알선하고 취업에 필요한 진로특강과 컨설팅, 적성검사 등 당진시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일자리 부족으로 당진의 젊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당진시통합일자리센터가 취업을 알선하는 동시에 약자들의 쉼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임종열 세무사는 당진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20여 년 간의 공직생활을 예산세무서 당진지서에서 마쳤을 뿐만 아니라 세무사로서 새 출발도 당진에서 했기 때문이다.현재는 25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원당동에서 세무업무대리, 세금 처리, 양도, 상속, 증여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맡아 납세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임 대표는 당진시소상공인연합회와 당진시이업종백인회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며 소상공인들을 돕고 있다. 임 대표는 “남은 인생 역시 당진에서 보낼 것”이라며 “세무사무소를 찾아주시는 분들과 소상공인들의 발전을 위해 힘쓸 것”이
원당동 출신인 박덕환 회장은 지난 2011년부터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당진시지회장을 맡고 있다. 21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한 그는 자진해서 국가를 위해 월남전에 참전했다. 1년 4개월 동안 월남전에 참전한 그는 귀국 후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지만 미국이 전쟁 당시 뿌린 제초제인 고엽제에 의해 아직도 심장 질환, 당뇨, 피부병 등을 앓고 있다. 고엽제로 인해 심각한 사람은 후두암, 폐암까지 생겨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고.박 회장은 “나라의 자유수호를 위해 참전한 것이기에 후회는 없다”며 “병을 얻었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이
송산면 금암리 출신인 이진규 대표는 20여 년 동안 운영하던 휴대폰 매장을 접고 지난해 쥬스식스를 개업했다.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취미라는 이 대표는 “나이를 한 살 씩 먹어가면서 사회단체 활동을 줄이고 나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며 “아내와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대표는 밝은사회당진클럽, 법무부 법사랑위원회 서산지역연합회 당진지구, 작은사랑을나누는사람들의 모임, 송사모 등 다양한 사회단체에 소속돼 있다. 기존에는 이보다 많은 사회단체에서 활동했지만 40대에 들어서면서 하나씩
순성면 갈산리가 고향인 안창규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당진에서 살아왔다. 그는 군대를 제대한 뒤 25살의 어린 나이에 왕창체육사를 개업해 40년이 넘도록 운영하고 있다. 또한 사회활동도 열심이다. 그는 과거 자율방범대 당진시연합대 사무국장과 부연합대장을 맡았으며, 당진읍재향군인회장, 당진향교 청년유도회장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한편 원도심상가번영회 초대회장을 맡았던 그는 원도심상가번영회의 사무실의 노후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안 대표는 “10년이 넘게 컨테이너를 상가번영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며 “비가 셀 정도로 노후돼
송악읍 한진리 출신인 김성식 대표는 상록초, 송악중, 송악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여행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에서 3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다. 서울로 다시 돌아온 그는 10년 동안 비디오 체인사업을 했고 2008년 고향인 당진에 내려와 여행사를 개업했다.“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했어요. 일본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가이드 활동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무작정 여행사를 개업했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일이 곧 여행이라는 사실이 너무 즐겁습니다.”한편 김 대표는 20년째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있는
고대면 슬항리 출신 하용구 교사는 당진정보고 세무회계 교사로 재직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체조 등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농사가 싫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공주사범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교사 임용 뒤 서산여고, 당진고 등을 거쳐 당진정보고로 발령을 받아 21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저로 인해 변화되는 학생을 볼 때가 가장 기쁩니다. 학생들에게는 무서운 선생님이지만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도 크죠.”그는 변화된 학생에 대한 일화를 털어놨다. 하 교사는 “일과가 끝나기도 전에 도망가고 지각을 일삼는 아이가 있었다”면
정미면 덕마리에서 태어난 육광균 씨는 17년 전 읍내동으로 이사왔다. 올해로 84세를 맞은 그는 덕마리에 살면서 신성대학교가 건립될 당시 1만 평의 토지를 기부했다. 또한 인근 토지보상 문제와 도로포장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역할을 했다.“신성대 설립자인 이병하 이사장이 당진상고 후배였죠. 후배가 고향에 대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말을 듣고 돕고 싶었어요.”그는 64세의 나이에 아내를 떠나 보냈다. 당뇨를 앓던 아내를 3년간 간호한 그에게 아내와의 이별은 큰 슬픔이었다. 하지만 외롭던 그에게 새로운 연인이 찾아와 제2의 인생을 살고있다.
순성면 아찬리 출신 이재성 대표는 53세 나이로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한 지 7년이 넘어 현재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조금 특별하다. 북창초를 졸업한 그는 초등학교 동창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일일이 동문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동문들로부터 글에 대한 호평을 받았고, 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글에 대한 흥미를 더욱 크게 느껴 지금은 시와 수필을 쓰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더불어 당진방통대 당진학생회 37대 회장을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엄중섭 당진시지회장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예산군에서 살았지만 대부분의 일생을 합덕에서 보냈다. 1978년 삼환기업에서 4년 동안 근무했으며, 중동국가 예멘의 신설도로 건설현장에서 근무했다. 또한 건재사를 운영하면서 기업에 건축자재를 납품했다. 건설현장 경험이 많은 엄 지회장은 2003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지금까지 토지와 공장입주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이외에도 산업단지미분양대책위원회 위원과 당진시지역총화협의회 회원, 부동산 공시지가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향
읍내동에 위치한 부림종합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성식 대표는 여러 사회단체에 몸담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6년 째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곡초등학교 총동문회를 비롯해 당진시체육회, 새당진라이온스클럽, 송산을 사랑하는 모임, 송악사랑회, 당진번영회, 당진시개발위원회, 법사랑 당진지구협의회, 당진시대 평화의집후원회 등을 넘어 스포츠 모임, 건축사 모임까지 합하면 20여 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당진지역 소식에 관심이 많다.송산면 가곡리 성구미포구에서 태어난 한 대표는 유곡초, 송
경기도 화성시가 고향인 황빈 씨는 16년 전 서해대교가 개통되면서 발전가능성을 보고 당진으로 내려와 송악읍 복운리 이주단지에 마트를 개업했다. 그러다 장고항 실치축제를 체험하기 위해 왔다가 어렸을 적 살았던 바닷가가 떠올라 장고항리로 이사했다.“처음 당진에 왔을 때는 공기가 맑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많이 악화된 것을 느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정 많은 이웃과 지역 공동체는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입니다. 지금은 가족들도 전부 당진으로 내려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녹아들어 살고 싶습니다.”한편 그는 대한적십지사
호서중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손범승 교사는 고대초, 당진중, 당진정보고를 졸업한 당진 토박이다. 원래는 경찰이 꿈이었지만 아이들을 좋아해 교사로 진로를 바꿨다. 손 교사는 그동안 당진정보고, 당진고, 합덕여고, 호서고 등을 거쳐 현재 호서중에서 아이들의 체육활동을 책임지고 있다.“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가끔은 아이들이 실수를 할 때면 안타깝습니다. 그럴 때에는 교사로서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한편 호서중학교는 스포츠클럽(동아리가 확대된 개념) 운영이 활성화돼 있다. 현재 24가지 클럽이 운영되고
5년째 가람종합가구전자를 운영하고 있는 최미용 대표는 당진초와 호서중, 호서고를 졸업한 당진 토박이다. 그는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가람종합가구전자는 중고 전자제품, 가구를 취급하는 매장으로 매일 아침마다 물건을 세척하고 배달하는 업무를 반복한다. 하지만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소상공인이 힘들어한다는 그는 자녀들의 대학진학과 노후대비가 꿈이라고 전했다.한편 그의 취미는 축구다. 바쁜 삶 속에서 축구는 가족 다음으로 위로가 되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현재 청룡축구회와 에반축구회에 소속돼 있는 그는 토요일마다 동호회 활동에 여념이
이재선 대표는 대호지면 조금리 출신으로, 20년째 같은 자리에서 영일목재를 운영하고 있다. 영일목재는 건축자재, 인테리어 내·외장재 등을 취급하는 업체로, 당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자재 매장이다.“인테리어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영일목재를 개업한지 어느덧 20년이 됐네요. 항상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그는 지난 2009년 제24대 당진시상공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집수리 봉사와 장학금 전달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새당진라이온스클럽에 소속돼 꾸준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이 대표는 10년 전 당
당진초등학교 이경미 교무부장은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귀향으로 6살때 합덕읍으로 내려왔다. 이후 우강초, 서야중·고를 졸업하고 공주교대에 진학했다. 현재 18년째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어릴 때부터 교사가 꿈이었다.교육에 몸담고 있는 친인척이 많아 자연스레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교사의 꿈을 품게 됐단다. 당진초에서는 현재 4년째 근무하고 있다.이 부장은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책을 통한 수업을 진행하곤 한다.이 부장은 “당진초에서 실시하고 있는 고전읽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고전을 통해 수업을 진행한다”며 “아이들이
전라남도 해남 출신인 이장제 대표는 21년 전 당진에 왔다. 그는 당시 발전되고 있는 당진의 모습을 보고 지인의 추천으로 당진에 안경원을 개업했다.“당진에 안경원이 많지만 안경사면허증을 갖고 저보다 오랫동안 안경원을 운영한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20년 노하우로 항상 친절하게 상담하고 있습니다”어렸을 때 미술을 배워 예술에도 관심이 많은 이 대표는 당진문화연대 회원으로 소속돼 있으며, 얼마전에는 당진환경운동연합에 가입했다. 이 대표는 “당진의 환경문제에 동참하고 싶었다”며 “제2의 고향인 당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읍내동 출신 당진토박이 김윤각 전 회장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5살 때 목발을 짚기 시작해 지금까지 한 쪽 다리를 사용하지 못한다. 장애가 그의 삶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는 본인과 같이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장애인체육회 이사, 충남지체장애인협회 당진시지회장 등을 맡아왔다.“학창시절 체육시간만 되면 교실에는 항상 저 뿐이었어요. 밖에서 뛰어놀던 친구들이 부러웠죠. 하지만 누구에게도 이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장애를 극복해야하는 것은 제 몫이었기 때문이었죠.”김 전 회장은
예산군이 고향인 최치운 대표는 27살 때 교회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당진을 알게 됐다. 당진으로 이사한 그는 서점, 창고형 식자재 매장, 문방구 등을 운영하면서 수십년째 자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오랫동안 자영업을 해 온 최 대표는 당진군기업인협의회 사무국장, 당진소상공인협의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내 소상공인을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한편 최 대표는 한보철강이 부도났을 당시 한보철강 정상화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한보철강의 분리매각을 반대하고 나섰으며, 현대제철이 인수할 수 있도록 일조했다. 최 대표는 “소상공인 뿐만 아
면천면 문봉리 출신인 김옥현 회장은 면천초, 면천중을 졸업했으며, 타향살이 한번 한 적 없는 면천 토박이다. 그는 그동안 문봉리 이장, 새마을지도자, 군의원 등을 역임하며 지역의 일꾼으로 살아왔다. 현재 김 회장은 배추, 무, 꽈리고추 등 농사를 지으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지역의 일을 하다보니 군의원까지 지내게 됐어요. 행정을 감시하고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을 한 것은 매우 보람찼습니다. ”그는 현재 면천은행나무사랑회 회장으로,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면천은행나무의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