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동에 거주하고 있는 심원택 씨는 시곡동 출신의 당진 토박이다. 당진초, 송산초, 유곡초, 계성초 등에서 교사로 40년 간 근무한 그는 20여 년 전 정년퇴임한 뒤 해루질로 대부분의 일상을 보냈다. 심 씨는 “아내와 함께 하루종일 굴이나 바지락 등을 잡는 것이 일상이었다”며 “많이 잡는 날엔 이웃과 나눠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하루라도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는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밭농사도 짓고 나무도 심으며 쉬지 않는 노후를 보내왔다. 심 씨는 “나이 70세가 넘어서도 아침마다 시곡동에서 당진장례식장까지
사기소동에서 태어난 성용모 학장은 지난 1990년 부학장을 시작으로 현재 4년째 대건노인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성 학장은 27년 전 학장을 맡았던 서금구 학장과 함께 당진의 노인문화 개선과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신합덕성당 봉사자, 대건신협 직원들과 더불어 대건노인대학을 설립했다.충남도 82개 노인대학 중 당진에만 20개의 노인대학이 있다. 대건노인대학은 충남도 최초, 당진 최초의 노인대학이다. 게다가 오롯이 자가출연금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성 학장은 “이곳에서 노인들의 경직됐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기쁘
아산시가 고향인 정상열 주무관은 지난 2002년부터 2년 동안 당진에서 군생활을 하며 당진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9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당진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정 주무관은 현재 홍보정보담당관 홍보팀에서 보도자료 작성과 부서별 시정 홍보 업무를 맡고 있다. 정 주무관은 “시민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을 알리고 공유할 수 있어 뿌듯하다”며 “가끔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겸허히 받아들이고 개선방안을 찾는다”고 말했다.“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근거있는 비판이라면 언제나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도 시민들이 체감할 수
한규석 회장은 지난해 1년 동안 당진청년회의소(이하 당진JC) 회장직을 맡았다. 올해에는 회장직을 내려놓고 충남세종지구 연수원장을 맡아 여전히 JC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한 회장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대체복무를 하면서 JC를 알게됐다. 그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복무하면서 공문을 통해 JC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한 회장은 “JC라는 조직이 굉장히 체계적이고 전통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지인의 추천으로 당진JC에 입회해 8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JC인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한 회장은 “의
면천면 삼웅2리 유원종 이장은 13살 때 상경했다. 서울에서 배제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에서 전기를 전공했다. 이후 대학교 조교생활을 하던 중 송악중·고등학교 전기·기술교사로 채용되면서 그리운 고향 당진에 내려왔다.하지만 고향에서의 삶도 잠시 뿐이었다. 중앙지 광고를 읽던 중 대전동아공고와 개포동에 위치한 수도전기공고의 공채 소식을 보고 바로 지원서를 썼다. 두 곳 모두 합격했지만 그는 당시 명문고등학교였던 수도전기공고를 선택했다. 그렇게 그는 서울로 다시 올라갔다.서울에서 전기 기술을 가르치며 33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명귀순 원장은 36년 전 충남 청양군에서 당진으로 이사해 고대면 당진포리에 정착했다. 이후 30년 동안 공직생활에 몸담았으며, 대호지면과 당진시청, 충남도청을 거쳐 정년 3년을 남겨놓고 명예퇴직했다. 남편이 뇌경색으로 인해 몸의 오른쪽이 마비돼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남동생의 건강악화로 힘든 삶을 살았다. 한참 가족들을 간호하면서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알게된 명 원장은 7년 전 그룹홈시설부터 시작해 몸이 불편한 마을 노인들을 돌보며 살고있다.“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항상 힘들고 갈 곳 없
거산공인중개사 이명혜 대표는 9년 전 당진에 터를 잡았다.그의 고향은 천안이지만 가족과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남은 인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당진으로 내려왔다. 15년 동안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는 이명혜 대표는 “지인의 사무실을 우연히 방문했는데 상담하는 모습이 상당히 전문적이었다”며 “그때부터 어느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공인중개사는 사람의 재산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죠.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손님의 장기적인 계획 수립에 일조한다는 생
윤명수 간사는 현재 송산면 주민자치위원회 간사와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1388 지원단장을 맡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특히 송산면 현안에 관심이 많다.윤 간사는 “송산면 유곡리에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유입되는 인구와 원주민 간의 화합을 통한 분쟁없는 지역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윤 간사는 당진시가 기업과 환경,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당진은 일본의 행정구역 분리정책을 참고해야 한다”며 “송산면과 현대제철을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분리해 주거지역과 기
김기서 국장의 고향은 우강면이다. 한 때 인천에서 객지생활을 했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공무원으로 시작해 현재 57세에 나이로 38년째 공직에 몸담고 있다. 김 국장은 합덕읍장, 면천면장, 신평면장 등 읍·면장으로 다수 활동하면서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에 특히 노력했다. 김 국장은 “합덕읍장 당시 상습침수구역에 간이펌프시설을 설치해 민원을 해결했다”며 “또 각 읍·면 주차장 신설, 산책로 조성 등 다양한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현재 김 국장은 당진시의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의회의
당진장례식장을 맨손으로 일군 서영훈 대표는 “13년 전 당진장례식장을 개업했다”며 “당시 당진에는 장례식장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지역으로 장레식장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열게 됐다”고 덧붙였다.“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자주봅니다. 10년 이상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장례를 치를 때면 매번 새롭습니다. 그럴 때마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또 사람의 생과 사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죠.”서 대표는 지난 2004년 부터 장애인후원회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올해 7대 회
이상호 당진시복지재단 사무국장 복지재단과 소통 필요“일자리 창출이 곧 참된 복지”당진시복지재단 이상호 사무국장은 2년 전 당진시복지재단에 입사했다. 복지재단에서 일하며 자신이 사는 지역의 소식을 깊이있게 알고 싶었던 그는 당진시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과거 부천시민신문 총무국장을 역임했던 그에게 당진시대는 더욱 특별하다. 이 국장은 “월요일이면 가장 먼저 당진시대를 읽는다”며 “신문이 오지 않으면 복지타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당진시대를 찾는다”고 말했다.하루 한 시간 정도 당진시대를 정독한다는 이 국장은 “지역신문
합덕읍 운산리 출신의 정애영 팀장은 24살 때 공직에 입문해 30여 년 동안 보건·위생 업무를 맡고 있다. 순성보건지소에서 첫 업무를 시작한 그는 합덕읍·정미면·면천면 보건지소, 당진시 환경과 위생팀 등 여러 읍·면·동에서 당진시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일했다. 그는 현재 신평보건지소에서 관리팀장으로 일하면서 예방접종, 건강증진사업과 더불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발굴해 돕는 일을 하고 있다.정 팀장은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남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쁨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당진에서 태어난 박소순 한진리 새마을지도자는 학업을 위해 어릴 적 고향을 떠나 인천과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서 청춘을 보냈다. 서울의 한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그는 항상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6년 전 쉰살이 넘은 나이로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그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한 고향의 모습을 보고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박 지도자는 “무수한 철탑과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로 망가진 고향의 풍경에 실망했다”며 “한진리를 위한 일꾼이 되고자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한진리에는 중외제약과의 농
정미면 승산리가 고향인 이선덕 대표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또한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지난 2004년부터 읍내동 북앤북에서 명함, 브로슈어, 도록 등 판촉물을 제작하며 10년 이상 출판업에 몸담고 있다. 이 대표는 “당진 토박이로서 고향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뜻 깊은 삶을 살고 있다”며 “북앤북을 출판업 전 분야를 다루는 종합출판사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또한 이 대표는 현재 한국자유총연맹 당진시지회 사무국장과 JCI 충남세종지구 감사, 당진시체육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고향 사람들과 소
강원도 화천군 출신인 박종육 대표는 12년 전 당진으로 내려왔다. 목사로서 활동하던 박 원장은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고자 당진에 터를 잡았다. 목회를 이어가던 그는 목사의 삶에서 나아가 ‘지역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와 화합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꿈꿔 왔던 그는 목회를 그만두고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요양보호사교육원부터 시작해 노인재가센터와 주간보호센터를 신설했으며, 현재는 좋은이웃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또한 박 대표는 지역 주민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외계층을 보살피는 것에 보람을
전라남도 구례 출신인 김동길 교사는 1997년 당진으로 거처를 옮겼다. 타지로 발령받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지내던 그는 교육 정책과 교사 복지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후 전교조에서 교직원의 권익과 학생의 민주적 교육을 위해 활동하던 그는 사무국장과 정책부장을 거쳐 현재 당진지회장을 맡고 있다.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오고싶은 학교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더불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조합원의 인원보다 조합원
읍내동 秀 참치의 선종석 대표는 20여 년 동안 일식당에 몸담고 있다. 전남 장흥 출신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친구의 제안으로 일식당에 처음 취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20살이었다. 선 대표는 서울 등 다양한 식당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당진에 내려와 10여년 동안 수 참치를 운영하고 있다. 선 대표는 “틀에 박힌 일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일식은 창의적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적성에 맞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선 대표는 얼마 전 시행된 일명 김영란법(청탁금지법)으로 인해 매출에 직접적
정대진 대표는 당진의 발전과 변화를 직접 보며 자란 토박이다. 당진초, 당진중, 호서고를 졸업한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인쇄공학과에 진학했다. 정 대표는 “인쇄는 매우 기초적인 산업”이라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학과였고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워낙 성격이 활발했던 정 대표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인쇄업체에 취업해 영업사원으로 활동했다. 영업이 적성에 잘 맞았지만 모친의 권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에 매진했다. 그는 첫 시험에서는 낙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에 합격했다.
박종천 대표는 원당동 출신으로 50년 째 당진에서 살고 있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사회체육을 전공했다. 대학시절부터 골프에 관심이 많았지만 1990년대는 골프가 대중화 되지 않아 제대로 배울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91년 스카이힐골프센터를 개업하게 됐다. 박 대표는 “박세리 선수가 활약하기 전에는 골프가 대중적인 운동이 아니었다”며 “당진에 골프를 대중화 시키기 위해 실외 골프연습장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스카이힐골프센터는 박 대표의 동생 박종두 프로를 비롯한 잭니클라우스 아카데미(골퍼 잭니클라우스의 노하우를 바탕으
DS엔지니어링 이철수 대표는 당진에서 나고자란 읍내동 토박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공계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경기도에 위치한 한경대학교에서 토목공학과를 전공했다. 이후 한국농어촌공사에 취업해 개발부서 토목직으로 10년동안 근무했다.당시 측지기사 1급 자격증을 갖고 있었던 이 대표는 개발팀장까지 빠르게 승진했다. 이 대표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나만의 설계소를 갖고 싶었다”며 “36세의 나이로 이철수토목측량설계공사를 개업한 것이 지금의 DS엔지니어링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곳을 거쳐간 당진의 토목설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