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제게 물었습니다. ‘문학이 무엇이냐?’고. 저는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대답했어요.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는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처한 환경을 직시하고,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만,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죠.”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견고한 벽이 놓여있던 시절, 당시 미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작가는 정치권력에 의해 모진 고초를 겪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중앙정보부는 그에게 “다시 글을 쓰면 손을 잘라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살배기 우리 딸 서현이. 잘 먹고 잘 자라 건강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서현이가 악성종양, 소아암에 걸렸단다. 그 여린 살결 위로 칼을 댔다. 독한 항암치료에 머리카락도 빠졌다. 서현이가 물었다. 내 머리 위에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것저것 궁금할 나이, 밖으로 나가 한창 돌아다닐 나이인데, 서현이가 있어야 할 곳은 병실의 작은 침대 위다. 하지만 그 마저도 경제적인 형편으로 내쫓길 상황이다. 내 딸 서현이는 작은 몸으로 하루하루를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데 지원을 해주기 어려운 부모는 억장이
“한진포구에서 상록초등학교까지 신작로를 걸어 다녔어요.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자연환경만큼은 참 풍요로웠죠. 겨울엔 굴 따고, 여름엔 바지락 캐던 한진 앞바다가 많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진의 모습은 너무 많이 바뀌었어요.”송악읍 한진리가 고향인 박건도(고향 친구들에겐 ‘재순’이라는 옛 이름이 더 친숙하다) 대표는 염전과 굴양식장 등이 있던 고향의 바다가 그립다. 심훈 선생이 를 집필하면서 본 한진 앞바다를 품고 자란 그는, 이제 바다를 건너 해외를 오가며 무역·유통 사업을 하고 있다.가스 관련 사업하며 대전에 정착송악중
“당진은 내 고향 황해도 옹진과 많이 닮아 있어요. 서해안에 대한 향수가 늘 마음 속에 있었죠. 산과 바다, 들판이 모두 있는 자연환경은 고향을 생각나게 해요.”아나운서 이상벽 씨가 당진시민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10년 전 우연히 소난지도에 오면서 당진과 인연을 맺은 그는 건축박람회장에서 구입한 캡슐하우스를 소난지도에 설치하고 종종 이곳을 오갈 정도로 고향을 닮은 당진이 좋았다. 소난지도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캡슐하우스가 ‘이상벽의 집’이라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곳을 기도처로 삼고 싶다는 한 스님께 넘겨드린 뒤, 노후를 보낼 곳
채운할머니 2등으로 수상한 박상례(90·당진1동) 씨가 시상금으로 받은 30만 원을 전부 해나루시민학교에 전달했다. 그는 “채운할머니 대회에 나갈 때부터 수상을 하면 해나루시민학교에 기부하고 싶었다”며 “이 늦은 나이에 학교에 다니고 배울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해나루시민학교에 고맙다”고 말했다.새우젓 푹푹 담아다른이에게 밥 한 술 주기 좋아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채운할머니가 지금 살아 있다면 박상례 할머니의 모습과 꼭 닮았을 것이다. 원당동에서 태어난 박 씨는 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딸이었다. 1926년에 태어난
“5살의 나이에 아버지께 학교를 보내달라고 졸랐어요. 제 성화에 못 이긴 아버지는 결국 저를 학교에 보냈지만 선생님은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죠. 아버지의 부탁으로 정식 입학생이 아닌 청강생으로 저를 받아줬던 거예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아버지께 제 이름도 부르게 해달라고 다시 졸랐습니다. 처음으로 선생님께 이름이 호명됐을 때 ‘네!’라고 대답하면서 느꼈던 흥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세상 떠난 아버지 여전히 그리워인천광역시 남구를 이끌고 있는 박우섭 구 청장은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고향 당진에
지난 8일, 오후 9시 40분 경 당진주유소 앞에서 두 승용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충돌한 두 차량은 각각 한성아파트와 농협 방향으로 밀려났다. 그 때 사고 차량이 인도를 걷던 한 여고생을 덮쳤다. 이윽고 학생은 몸이 반으로 접힌 채 차에 깔려 살려달라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사람들이 모였다. 특히 아들과 함께 있었던 강형모 씨는 앞장서 승용차 앞을 들었고 아들은 차 뒷부분으로, 그리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합세해 차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힘이 모아지자 사고가 발생한 지 1~2분 만에 학생을 구출했으며 현재
“그 옛날에는 보덕포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가곤 했어요. 인천이 항구도시인데다 당진과 인천은 서울보다 가까워 출세하려고 많이 갔습니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그 때가 벌써 50년 전이네요.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갔네요.”김도현 대표는 현재 인천 남동구에서 30년 동안 백진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권유로 한약사의 꿈을 품었다. 녹록치 않았던 집안 형편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하지만 가슴 속에 품은 한약사의 꿈을 언젠가는 이루겠다고 결심했다.추억 가득한 고향어린 나
단식 1승과 1패, 복식 1승과 1패. 제97회 전국체육대회 테니스대회에서 세종시와의 스코어는 2승 2패로 승부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먼저 10점을 획득하면 우승하는 슈퍼타이브레이크까지 경기가 이어졌다. 당진시가 점수가 나면 곧 이어 세종시가 점수를 가져갔다. 그렇게 11대11로 매치포인트까지 이르렀고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그때 아쉽게 한 점을 잃으며 13대11로 당진시가 3위를 기록했다.지난 11일 오전 9시에 시작된 경기는 오후 4시30분까지 이어지며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당진시청 테니스팀의 경기가 있었던 그 시각 유
“사선(활을 쏘는 자리)에 들어서자 긴장을 떨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상대 선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어요. 나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떨렸어요. 뒤에서 응원하고 다독여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죠. 우승이 확정된 순간 속으로 환호했요!”아직 앳된 이승호 선수의 손 마디마디는 이미 많이 닳았다. 대회 준비를 위해 수도 없이 잡았을 활에는 그의 지문이 깊게 새겨져 있을 정도로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전국체전서 ‘金’제9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남이 전체 2위를 차지한 가운데 당진에서는 서야고 1학년 이승호 선수가
채운동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조선시대 시절, 지금의 채운동에는 북창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북창에는 당시 세금으로 걷던 쌀을 서울로 올려 보내기 위해 잠시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북창 앞까지는 바다였는데 서울과 북창을 오가던 뱃사람들이 쉴 수 있는 주막이 하나 있었다. 주막집 딸의 이름이 채운이었고 마음씨와 용모가 아름다워 칭찬이 자자했다. 채운 아가씨는 배고픈 뱃사람들에게 밥을 고봉으로 퍼주고 국도 엄마보다 두 세 국자 더 퍼주곤 했다. 그러던 채운 아가씨가 혼례를 올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뱃사람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고대면 큰 산에 달걀귀신이 있다고 겁을 주곤 하셨어요.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진달래꽃이나 소나무 새순을 따먹곤 했는데 아이들이 야생화를 먹고 배탈이 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거짓말을 하셨던 거에요. 그 시절 함께 했던 선생님과 동네 친구들 모두 보고 싶네요.”김기원 교수는 고대면 대촌리 선동에 살았다. 고대초등학교를 다녔던 그는 학교를 갈 때마다 산을 넘어야 했다. 가는 길목마다 친구들을 하나 둘 만날 수 있어 심심하지는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마을별로 운동장에 모여 함께 하교하곤 했는데 그의
“가을이 되면 바가지를 들고 집 주위의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알밤을 줍기 위해 아침잠을 설치던 일이 생각나요. 또 감나무에 빨갛게 달린 감을 따던 일, 겨울 밤 화롯가에서 할아버지와 먹던 연시의 맛도 그립네요. 어린 시절 당진에서 보낸 추억이 참 많아요.”장항선 열차 보면 고향 떠올라면천면 율사리에서 태어난 이희자 (사)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회장은 당진에서의 추억이 많다. 한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면천국민학교(현 면천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했던 그는 “서울에 살면서도 여름방학이 되면 동생들과 함께 장항선 열차를 타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었어요. 평생 동안 농사를 지어오면서 농민들이 좀 더 편리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왔어요. 그중에서 논물을 관리하는 건 벼농사에서 아주 중요한 일인데, 쉽게 물꼬를 조절할 수 있게끔 논물 조절기(다목적 물꼬)를 만들게 됐죠.”박종세 씨(신평면 매산리·54)는 최근 논물 조절기를 개발했다. 논에 물을 대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논물 조절기를 언막이(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막아 쌓은 둑)에 설치한 뒤 ‘드르륵’ 하고 다이얼만 돌
석문면 통정리에 위치한 인주리 사진작가의 작업실로 가는 길은 정겹다. 알록달록한 꽃들이 인 작가를 찾는 이들을 반기고, 지나다니는 길고양이 마저 인 작가의 작업실을 들리기도 한다.그의 작업실 옆에는 300년이 넘은 기와집이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그의 할아버지가 나고 자란 집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집인 만큼 동네 이웃들에게 인 작가의 집은 ‘석문면 통정리 기와집’이라고 불렸다.아버지의 부재한편 인 작가는 현재 아미미술관에서 현대미술 경향읽기展에 참여하고 있다. 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아버지
소위 ‘잘 나가는’ 형제였다. 한 번 뛰었다 하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면천면 송학리 출신의 인치석·인치일 형제는 달리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두 형제는 선수 생활을 거쳐 국제대회 심판까지 맡고 있다. 이제는 교단에 올라 미래를 달릴 아이들에게 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잘 뛰는 남매들원래 잘 뛰는 집안이란다. 7남 1녀 중 넷째와 다섯째인 인치일·인치석 형제는 물론 형제들이 모두 발이 빨랐다. 지금은 사라진 죽동초등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릴 때면 남매들이 가져오는 공책만 100여 권에 달
[편집자주] 제2대 당진시의회 후반기 원 구성이 완료된 가운데 안효권 시의원이 산업건설위원장으로 자리했다. 본지에서는 각 상임위원장을 만나 지역 현안을 돌아보고 의정활동 계획에 대해 담고자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제2대 시의회 후반기를 마쳤다. 지난 전반기 의정활동에서 아쉬웠던 점과 앞으로 후반기에 주력할 활동은 무엇인가?화력발전소와 제철소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와 송전탑으로 인한 주민들의 정신적·신체적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또 이를 둘러싸고 주민 간의 갈등도 심각하다. 의원의 역할은 행정과 시민 또 기업과 시민, 시민과 시민 간의
SBS를 나와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지 어느덧 8년째다. 영상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들어 간다는 매력에 빠져 PD를 시작했다. 영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 것은 여전히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댜큐·제품홍보 영상 등 제작읍내동에서 태어난 김병철 PD는 외주제작사 메타포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지 8년만에 업계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업체로 성장시켰다. 과거 SBS PD로 일할 당시에 생생정보통과 기아체험 희망TV, 모닝와이드, SBS 스페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6년 동안
날실과 씨실을 치는 북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오늘도 이정의(고대면 슬항1리·73) 씨는 청삼가공농장에서 베틀 앞에 앉아 베를 짠다.이렇게 그는 반백년 가까이 삼베 짜는 일을 해 왔다. 이제 이 씨의 인생에서 ‘삼베’는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삼을 삼다가 야단맞기도그가 입고 있는 옷부터 천장에 설치된 대나무 줄기까지 집안 곳곳에는 길쌈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씨는 “삼베 짜는 것을 마을 어르신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며 “처음 배웠을 때는 굉장히 어려웠고 복잡했다”고 말했다. 이어 “삼베를 삼는 것부터 어려워
서산에서 활동하던 유진범 변호사가 당진 읍내동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지난 10년 동안 법무법인 한밭, 법무법인 서산에서 경험을 쌓아온 유 변호사는 행정·민사·형사 등 다양한 사건을 맡아 재판에 참여했다. 변호사로서 더욱 큰 꿈을 펼치기 위해 당진에 왔다는 그에게 당진은 무척 친근한 곳이다. 서산에서 일했을 당시 당진 관련 사건을 다수 맡았기 때문이다.“당진은 변호사들에게 ‘개척되지 않은 도시’와 같아요. 시로 승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으로 도시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