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면 삼월리 출신의 이영종 DH스틸 계장은 송산초, 송산중, 호서고를 졸업했다. 예산농업전문대(현 공주대)에서 원예를 공부했던 그는 경기도 성남에서 원예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사업을 정리하고 35살 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고, 10여 년간 현대제철 협력업체에서 근무해왔다.“과거에 비해 당진은 많은 발전을 이뤄냈어요. 각종 인프라들이 많이 구축됐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아요. 청년·중년들이 갈 만한 곳이 없어요. 더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마련돼야 해요.”오랫동안 당진시대를 봐온 이 계장은 애정 어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 아이들의 개학도 한 달 넘게 연기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재 임시휴관을 이어가고 있는 당진시립도서관에서는 재개관 전까지 안심도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앙도서관과 합덕도서관, 송악도서관을 통해 대면접촉 없이 도서를 대출할 수 있다. 각 도서관 계정 메일로 도서를 신청하고 대출 가능여부를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를 통해 확인한 뒤, 대출증을 지참해 각 도서관
당진토박이의 김선미 대표는 삼봉초, 석문중, 당진여고(현 당진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났던 그가 25년 만에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함께 왜목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현재는 석문면 장고항리에서 카페이자 공방인 ‘소풍 가는 날’을 운영하고 있다. 따뜻한 봄 날씨에 그의 손이 분주하다. 꽃차 카페인 만큼 계절과 시기에 맞춰 꽃봉오리를 따야한다는 그는 “꽃차는 꽃봉오리로 만드는데 시기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요즘은 목련을 따고 있고, 이후엔 해당화, 아카시아 등을 채취할 수 있다”고
박인규 전 우강면개발위원장-1954년 송악읍 도원리 출생-송악초·송악중 합덕농고(현 합덕제철고) 졸업-전 우강면 세류2리 이장-전 우강면이장협의회장-전 우강면개발위원장-전 우강면주민자치 위원 여전히 그리운 내 동생우강에서 일평생을 살았지만, 태어난 곳은 송악읍 도원리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0년도에 우강면 세류리로 이사왔다. 다니던 송악중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1년 동안은 큰아버지 댁에서 살면서 통학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당시 이사 왔던 바로 그 터다. 이 사진은 이사 직후 6남매(명규·인
허지원 대표는 지난 2011년 당진버스터미널에 카페 톤을 문 열었다. 허 대표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단 하루도 카페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매일 아침 8시에 문 열어 밤 9시에 문을 닫으며 터미널을 오가는 사람들을 만났다.카페를 운영하던 9년의 시간 동안 그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두 자녀의 대학을 졸업했고, 마라톤을 시작해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 10회 완주에 성공해 명예의전당에 입성했다. 지난해에는 오랜 꿈이었던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한다. 오는 4월 당진버스터미널을 떠나
이종일 농촌지도자 당진시연합회 정미면회장은 정미면 신시리 출신으로, 결혼 후 가정을 꾸리면서 덕마리로 이주했다. 덕마리에 거주한 지 40년이 됐다는 그는 덕마리의 터줏대감이다.이 회장은 새마을지도자를 시작으로 지역 내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덕마리 이장으로 10년 동안이나 일했다는 그는 정미면이장단협의회장, 정미면개발위원회 부회장, 새마을지도자 정미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고.“특히 덕마리는 타 지역에서 온 귀촌인들이 많고, 신성대가 있어 하숙·자취생들도 여럿 있죠. 원주민과 이주민들은 이웃사촌이지만 서로 교류하는 게 없어 안타
‘죽는다는 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연결된다. 죽음을 앞뒀다고 생각하면,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산다는 것은 곧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고, 죽는다는 것은 삶의 완성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당진남부사회복지관 신윤호 부장은 삶과 죽음을 생각게 하는 책 를 추천했다. 이 책은 췌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랜디 포시 교수(카네기멜론대학 컴퓨터공학과)의 마지막 메세지를 담고 있다.마흔여덟 젊은 나이에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랜디
지금은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노인이지만, 꽃처럼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최병문 씨가 21살 때, 아내 인정복 씨가 19살일 때 결혼했다. 남자는 신평면 신송리에서 나고 자랐고, 여자는 우강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땐 어른들이 맺어주는 대로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결혼식을 올리던 시절이었다.“어른들끼리 사진을 주고받았는데 나는 안 보여 주는 거야. 감히 사진 좀 보여달라고 말도 못하던 시절이었지. 벽장 안에 숨겨 둔 사진을 내가 몰래 꺼내봤지. 괜찮더구만.” (아내 인정복 씨)결혼식 때 서로 맞절을 하면서 흘깃 쳐다본 게 처
당진 토박이인 임광빈 당진중학교 교감은 송산면 부곡리 출신으로, 송산초, 송악중, 천안고를 졸업했다. 당진중학교로 오기 전까지 서산에서 근무했던 그는 지난해 9월 당진중으로 발령받았다. 그동안 줄곧 고등학생을 가르쳤다는 임 교감은 “중학생들은 물론 중학교 교사들이 참 순수하다”며 “중학교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시내권에 있는 학교는 학급이 많아요. 학급이 많으니 수업시수도 많고 그만큼 일이 많아 교사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해요. 저는 교사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행복’이에요. 교사가 행복해야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최대한 외부활동을 줄이고 사람들을 적게 만나는 것이 코로나19 예방에 상책인 요즘, 이 혼란의 시기가 지나갈 때까지 책과 함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한편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당진시립도서관 13개소(중앙·합덕·송악도서관, 작은도서관 10개소)는 대출·반납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서비스를 축소 운영키로 했다. 평일 운영시간을 오후 7시까지로 단축하고, 자유열람실(학습실)과 동아리방과 두근두근 책버스 운영을 중단했으며, 도서관에서 운영 중인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일시 휴강한다.
“당진시대가 ‘처음처럼’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창간 정신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지역사회를 위해 언론의 역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지역의 밝은 소식을 전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힘써주세요.”예산 출신의 안병욱 ㈜동서기공·㈜알테크노메탈 상무가 당진에 온 지도 15년이 흘렀다. 직장을 위해 당진을 찾았던 안 상무는 송악읍 가학리에 터를 잡았고, 줄곧 이곳에서 삶을 이어왔다. 안 상무는 “그동안 당진에는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며 “그중 송악읍은 교통의 요충지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도시가 성장해, 앞으로 당
김정웅 대호지면 송전리 전 이장은 농사꾼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벼, 콩, 고추 등 농사를 짓다가 현재는 꽈리고추를 재배하고 있다. 바쁜 농사일에도 그는 마을 일까지 살뜰히 챙겼다. 그동안 송전리 이장, 새마을지도자, 노인회 총무 등을 맡으며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했다.마을의 토박이로서 김 전 이장은 한 가지 소망을 전했다. 그는 “현재 마을 숙원사업은 송전리 마을회관에서 장정삼거리까지 2km 구간을 2차선 도로로 확장하는 것”이라며 “인근에 석산 개발로 화물차들이 다니는데 주민들의 안전이 염려된다
인생예찬양광모살아 있어 좋구나오늘도 가슴이 뛴다가난이야 오랜 벗이요슬픔이야 한때의 손님이라푸르른 날엔 푸르게 살고흐린 날엔 힘껏 산다.한때는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거나, 옆구리에 시집 한 권씩 끼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시 한 구절 정도는 읊을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시가 잊혀지고 있다.누군가의 백 마디 조언보다 시 한 구절이 주는 위로가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시인이 글을 썼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행과 연 사이의 여백이 주는 위로를 느껴본다면 왜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가 필요한지 알
정미면 봉성리 출신의 심장섭 (사)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이하 당진문협)장은 1985년도부터 우체국에서 근무했다. 면천우체국에서 시작해 순성, 당진을 거쳐 올해 초 정미우체국에서 집배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공직생활을 은퇴하고 삶의 여유를 찾았을 것만 같지만 그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다.그는 등단한 전문 작가들로 이뤄진 당진문협에서 지난해부터 지부장을 맡아 지역의 문인들을 대표하고 있다. 심 지부장은 “어느 조직이든, 회원들 간 화합이 중요하다”며 “회원 화합을 도모하고 당진문협을 특색있게 이끌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시인이기도 한 심
마을 노인들의 사랑방 속사경로당38년 만에 꺼내본 ‘새마을지도자증’ 고대면 성산1리에는 경로당이 두 곳이 있다. 보통 마을에 하나씩 있는데 성산1리는 지난 2010년 기존 경로당과 별도로 ‘속사경로당’이 지어졌다. 기존의 마을 경로당은 1·2반 노인들이 이용하기에 쉽지 않았기 때문에 2km가 넘는 거리에 위치해 있고, 가운데 들판이 있어 먼 길을 둘러가야 했다. 눈, 비가 오면 1·2반 노인들은 전혀 경로당을 이용할 수 없었다.이 같은 불편이 계속되면서 2010년 1·
면천면 문봉리 출신의 조종형 당진시전통민요보존회장은 목회활동을 위해 1968년도에 고향을 떠났다. 16년 간의 목회활동을 마치고 당진에 돌아온 조 회장은 당진문화원 이사, 게이트볼·그라운드골프 정미면지회장, 노인대학 강사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그중에서도 노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자 12년째 노인대학 강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강의가 많을 때는 15곳에서 강의했는데, 지금은 10여 군데로 줄였다. 매번 똑같은 강의를 하고 싶지 않다는 조 회장은 “다른 내용으로 강의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노인대학에서 특강을 한 뒤, 노인
석문면 교로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다,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인천에서 자랐다.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대에 입학했다. 기계체조를 했던 나는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인천에서 꽤 잘나가던 재생타이어 공장을 운영했는데, 생산라인에서 부품이 튕겨져나와 머리에 떨어졌다고. 지금도 이마 한쪽이 함몰돼 있다. 다행히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9년 만에 후유증으로 길에서 쓰러져버렸다. 병명도 없었다. 하릴없이 경기도 이천에 거처를 마련하고 요양을 하면서 끄적끄적 낙서를 하기 시작한 게
조난희 상담사는 당진에서 나고 자란 당진 토박이다. 신평면 남산리 출신인 그는 신평초와 신평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심리상담을 전공했다. 아동·청소년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성장기인 아동·청소년이 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리상담을 공부했다.이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상담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 내 학생들의 심리적 어려움과 부적응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예방하며 적응력 향상을 돕는 ‘Wee클래스’ 상담사로 근무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당진
기존의 관념과 생각을 깨뜨리는 ‘도끼’ 같은 책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나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트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도끼 자국들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찌 잊겠는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던, 그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카프카의 말을 인용해 라는 책을 쓴 박웅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생각을 깨고 사고의 체계를 뒤흔드는 것.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의 말처럼, 깨지고 깨부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인류를
합덕읍 도곡리 출신의 윤지현 대표는 15·17·18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17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정책보좌관으로 있기도 했고, 자유민주연합 당진시지구당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계에 입문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윤 대표는 당진시개발위원회, 한국자유총연맹 당진시지회, 당진항만관광공사, 합덕 청년회의소 특우회, 한국농업경영인인회 합덕읍회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온 가운데, 6년 전 삽교호 관광지에 아들이 운영하던 버그네횟집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윤 대표는 29살 젊은 나이에 합덕읍 도곡리 이장을 맡아 마을 일을 돌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