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오래 사는지는중요치 않습니다.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죠.내가 깨달은 지혜를후대에 물려주는 삶......그것만이 진정 가치 있는삶입니다.’ - 주인공 밥 티드웰 - 겨울 내내 잠들었던, 생명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3월...옷깃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살결에는 차갑지만 신선하게 만져주는 느낌이다.새삼 신선한 바람이 나를 자극시켜 잠시 바쁜 일을 뒤로 하고 싶지않는가?그런 맘이 든다면 ‘청소부 밥’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추천한다.어느누구나 바쁜 일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바쁜 일상이 누굴위함인가 자문할 때가 있다.왜? 뒤도
사진첩을 들여다보다 귀한 사진을 찾게 됐다. 첫 번째 사진이 바로 그 소중한 사진인데 1960년 석문초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서 열렸던 학예회에서 여러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 봐도 저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연극을 했던 우리는 ‘파랑새의 죽음’이라는 극을 준비해 의상을 만들고 맹렬히 연습했었다. 난 저 당시 꽤 비중있는 조연을 맡았었다. 앞줄 맨 오른쪽에 서있는 녀석이 나다. 내 뒤에 서 계신 분은 담임 선생님이시다. 두 번째 사진은 내가 재건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학생들과 찍은 사진이다. 난 1968년부터 1975
“당진에 있는 세 개의 지역언론신문의 목소리가 다 비슷한 거 같습니다. 칼럼을 쓰는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인 건지 차별성을 못 느끼겠네요.” 전 당진학원연합회장이자 새서울캠퍼스의 이사장 안길훈(48)씨는 당진시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차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으론 이해도 되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또한 그는 “당진시대가 더욱 당진군의 생활현장을 구석구석 취재해서 군민들의 알 권리와 군민화합에 기여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이사장은 창간이래부터 당진
예전 사진들을 보며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니 마치 자서전이라도 쓰는 기분이다. 첫 번째 사진은 1985년도 도 대회를 앞두고 유도부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뒷줄에 맨 오른쪽이 나다. 어릴 적부터 씨름, 야구 등 각종 운동을 많이 했었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타지역 고등학교를 진학하려다 가족들의 반대로 호서고등학교로 가게 됐다. 사진 속 친구들은 지금도 알고 지내는데 특히 뒷줄 맨 왼쪽은 송악중기 문성현인데 가장 친한 친구이다. 이때 도 대회에서는 단체전 1위를 했었다. 나는 유도를 하면서 도 대회에서
“신문이 제때 전달됐으면 합니다. 월요일에 나온 신문이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배달되어 다른 곳에서 보고 올 때도 있어요. 물론 배달과정에서 조금 늦어질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조금 더 신경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진읍에서 삼보조명을 운영하고 있는 박보혁(37) 대표는 당진시대를 한시라도 빨리 받아보고 싶은데 배달이 조금 늦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본
어느 날 우연히 전화가 걸려왔다. 당진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동아리인 당진글고운주부독서회의 제2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해달라는 전화였다. 내가 당진도서관에서 맡고 있는 직책이 있어서 참석 대상의 일부였기 때문에 전화를 했으리라. 그런데 당일 전화가 온 터라 계획된 시간표가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기에 부득이 못 나가겠다고 거절을 해야만 했다. 그랬더니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를 하는 장소로 와서 함께 식사하자고 재차 말씀을 하시길래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식당 한켠에 연세도 지긋하신 분이 다소곳이 앉아계셨다.
교직생활을 한 지 벌써 33년.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소풍이며 체육대회 등 행사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아이들을 가까이 해서 그런 지 추억도 많고 나도 젊게 지내는 것 같다.첫 번째 사진은 1983년 10월에 반 아이들과 영랑사로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도 이제는 안경을 쓰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어떤 아이들인지 알아볼 만큼 세월이 흘렀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니 이 학생들은 지금쯤 40대 초반쯤 됐겠다. 명절이면 선생님과 술 한 잔하고 싶다며 연락하는 제자들이 있다. 아이들은 30~40대 젊은이들인지라 나 혼자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를 잘 알아야하고 이를 아는데 신문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다”는 원당초등학교 최항묵(61) 교장. 그래서 그런지 그의 책상 옆에는 그날의 신문이 가득 쌓여 있다. 최항묵 교장은 중앙일간지부터 지역신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만 큰제목과 리드만 훑어볼 때가 많은 일간지에 비해 지역신문인 당진시대는
오랜만에 빛바랜 추억의 학창시절 사진 한 장을 보다가 기회가 되어 몇 자 적어본다. 첫 번째 사진은 1972년도 당진상고 3학년 재학시절 장고항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에야 모두 없어져 버린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른바 ‘풍선배’라 불렸던 돛배들이 무척 많았었다. 돛배 중 장고항에 정박해있던 돛을 내린 황포돛배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이가 구자찬이라는 친구다. 이 친구는 전에는 영등포구청에서 근무했었는데 지금은 한동안 연락이 없어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친
우리는 평생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관계 능력은 성공으로 가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자질이다.그러나 인간관계라는 것은 복잡미묘하고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가는 것만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없는 것같다. 항상 같은 기술로 상대를 대할 수 없고 각각의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의 묘를 살려야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남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자신의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또한 자신을
최근 창업열풍으로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당진요리학원을 운영하는 진수매(32) 원장은 지금처럼 겨울방학기간에는 취미로 요리를 배우려는 주부들보다 자격증을 따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진 원장은 어렸을 적부터 그냥 요리가 좋아 공부하다가 2년 전에 요리학원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신문이라고 하면 좀 딱딱한 느낌이 들잖아요. 근데 당진시대는
서점에 즐비한 책들 가운데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강박관념’ 때문이다.‘강박관념’이란 말 그대로 마음속에서 떨쳐 버리려 해도 떠나지 아니하는 억눌린 생각 같은 것을 말한다.나에게도 이런 강박관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진리탐구’에 대한 것이다.하지만 나에게는 그 같은 능력이 별로 없는 것 같다.배경지식이 많지 않은데다 세상을 보는 눈 역시 단출하기 그지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리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삶이 훌륭한 삶일까’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것 같다.서른 하나라는 나이를 먹기까지
내 한평생을 한마디로 압축하라고 한다면 ‘고향’과 ‘농사’로 표현하고 싶다. 신평면 신당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새마을지도자를 비롯한 각종 사회활동 또한 나의 삶의 한 축이다.첫 번째 사진은 내 나이 24살 때 결혼식 모습이다. 군대에 있을 때 결혼한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부대에서 5명의 ‘대표단’(?)이 왔었다. 신식 결혼식이 한참 붐을 타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할아버님께서 손자에게는 최고의 식이 되어야 한다고 하셔서 전통혼례식을 올렸다. 할아버님 덕분에 이렇게 소중한 사진을 갖게 됐다. 두 번째 사진은 아내(이승예
여한 없이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곳, 연탄화로 구이를 20년 넘게 고수하고 있는 ‘원조삽교곱창’은 저녁시간만 되면 발 디딜 틈이 없다. 당진에서 22년간 원조삽교곱창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흥태(51)씨는 14년 전 당진시대가 창간한 이후로 계속 당진시대와 함께하고 있다. 김씨는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다가 대단한 미식가여서 맛집이 소개된 기사나 신설상
무더운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어느 여름날, 박노해 시인의 “여기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라는 낯선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구마을 평화운동을 펼치는 박노해 시인이 전쟁 직후의 레바논에 들어가 처절한 현장의 진실을 시와 글, 사진으로 담아 낸 이 책에서 그는 무자비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와 민간인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레바논 전쟁의 이면에는 무관심 대 관심의 전쟁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탐욕에서 비롯돼 강대국의 비호가 부추긴 불의한 전쟁을 결정
유년기에, 그 보다 더 상장한 청년기에 자신만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것일지라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꿈이요, 이상일 수 있다. 그게 무슨 돈이 되냐, 밥이 되냐 할지 몰라도 먼 훗날 가슴속에 잔잔하게 남아있는 추억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첫 번째 사진은 31년전 아내(최은식, 55)와 결혼식을 올릴 때 모습이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행복예식장에서 올린 결혼식이었다.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의 모습을 다시 보니 정말 새롭다. 당시에는 행복예식장에서 대부
식당들이 줄줄이 문을 닫던 1998년 IMF시기에 당진읍에 ‘설악칡냉면’의 문을 연 맹현재(42)씨. 30여년 동안 살던 고향인 천안을 떠나 객지였던 당진으로 온지 벌써 10년째 된다. 정치, 경제를 큰 화두로 다루는 일간지들에 비해 사회적인 이슈를 크게 다루지는 않지만 소소한 지역 이야기를 듣고 싶어 당진시대를 구독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당진시대를 보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역의 소식들을 알 수 있어서 좋지만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이 많다며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너무 행사
중국작가 위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서다. 킥킥거리며 웃다가 어느새 주루룩 눈물 흘리며 읽었던 ‘허삼관 매혈기’ 이후 십년만에 나온 작품이 다. 여기서도 작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3권짜리 소설을 단숨에 읽게 만들었다. 고백컨대 나에게 중국소설은 언제나 혼란스럽다. 김용의 무협지 ‘사조영웅전’에서부터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는 물론 위화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의 소설속 인물들은 도대체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 사고방식이라는 서양중심의 일관
추억은 곱씹어볼수록 새롭다. 오랫동안 찍어 모아놓은 사진첩을 들여다보면 지나간 세월에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하고 감회에 젖어버리기도 한다. 백석리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나이지만 아직도 고향을 지키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사진을 알아보는 사람이 당진에 많으리라 생각한다.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이하 예산농전) 1회 졸업생인 나는 당시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예산농전 원예과에 진학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이월자, 58)를 만나 살고 있다. 졸업사진의 배경이 예산농전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양하고 새로운 생각을 담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당진읍에 거주하는 박동원(85) 어르신의 말씀이다. 어르신은 50여년 동안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지금은 지역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당진와이즈맨클럽과 당진홀리클럽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85세의 나이가 무색한 어르신의 건강 비결은 금주와 금연 외에도 게이트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