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면 장항리에 사는 최충재 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고대면 토박이다. 최 씨는 과거 6000평의 논농사와 80마리의 소를 키우며 농업에 종사하기도 했다.그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왔다. 20대부터 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해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당진지역위원회에서 고문을 맡고 있다. 또한 해주 최씨 종친회 총무를 거쳐 회장까지 역임하기도 했으며 고대초등학교 12회 동창회와 장학회장을 맡아 학교 발전과 동문들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특히 고대초등학교 장학회는 총무와 회장을 두루 역임하며 55
합덕에서 알파전자전기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진 대표는 당진시대 초창기부터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있는 열렬한 독자다. 창간과 동시에 당진시대를 보기 시작했으니 구독한지도 20년이 넘었다. 김 대표는 이 기간 동안 당진시대 구독을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신문을 보고 있다.김 대표가 당진시대를 구독하게 된 계기는 지역신문을 살려야 한다는 순수한 의지에서다.그는 “지역에 새로운 신문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당진시대를 구독하게 됐다”며 “신문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독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당진시대를 지금까지 보고 있다”고 말 했다.
대호지면에서 당진프러그육묘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우용 대표는 1998년에 귀촌해 18년 째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호지에서 태어난 남 대표는 인천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타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항상 존재했다. 도시생활에 회의감을 느낄 때쯤 남 대표는 친구들과 부모님이 있는 고향에 내려가 생활하기로 결심했다.고향에 내려와서 토목건설 사업을 시작한 남 대표는 친구들의 제안에 1998년 당진프러그육묘장을 문 열었다. 당진프러그육묘장은 농가의 주문을 받아 벼를 비롯한
1969년 송산면 동곡리에서 태어난 이규성 천해환경산업(주) 대표는 송산을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 토박이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다. 이 대표는 태어난 후 줄곧 송산에 머물며 고향과 함께하고 있다.이 대표는 송산중학교 1회 졸업생이다. 이후 송산중학교 동문회가 만들어질 때 동문회장직을 맡아 동문과 재학생의 화합을 이끌었다. 그는 “당시 송산중학교 1대 동문회장을 맡고 동문과 후배들을 이끌며 동문회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송산면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선거 관련 기사 눈여겨 봐그는 송산면과 면민들을 위해
엊그제 같이 생생한 고향의 추억문화예술 관련 기사 고마워개나리 노란 꽃 / 생울타리에 피던 날 / 친구 손잡고 소풍가지요. / 천년 은행나무 교정을 떠나 / 개구리 풀쩍 뛰는 논둑길 위로 / 재잘 재잘대며 줄지어 가지요.-최제형 시인의 중에서‘소풍 가는 날’은 최제형 시인이 면천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인근 영탑사로 줄지어 소풍가던 모습을 회상하며 지은 시다. 그의 시에는 고향 당진에 대한 애정이 짙게 묻어난다.최 시인은 면천면 성하리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자랐다.“세월이 지나도 어릴 적 고향에 대한 추억은 하나
송악읍 중흥리에서 송악펌프카를 운영하고 있는 김태준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인의 소개로 펌프카에 대해 알게 돼, 20여 년간 펌프카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중장비의 하나인 펌프카는 건설현장에 레미콘 차량들이 건설현장에 시멘트를 싣고 오면, 펌프 장비를 이용해 시멘트를 붓는 장비다. 펌프카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했다. 하지만 이때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왔다.그 이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송악펌프카를 개업했다. 20대 중반에 차린 송악펌프카가 세월이 흘러 현재는 7명의 직원
합덕읍 운산리에 위치한 제일태권도장 김종학 관장은 27년째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그가 가르친 제자가 아버지가 돼, 그 자녀가 태권도를 배우러 오기도 한단다. 김 관장은 특히 장애인 태권도 교육에 관심이 많다. 지적 장애인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할 곳이 많지 않아 대부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이러한 지적장애인들의 모습을 본 김 관장은 5년 전 당진장애인태권도협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4년 전 장애인 선수들과 전국장애인태권도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김 관장은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낯
송산면 당산리에서 태어난 유양수 송산면 쌀전업농회 전 회장은 70년 넘게 당산리를 지키고 있는 지역 토박이다. 20세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해 50년 넘게 농사일을 하고 있다.한편 그는 공주 출신 아내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유 전 회장은 아내가 종갓집으로 시집 와 숱한 고생을 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 전 회장의 부인인 박용자 씨가 시집 왔을 당시, 박 씨는 일곱 명의 동생과 부모님, 할머님이 한 집에 살며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아내는 유 전 회장의 어머니가 49살에 혈압으로 쓰러지고
송산면 동곡리가 고향인 안평수 대표이사는 고대공단에서 20여 년째 서해종합타이어를 운영하고 있다. 안 대표이사는 형의 권유로 한보철강 인근에서 주유소를 운영했다. 하지만 1997년 한보철강 부도로 15억 원 가량의 주유대금을 받지 못하며 부도를 맞았다. 가지고 있던 논과 밭 등도 빚을 갚는데 사용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해에 불어 닥친 IMF 한파는 안 대표를 더욱 힘들게 했다.하지만 안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투자자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한 안 대표는 적당한 장소와 기술만 있으면 가능한 타이어 사업을 시작하게 됐
대덕동에 살고 있는 강병호 씨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셨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 모두 일찍 여읜 그에게 할머니와 작은아버지, 고모는 오래토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진축협에서 37년 간 근무했다. 이후 당진축협 합덕지점, 송산지점 등에서 일했던 그는 기획실장직을 마지막으로 7년 전 퇴임했다. 그 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요양센터에서 일을 하는 등 끊임없이 사회 활동을 이어왔다.강병호 씨는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빈자리
친환경 농산물 농원인 버들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안재옥 대표는 순성면 양유리 토박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고 아내와 함께 3남 1녀의 자녀를 키워냈다. 안 대표는 거주하고 있는 집을 ‘일생이 담긴 집’이라고 말한다.안 대표는 순성면에서 58년간 살아온 만큼 다양한 일을 해왔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24년을 축산업에서 종사했고 현재는 낙농업을 통해 벼농사를 짓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올해에는 당진시농민회 순성면지회장까지 맡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업을 여전히 구상 중이다. 단순히 재배하는 농원이 아니라 관광농업
1974년도부터 남편을 만나 본리 1리에서 살고 있는 양상순 대표는 가화 농원을 15년째 운영하고 있다.그는 논농사를 시작으로 사과·배 전문 농원인 가화농원을 운영해 왔다. 가화농원은 5000평이 넘는 농원으로 양 대표의 부부가 함께 가꿔나가고 있다.66세의 나이에도 농원을 손수 가꿀 정도로 건강한 양 대표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양 대표는 순성면 부녀회장, 당진시 생활개선 회장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소외계층을 돕는 봉사부터 환경정화활동 등의 봉사를 해오며 보람을 느꼈다는 양 대표는 꾸준히 봉사하다 보
한국동서발전 (주)당진화력본부 내에서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는 박신복 소장은 매사에 긍정적이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가장이 됐다. 박 소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고 결혼까지 보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박 소장은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는 “이장 일을 할 때도 항상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며 “긍정은 집안을 이끄는 버팀목이 됐다”고 말했다.박 소장은 현재 당진화력에서 청소관리 소장을 맡고 있다. 이 일을 한지도 15년이
대호지면 두산2리에 살고 있는 송재천 전 이장은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벼·밭농사일을 거뜬히 할 정도로 건강하다.송 전 이장 건강의 비결은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서산시 운산면이 고향인 송 전 이장은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징집돼 외가가 있는 대호지면 두산2리로 오게 됐다. 그 때부터 송 전 이장은 외갓집의 손에서 길러졌고 두산리 출신의 아내를 만나 2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송 전 이장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6년 간 두산2리의 마을 이장으로 활동했다. 송 전 이장이 당진시대를
찬 바람이 불어오면 당진석유 조용현 대표는 남들보다 더 분주해진다. 자칭 ‘따스함을 나눠주는 남자’라는 조 대표는 당진시민들에게 따뜻함을 주고자 전화 한 통에 당진 구석구석을 오간다.자신이 게으르면 많은 사람들이 춥다는 조 대표는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다. 누구에게나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는 조 대표를 고객들은 ‘석유삼촌’이라고 부른다.그는 “전화를 받을 때도 “네, 석유입니다 라고 말한다”며 “17년 전부터 내 이름은 조용현이 아니라 ‘석유’가 됐다”고 말했다.조 대표는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지만 당진시대만큼은 꼭 챙
우신공업주식회사 전산실을 총괄하는 임옥현 이사에게는 당진시대 애독자라는 표현이 딱이다. 당진시대 1면부터 24면까지 꼼꼼히 정독한다는 임 이사는 속독보다는 ‘정독’을 해야 기사를 통해 당진소식을 정확하고 자세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전라남도 보성 출신의 임 이사가 근무하고 있는 우신공업주식회사는 자동차 부품인 머플러(소음기) 제조업체로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 위아 등에 납품하고 있다.임 이사는 경기도 안산에 위치해 있던 우신공업주식회가 당진으로 이전하면서 2005년부터 당진과 인연을 맺게 됐다. 28년 간 우신공업주식회사에서
정미면 대조리 백종국 새마을지도자는 요즘 김장철을 맞아 새마을지도자 정미면협의회·부녀회에서 김장하랴 아내의 김장 도와주랴 바쁘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백 지도자의 얼굴은 항상 ‘미소’ 가득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은 평소 집안일을 자주 도와주는 가정적인 남자”라고 말했다.백 지도자는 1986년부터 10년간 정미면 대조리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다 2012년부터 다시 새마을지도자 활동을 시작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인천에 위치한 기와공장에서 8년 정도 일하기도 했다.쉬지 않고 달려온 백 지도자의 취미는 한문으로 쓰인 책을 읽는 것
고대면에 위치한 다윗어린이집을 199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국호정 원장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있다.약 20여년 간 당진시대와 함께한 국 원장은 당진시대를 구독하는 이유를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당진시대를 읽으면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지역의 소식과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라는 동화를 읽은적이 있어요. 이 동화에서 여우들은 시인을 테스트합니다. 시험에 든 시인은 두 편의 시를 쓰는데, 여우들은 흡족해하지 못합니다. 이때 시인이 여우
박시표 교사는 1984년도부터 31년 동안 신평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난 그는 신평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서 지금까지 신평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 박 교사는 당진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오랜 시간 동안 교사의 자리에 있었던 만큼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제자들을 가르칠 당시에는 마냥 어린 학생이었는데, 훌쩍 커서 인사하러 온 제자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어떤 교사든 자신보다 제자가 잘 되는 것을 보고싶어 한다”며 “성공의 기준은 없지만 졸업한 제
‘우리 마을 이야기’ 기사, 기억 남아4대째 송악읍 중흥리 살고 있는 토박이송악읍 중흥리 지태관 이장은 그의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아들까지 4대째 송악읍 중흥리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송악읍 중흥리이니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똑같은 자리에 남아 있는다고 말한다. 그는 인구가 늘어나고 발전하는 당진의 모습도 좋지만 가끔 옛 고향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단다. 점점 도시화 되면서 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송악읍 중흥리 새마을지도자 2년, 이장 5년동안 마을을 위해 일해 온 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