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면 삼월리에 위치한 마실노인복지센터는 지난 1월 사회복지법인 희망송산(이사장 이재상)이 개원한 복지센터다. 송산면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창립된 희망송산은 ‘우리동네 복지마을’ 구현을 목표로,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금 24억 원을 투자해 마실노인복지센터를 설립했다. 설립 주체인 희망송산은 태어나서부터 다시 돌아가는 순간까지 마을에서 보내자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마실노인복지센터는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지역민들의 자원봉사와 후원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차후에는 요양시설, 아동시설까지 계획하고 있다고.현재 센터는 어르신들이 야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에요.”자신의 이름보다 ‘어기구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더 많이 불리는 구본현 보좌관은 지난 2015년, 3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초등학생 때 서울로 떠난 뒤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선배의 권유로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본래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6개월만 같이 일해보자고 한 것이 어느덧 인생이 돼버렸다. 정치라는 게 쉽지 않아 중간에 그만 두고 직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운명처럼 다시 돌아왔다.“정치란 많은 사람들을 대해야 하고, 정쟁이 치열해 스트레스가 커요. 하지만
강미남고대면 적십자봉사회 회장>>강미남 회장은-1958년 고대면 옥현리 출신-고대초 32회 졸업-전 새마을 고대면 장항2리부녀회·고대면 생활개선회 ·고대농협 농가주부모임 회장 역임-현 고대면 적십자봉사회 회장 고대면 옥현리에서 나고 자란 나는 현재 고대면 적십자봉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5년간 총무를 맡다, 올해 회장으로 선출돼 활동하고 있다. 밭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고 있어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스마트폰에 기록해놓은 내 스케줄 표를 보고 다들 놀랄 정도다.나는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놨지만, 얼마전 사진이 모두
25년째 농협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병기 면천농협 상무는 농업·농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농사짓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합덕농업고등학교(현 합덕제철고)에 진학했다. 그리고 농협에 입사해 경제사업 관련 업무를 계속 맡아왔다.관심이 많은 만큼 점점 어려워지는 농업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농촌지역의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농촌경제가 어려운 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유 상무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고 있는 세태다. 사람들이 농업·농촌에 관심을 갖지
김기철 당진감리교회 장로는 지난 2015년 6월, 4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20대 초반 고대면사무소 근무를 시작으로 신평면장, 석문면장, 문화체육과장, 지역경제과장 등을 거친 뒤, 미래전략사업단장을 끝으로 퇴직했다.오랜 공직생활 중 김 장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문화체육과장으로 일했을 때다. 당시 김 장로는 현재 당진시복지타운 뒤편에 조성된 당진국민체육센터를 설립하고자 직접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찾아 자문을 구하는 등 노력 끝에 예산을 지원받았다. 당시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도 당진시의 의욕을 높이사곤 했다고. 김 장로는 “믿음
나는 송산면 상거리 출신으로, 현재는 시곡1통에 살고 있다. 새마을지도자 당진3동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며,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받은 도움의 손길을 보답하고 싶어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는 육체적인 활동보다 봉사자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참 봉사다. 남에게 주는 행복, 나누는 행복 만큼 더 큰 행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사진은 아내(임영옥)와 연애하면서 강원도로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여행을 함께 간
김종문 전 충청남도 교육위원은 당진군개발위원장, 당진군체육회 부회장 등을 맡으며, 20여 년 전 당진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던 당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 중 하나다. 지금은 지역의 원로로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면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김종문 전 위원은 계성초, 고대초를 거쳐 당진초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 10여 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후 그는 초대 충청남도 교육위원으로 선출돼 3대 교육위원까지 연임했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진상고를 당진정보고로, 당진여고를 당진고(
지체장애인 2급인 김완종 씨는 다섯 살 때 머리를 다치며 장애를 얻었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도, 의사소통도 편하게 할 수도 없지만 당진시장애인복지관을 꾸준히 다니면서 그림도 그리고, 오카리나도 연주하고, 글도 쓰는 등 여러 활동을 하며 활기차게 살고 있다. 당진시대에 대한 애정 또한 여느 독자 못지않은 그는 틈틈이 신문을 읽으며 지역의 다양한 소식을 접하고 있다.김완종 씨는 천안 출신으로 35년 전 일자리를 찾아 당진에 왔다. 당시 입사한 공장 한켠에 당진시대가 놓여 있었고, 그렇게 처음 당진시대를 알게 됐다. 글쓰기를 좋아하
“생산비를 절감하고, 수확량을 높이고,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대박농사’죠! 관행적으로 해오던 방식이 훨씬 수월할 수 있지만,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환경농업을 위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을 위해, GCM농법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GCM농법은 젤라틴과 키틴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활용해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줄이는 친환경농법이다. 석문농협 이성남 상무는 지난 2016년부터 지도사업을 맡게 되면서 3농혁신 추진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이 상무는 “당진시가 추진하는 3농혁신의 일환으로 각 농
60년 동안 합덕읍을 지켜온 성낙근 합덕읍이장협의회장은 고향에 대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도 크다. 서동리 이장을 맡은 것도 벌써 9년째, 합덕읍이장협의회는 물론이고 오는 28일과 29일 열리는 제2회 버그내연호문화축제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의 흥망성쇠와 함께 울고 웃었다.“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보람도 크지만 책임도 무겁습니다. 과거 당진의 중심이었던 합덕읍과 남부권의 침체가 오래 이어져 걱정이에요. 남과 북의 기찻길이 열리면, 합덕을 지나는 서해선복선전철 건설을 계기로, 남부권이 재도약했으
집에 옛날 사진이 참 많다. 젊었을 때,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했을 당시 사진을 보면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생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끝까지 열심히 살고 싶다.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싶다. 첫 번째 사진은 올해 면천향교 전교로 취임하고 성균관에서 고유 받을 때 찍었던 사진이다.성균관에서 각 지역 향교의 전교들과 사진촬영을 했다. 어릴 적부터 조상을 숭배해왔던 나는 꾸준히 유림생활을 해왔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촌지도자 충청남도연합회장과 중앙회 부회장 등을 맡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유림생활은 단체장 임기가 끝난 후
용연동 출신으로 용연초와 호서중을 졸업한 뒤 당진을 떠난 유 변호사가 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형진 변호사와 함께 당찬공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유 변호사는 본래 수의학을 전공해 농협중앙회에서 수의사로 일하다, 법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지난 2013년 충남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전국노숙인시설협회, 세계의심장 자문변호사를 맡는 등 사회적 역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당진시대를 구독하게 됐다. 유 변호사는 “당진시대는 오랜 기간 지역언론으로서 역할과 기능에 충실해 온 점을 익히 잘 알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면서 논·밭으로 향하는 농부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진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요즘,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이남일 전 한국쌀전업농 당진시연합회장 또한 농사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드넓은 소들평야에서 질 좋은 쌀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해마다 농업·농촌이 어려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치 않다. 한 때 농업웅군을 자랑하던 당진도, 이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게다가
어젯밤 그동안 정리해 놓은 앨범을 꺼내 사진을 찾아봤다. 사진 속에는 10대, 20대, 30대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더라. 확실히 20대 때가 가장 예뻤던 거 같다. 부산 출신의 내가 당진을 찾은 지 벌써 22년이 됐다. 결혼 후 부산에서 살다가, 남편의 고향인 당진을 오게 됐다. 이제는 부산보다 당진이 더 편하고, 고향 같다고 느껴진다. 첫 번째 사진은 6~7살 때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아버지는 가전제품에 관심이 많으셨다. 부서진 TV, 고장 난 라디오, 못 쓰는 시계와 카메라 등을 얻어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찍어 온 사진들이 많다. 초등, 중등, 고등, 대학, 군생활 등 시기 별로 나눠 앨범으로 정리해 놓았을 정도다. 나는 호서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많이 남겨 놓는다. 가끔은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져가 사진을 찍어 놓기도 한다. 덕분에 추억이 오랫동안 남겨지는 것 같다. 1.나는 고대면 대촌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 교사 혹은 경찰이 되고
계성초등학교(교장 김형란)에서 4학년 도덕과 6학년 영어 과목을 맡고 있는 신효정 교사는 지난 3월 부임한 새내기 교사다. 사랑스러운 학생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만 같은 요즘 아직 초임이기에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신 교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사의 꿈을 키우게 됐다. 당시 담임교사의 권유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는 교대에 진학하고,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됐다. 하지만 신 교사가 배운 교육 이론과, 경험한 현장은 달랐다.그는 “4년 간 대학생활에서 배운 이론과 현장은 굉장히
25년 전, 당진시대가 창간했을 때부터 구독하고 있는 강우영 전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장은 시간이 지나도록 당진시대에 대한 애정이 변함없다. 그는 “지역 곳곳의 소식을 속속들이 전달해 주는 당진시대는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당진시대를 칭찬했다.“당진시대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추구하는 지역신문으로 주민들에게 지역의 현안과 미담 등 다양한 정보를 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발로 뛰면서 생생한 현장을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강우영 전 회장은 당진시대의 오랜 독자이자
“당진시대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독자들이 신뢰하는 지역신문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당진시대는 참 아픈 신문이기도 하죠. 그러나 날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해요.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잡아 더욱 냉철하게 현안을 전달하는 언론이 되길 바랍니다.”신평농협 최기환 조합장은 15년 넘게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있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지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해 구독을 시작했다는 그는 당진시대는 내용이 알차고 다양한 소식이 담겨 있어 좋다고 평가했다.최 조합장은 “독자들이 신문을 보는 이유는 당진지역의 종합적인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난 나는 해방된 후 13살 때(1945년) 당진에 오게 됐다.당진초를 졸업하고 인천으로 유학 가 학창시절을 보냈다. 직장 때문에 강원도 강릉에서 10년을 살다 다시 당진을 찾았다. 25년 간 박용성 법무사의 일을 돕다가, 79세 때 퇴임했다.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일을 했다. 내 인생철학은 “적 없이 살고, 서로 정을 나누면서 살자”이다. 여생을 인생철학과 같이 살고 싶다.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은 아내와 유럽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환갑을
합덕읍 서동리 출신의 김순옥 대표는 현재 운산리에서 여성의류매장 아이엠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오카리나를 가르치는 강사이자 당진시민오케스트라에서 플룻을 담당하는 단원이기도 하다. 8~9년 전 플룻을 접한 그는 우연히 오카리나를 알게 됐고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됐다. 이후 신합덕성당에서 신자들에게 오카리나를 가르치게 됐다. 또한 지난 1월 당진시민오케스트라 오디션을 통해 단원으로 꼽혔다. 그는 오는 6월 16일 열리는 당진시민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단원으로서 처음 서는 무대를 위해 연습하고 있다.김 대표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