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써브(당진 원당) 인상언 대표는 당진(채운리)에서 태어났지만 곧 인천으로 이사를 가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하다 3년 전 당진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다. “태어나자마자 당진을 떠났기 때문에 당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학창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진에 살고 계셔서 몇 번 방학과 명절 때를 왔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당진에
당진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인 심원섭(58)씨는 당진읍 채운리 출신으로 지난 30여년간 교직생활을 해왔다. 그 동안 당진은 물론 천안, 홍성, 아산, 보령, 연기, 예산 등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2005년 당진고등학교로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다. 올해 초에 창단된 해나루색소폰앙상블의 단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충남중등교사합주단장을 비롯 한국관악협회충남지
탑동리와 우두3리에서 농사와 축산업을 해온 문기현(58)씨는 며칠 전 우두3리로 이사를 했다. 전에 살던 탑동초등학교 뒤편이 주택공사에 수용되면서 그와 가족들은 우두3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올해 4월부터 집과 축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차근차근 이사 준비를 했죠. 축사도 현재 거의 완공단계에 있어 곧 이쪽으로 모두 옮
순성 출신인 구자현(60) 동양건설 대표는 합덕에서 동양건설을 운영해오다 2004년경 지금의 대덕리 1185-5번지로 자리를 옮겼다. 구 대표는 당진건설 경기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라경제가 어려우니 지역경제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당진은 대형공장들이 들어서며 발전하고 있는 추세지만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지역 업체의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입니다.” 구 대표는 작년과 비교해 입찰도 많이 떨어진 편이라며 지역 건설업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외지업체들과 비교해 당진 업체들이 기술력이나 단가
순성출신인 이미정(40)씨는 초·중·고를 모두 당진에서 마치고 현재는 댄스스포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 생활체육을 전공하면서 댄스스포츠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됐어요. 학원에서 강사도 했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당진읍사무소 자치센터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댄스스포츠를 가르치고 있어요.” 이씨는 요즘 주부들이 댄스스포츠에 대해 굉장히 열의를 갖고 참여하고 있다며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자치센터 담당자에게 모집정원이 초과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석을 원하신다고 들었어요. 당진이 문화적으로 아직도 열악한 편
“92년부터 한길씽크라고 주방, 사무용 가구를 제작하는 공장을 운영해왔어요. 벌써 16년이나 됐네요. 그리고 2년 전부터는 한샘키친프라자 당진점도 하고 있고요.” 10년 넘게 주방과 사무용품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 임경식(41) 대표는 그 동안 당진은 물론 서산, 태안, 예산, 홍성, 아산 등 충청 서부지역과 평택, 인천, 성남 등 인근 경기도 지역에 까지 사업을 확장해왔다. 그는 경기가 불황이라 이전에 비해 매출이 3~40% 감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넓게 형성해왔지만 물가가 안정이 안 되다보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 자
비젼부동산 장중열(53) 대표는 7년 전 장고항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 3년 전 지금의 신터미널 근처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비젼부동산을 열었다. 그는 몇 년 전 난지도에 갔다가 그 풍경에 반해 난지도를 알리고 휴양지로 개발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진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지만 제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난지도 리조트 사업에 관한 것입니다.” 난지도와 관련된 소식에 주목하고 있는 장 대표는 얼마 전 당진시대에 실렸던 대난지도와 소난지도에 관한 기사들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제가 볼 때 난지도는 태안에 있
시곡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강충구(66) 씨는 당진시대를 아주 ‘꼼꼼히’ 보고 있는 독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신문에 나와 있는 오자를 찾으면 곧바로 신문사로 제보를 한다. “낮에는 일 하는 것 때문에 바빠서 신문을 보지 못하고 저녁에 시간 내서 짬짬이 보고 있어. 이렇게보니 신문을 다 보는데 한 이틀 정도 걸리더라고. 기사를 읽다보니 오자가 눈에 들어와서 오자를 발견하면 신문사에 연락하곤 했지.” 강씨는 당진시대를 보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며 당진시대를 구독하게 된 데에 남다른 사연이 있다고 말했다. “원래는 다른 지역신문을
당진읍 사기소리에서 버섯농산을 하고 있는 이상현(49) 대표가 당진시대를 보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 이 대표는 처음 당진시대를 보기 시작한 4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며 이젠 틀도 많이 잡혔고 기사들 역시 더욱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제가 느끼기에 지금의 당진시대는 전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다고 생각됩니다. 최근에는 당진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인간미 넘치는 기사들이 많이 실리고 있던데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사들이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이 대표는 군민들이 힘을 낼 수 있고 지역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당진시대를 본건 2004년부터야. 그때 내가 고향인 행정리로 다시 돌아와서 농사짓기 시작했거든. 원래는 타지에서 통신공사 쪽 일을 했었어. 귀농을 결심하고 농사를 처음 짓게 되었는데 당진시대에 소개되는 농업관련 소식들이 그때 많은 도움이 됐지.” 행정리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는 장석본(71) 씨는 농민신문도 보고 있다며 농촌에 관련된 기사를 많이 실어 달라고 부탁했다. 더불어 요즘 농촌 현실이 어렵다며 이를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홍수출하로 인해 감자나 옥수수를 제값에 못 팔고 있어. 물가는 계속 올라가는데
“어머, 이거 정말이에요? 나도 얼른 하나 사야겠다.” 코오롱 아파트 앞에서 튼튼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최종미 대표는 지난 714호 1면에 실린 ‘당진점, 로또 1등 당첨자 탄생’에 관한 기사에 대해 묻고는 당진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당진시대를 본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틈틈이 보며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면서 정말 지역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당진시대가 지역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고대면 대촌리 출신인 최 대표는 99년 계성초등학교 앞에서 처음 부동산을 열고 운영해왔다.
“기사는 물론 광고까지 놓치지 않고 볼 정도로 매주 당진시대를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의 다양한 소식들을 다뤄줘서 좋습니다.”고대면 대촌리가 고향인 손범승(43) 교사는 당진시대가 창간된 1993년부터 신문을 구독해왔다며 당진시대가 지역소식지로서 매우 유용한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탓인지 당진시대가 앞으
신성대학의 최동철 교학팀장은 당진시대를 본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며 신문을 통해 지역 소식을 폭넓게 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집이 고대이고 직장이 덕마리 쪽에 있다보니 일이 없는 한 읍내 쪽이나 다른 지역으로는 발길이 잘 닿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다른 지역소식을 뒤늦게 접하는 편인데 당진시대가 미처 놓친 읍면소식을 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당진시대가 지역 언론으로서 주민들이 꼭 알고 있어야하는 소식들에 더 비중을 두어 보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역 신문은 중앙지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전 칭찬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 당진시대의 오랜 독자 중 한 명인 윤성의 씨는 신문은 신속한 보도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보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며 가끔 당진시대에서 그렇지 못한 기사를 접했다며 얘기를 꺼냈다.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신문을 읽는 편인데 기사 제목이나 내용 중에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을 가끔 보곤 합니다. 신속하고 빠른 보도도 좋지만 올바
송악면 가학리 출신인 홍현선 대표가 광고사 일을 한지도 어느 덧 10년. 그는 외지에서 광고사를 운영하다 1996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97년 지금의 가나광고사를 열었다. 홍 대표는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를 회상하며 IMF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1997년 11월 17일에 가게를 오픈했는데 두 달 뒤인가 IMF가 왔어요.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일도 없고 그래서 낚시하러 다니고 그랬어요. 그렇게 한 3년을 보냈죠. 그러다가 2000년이 되니까 조금씩 일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회사 건을 맡게 되면서 조금씩 가나광고사가
면천농협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노규 지도상무는 당진 출신으로 면천이 고향이다. 1985년 농협에 입사한 박 상무는 타지에서 2년 정도 근무한 것을 빼고는 그 동안 쭉 당진에서 일해왔다. 그래서 그는 당진과 고향인 면천 그리고 농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박 상무는 최근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에프티에이(FTA)라든가 광우병 관련 축산물 파동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 “농협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보니 FTA와 관련해서는 참 할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농업인과 축산농가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없이 졸속으로 협상이 타결
최경섭(50) 대표는 신평에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신평면 부수리가 고향인 그는 초·중·고를 모두 당진에서 나왔다. 그가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뛰어든 것은 1994년부터. 창업하고 몇 년 뒤 그는 국가적 위기였던 아이엠에프(IMF)를 맞았다.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요. 지금은 이렇게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간신히 살았죠. 힘들었지만 그래도 회
홍맹선 대표이사를 만나기 위해 전화 수화기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 전화할 때마다 부재중, 외출중 혹은 출장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진에 건설붐이 일어나서 바쁜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는 그 반대라고 얘기했다. “당진에 건설붐이 일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진에 있는 업체들은 손을 놓고 있으니 문제죠. 지금의 건설붐은 외부 용역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벌룬데코의 김향자 대표는 풍선을 이용해 기공식, 준공식 같은 관공서의 각종 행사는 물론 연회, 잔치, 깜짝 이벤트까지 소화하고 있는 벌룬아티스트이자 파티플래너이다. “당진에 인구유입이 많이 되고 규모도 커지면서 이제 풍선은 많은 행사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장식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많이 힘들었죠.” 10년
대림오토바이 당진대리점 이덕형(52) 대표는 당진읍 운학리에서 35년 동안 오토바이만 전문으로 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방문 당시 그의 사무실에는 여러 개의 신문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이씨는 그 중 당진시대를 가장 먼저 챙겨본다고 말했다.“당진에서 장사를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하던 차에 당진시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남의 집에 놀러갔다가 당진시대를 보게 되었고 ‘이거다’싶어서 다음날 바로 전화를 걸어 구독 신청을 했죠.”요즘 주민들이 체감하는 당진 경기가 어떤지 묻자 그는 ‘어렵죠’라며 운을 뗐다.“장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