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당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듭니다.”1인 출판사 ‘KONG(이하 공출판사)’의 모토다. 면천면 성상리에 공출판사를 문 연 공가희 대표는 따뜻한 이웃의 이야기,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11살 어린이가 엄마를 속이는 일화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60세 노인의 이야기, 당진에서 작품활동을 펼치는 화가의 그림 에세이 등 소소한 일상이 공출판사를 통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온 그가 면천의 새로운 이웃이 됐다. 한 눈에 반한 낡은 한옥 한
“석문면에 위치한 삼봉보건진료소. 우여곡절을 겪고 사라져 버렸다. 이제 곧 새로 지어지지만 사라진 진료소의 따듯함이 그리워 그림으로 남긴다. 다시 지어지는 보건진료소도 아픈 어르신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따듯한 건물이었으면 좋겠다.”- 이소정 팀장의 블로그 익숙하고도 정겨운 당진의 풍경이 새하얀 스케치북에 담겼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지만 그곳엔 주민들의 삶이 묻어 있기에 그대로 허물어지는 게 안타까워 그리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곧 사라질 건물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건축물을 지난 2020년 3월부터 그리기 시
“지역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지방자치의 튼튼한 뿌리가 되고자 합니다.”1993년 11월에 발행된 창간준비호의 마지막 페이지에 마련된 주간 당진시대의 홍보 카피입니다. 대체로 그렇듯이 뭔가 처음 시작할 때에는, 특히 사회적 공익에 복무하며,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필수적이고, 더구나 미래가 불확실한 일의 경우에는 각별한 마음의 결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당진시대도 예외 없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우리는 당진지역 주민들의 삶이 질적으로 좋아지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역 언론을 바로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편견에 사로잡혔던 시선을 바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기획취재 는 지역에 사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삶의 애환과 따뜻한 인간애를 당진시대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전할 계획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낡은 벽을 페인트로 칠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한 제 모습을 되찾았다. 들어갈 때만 해도 지저분했던 곳이 나올 때 새로운 공간이 된다는 것, 이것이 성현모 노루페인트
해나루시민학교는 김명숙 씨에게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기회였다. 70평생을 살아오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해나루시민학교에 다니면서 글을 배우는 것은 물론 그의 내면에 있던 끼를 찾았단다. 목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당진까지1950년 목포에서 태어난 김명숙 씨의 어머니는 포목점을 운영하며 비단을 팔았다. 4남매를 낳아 기르던 어머니는 그가 7살이 되던 해, 어린 자녀들을 두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나이였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학교에 가지 못한
임명자 씨는 1955년 정미면 천의리에서 태어났다. 위로 오빠 둘, 아래로 동생 둘, 5남매 중 가운데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배움의 기회마저도 다른 형제들을 위해 양보해야 했다. 넉넉지 않았던 살림에 할머니는 둘째오빠를 가르쳐야 한다면서 임명자 씨에게 “지지배니까 돈 벌어라”고 했단다. 엄마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내가 못 배웠으니 너라도 배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고, 학교에도 보내려 했지만 시어른의 뜻을 막지 못했다. 어렵사리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책가방을 빼앗아 갔다. 결국 1학년만
“병아리 삐약이는 인형을 안고…”딸이 사다 준 그림책을 또박또박 정성스레 읽어 내려간다. 나이 70을 앞두고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에 딸은 당장에 검색하더니 해나루시민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며칠 뒤 학교에 와보라는 말에 딸과 함께 교실에 들어선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이 북받쳤다. 너무 너무 좋아서….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 원망 1952년 어리(현 우두동)에서 태어난 안계숙 씨는 배우지 못한 한이 60년 넘도록 가슴 안에 가득했다. 딸은 절대로 가르칠 수 없다던 아버지를 원망하고 원망하면서 살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편견에 사로잡혔던 시선을 바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기획취재 는 지역에 사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삶의 애환과 따뜻한 인간애를 당진시대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전할 계획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인터뷰는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청소년들이 있다. 다양한 이유로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한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곳이 당진시청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편견에 사로잡혔던 시선을 바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기획취재 는 지역에 사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삶의 애환과 따뜻한 인간애를 당진시대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전할 계획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인터뷰는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을 여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hy’로 이름이 바뀐 한국야쿠르
당진에서 ‘청년’은 당진시 청년기본조례,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라 만15세 이상 만39세 이하로 규정돼 있다.당진시 통계에 따르면 당진시의 청년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7년 5만1969명, 2018년 5만 657명, 2019년 4만 8587명, 2020년 4만 6223명, 2021년 4만 4629명으로 5년 새 7340명이 감소했다. 특히 당진지역의 경우 성비 불균형으로 20~30대 청년 여성이 청년 남성보다 적은 상황이다. 이병훈 당진시 평생학습과 청년정책팀장은 “지역의 청년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면서 “20대로 진
“크롱! 크롱! 크롱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민족사관어린이집의 박주찬 보육교사는 지난해 1월부터 일을 시작한 새내기 선생님이다. 민족사관어린이집의 유일한 남자 보육교사이기도 하다. 남자 보육교사가 흔치 않지만 박주찬 씨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에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보육교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26살인 박주찬 씨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무렵 가족과 함께 당진에 왔다. 당진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진로를 생각하다, 유아교육과 진학을 결정했다. 그는 “어른들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좋았다”며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서울로 떠난다. 일자리가 없어서, 문화·교육·의료 인프라가 부족해서 지역을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당진을 택한 청년들도 있다. 지역에서 자리 잡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열정으로 뛰는 청년들이다. 이들이 당진을 선택한 이유와 살아가고 있는 과정,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최예나(34·대덕동) 대표는 손에 붓과 물감 대신 디지털펜을 쥐고, 하얀 도화지나 캔버스 대신 태블릿 위에 그림을 그린다. 디지털 기기로 그린 그림이지만 유화나 수채화, 파스텔화처
제11회 당진시민대상 수상자로 이상훈 전 순성면장과 편명희 전 당진시의원이 선정됐다. 당진시민대상 심의위원회는 지난 7일 회의를 열고 지역발전·환경 부문에 이상훈 전 면장을, 산업경제 부문에 편명희 전 의원을 제11회 당진시민대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이상훈 전 면장은 지난 2004년 순성면장으로 재직했던 당시 지역주민과 재경·재인 향우회와 협력해 남원천 20km에 걸쳐 매실나무와 벚나무 식재를 주도했다. 이를 활용해 ‘순성왕매실축제’를 개최하고, 왕매실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왕매실막걸리 생산 및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매실을 지
글을 배우지 못한 70~80대 어르신들은 가난한 집의 살림 밑천이었던 맏딸이었거나, 가방 대신 지게를 져야 했던, 학교 대신 갯벌로 나가야 했던 어린 소년·소녀였다. 해방 전후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절대적 빈곤 속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한 많은 시절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문해교육에 도전한 늦깎이 학생들의 인생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서글픈 시대와 역사가 오롯이 담긴 삶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또한 유
“그림엔 정답이 없어요. 누구나 똑같이 그리면 무슨 재미가 있나요? 아티스통은 완벽한 작품이 아니라 나만의 개성이 들어간 작품을 만드는 것을 추구해요.”명화 기반 미술키트를 제작하는 청년 창업기업 ‘아티스통’ 홍지영(39·송악읍 기지시리) 대표의 철학이다. 그가 만든 미술키트에는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이 담겨있다.엘리트 코스 밟은 예술가서울 출신의 홍지영 대표는 또래보다 늦게 미술을 시작했지만 미술대학과 대학원, 외국 유학이라는 소위 ‘정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홍 대표는 “중학생 때 내신 점수를 위해 미술을 시작하긴 했지만 본격
당진여객 시내버스 운전기사 양장길 씨의 첫 운행은 아침 6시 57분부터 시작된다. 당진버스터미널을 시작으로 송악읍 기지시리와 이주단지, 내도리를 거쳐 송산면으로 넘어간다. 현대제철과 현대엠코타운아파트를 지나친 후 다시 터미널로 오는 데 2시간이 걸린다. 하루 모든 운행을 마치면 오후 9시가 넘는다. 벌써 양 씨가 버스 운전대를 잡은 지 30여 년이 넘었다. 버스를 타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즐겁다는 그는 버스를 타고 매일 곳곳 당진을 누빈다. “그만큼 당진이 좋았나봐요”전라북도 김제시가 고향인 양 씨는 당진 출신의 아내를 만나며 이
김정은 대표는 수제 먹거리 공방 ‘정은가득’을 문 열며 제2의 인생을 맞이했다. 동시에 새로운 꿈과 목표가 생겼다. 처음엔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고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서 지금은 더 많은 사람에게 한과 디저트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곧 추석을 앞두고 선물 세트 주문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는 새벽부터 나와 분주하게 날을 보내고 있지만, 이마저도 행복한 김정은 대표다. 정은가득은?정은가득은 수제 먹거리 공방이다.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다. 학교 다닐 때는 양호실 단골일 정도였다고. 나이가 들어서도
남연아(38·송악읍 석포리) 대표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처음 온 당진은 매우 낯선 곳이었지만 19년이 지난 지금은 구수한 사투리도 사용할 정도로 지역에 정착했다. 현재 그는 송악읍에서 6년째 장미 농사를 지으며 희망의 꽃을 틔우고 있다.“사투리 못 알아들었죠”남연아 대표는 19살의 나이에 베트남에서 당진에 왔다. 그에게 당진은 언어도, 음식도, 문화도 모든 것이 다른 미지의 세계였다. 열대국가에서 자란 남 대표는 한국의 겨울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지난 2003년 9월 당진에 온 남 대표는 “낙엽이 들고 단풍 지는 게 신
젊은 시절, 하루에 수백씩 쓰며 살아온 박청호 씨의 삶은 35살 이후 180도 바뀌었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오른 그는 고향을 떠나 상경했고 20여 년간 노숙자로 거리를 떠돌았다. 5년 전 다시 고향을 찾은 그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았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호주머니엔 단돈 2000원 뿐…”박청호 씨는 20~30대엔 소위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당구장·오락실 등을 운영하며 큰 돈을 만졌고 이른 나이에 이룬 성공으로 흥청망청 돈을 썼다. 수백만 원의 판돈을 걸고 내기당구를 하는 등 하루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 쓰기를
이우경(36·신평면 거산리) 대표는 두 아이를 둔 엄마이자 청년창업가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업체 ‘맘마또’를 운영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임신·출산·육아로 경력단절 본래 이 대표는 회사에 다니며 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회사에 복귀한 그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일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이 대표는 “첫 아이를 낳을 때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받았고 휴가 후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부담을 느껴 퇴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아직 사회에서는 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