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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와 천주교 대전교구, 한국조폐공사가 대한민국 최초의 사제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메달을 제작하고자 후원 약정 협약을 체결했다.지난달 26일 당진시청 해나루홀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김홍장 당진시장, 유흥식 천주교 대전교구장, 조용만 한국조폐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이들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메달을 제작하고 홍보와 수익금 기부 등을 약속했다.협약에 따라 기념메달은 금 200개, 은 2000개, 동 1만 개가 1차 수량으로 제작되며, 오는 29일 출시될 예정이다. 메달 앞
종교
김예나
2020.10.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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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 선교회가 박옥수 목사 성경세미나를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 간 온라인 행사로 이뤄졌다.이번 세미나는 오전 10시30분과 오후 7시30분 두 차례에 걸쳐 유튜브 ‘굿뉴스티비’로 생중계 됐다. 또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특별찬양을 진행키도 했다.
종교
김예나
2020.10.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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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감리교회가 충청도 최초의 교회라고 확신하는 이가 바로 전 면천교회 담임목사인 구본환이다. 그는 면천교회 담임 시기인 2012년 2월 11일자 기독교타임즈를 통해 유제가 면천군수로 부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초가 8칸의 교회를 지은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판 면지에 면천지역 개신교 역사에 대해 강력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세 가지 가설을 설정하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였다.첫째, 당시 기독교회당 건물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면천에 이미 교회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가설을 통해 의심할 여지가
종교
당진시대
2020.10.1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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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가 면천군수로 부임하기 전부터 그의 선행에 대해 면천을 포함한 내포지역에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유제는 1892년부터 1894년까지 쌀을 무곡하러 이곳을 다녀갔고, 1894년 갑오년에 선유별관으로 면천에 기거했을 것이다. 그리고 1895년 군수로 취임했을 때 그에 의해서 면천지역에 기독교공동체가 이뤄졌음은 당연하다. 물론 면천에는 당시 교회공동체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그의 모든 신앙행적으로 보건대 면천의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했으리라 추정한다.내포지역은 오랫동안 천주교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유제에 의하여 이미 곡창지대
종교
김예나
2020.10.1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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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의 선행은 조선그리스인회보와 독립신문에서도 기사화 되었다.그가 덕산 한내에서 복음을 전할 때 덕산군수 도종서가 오해하여 “부자의 곡식을 빼앗고 억지로 행악한다”는 이유로 홍주 병참소에서 잘못된 도당으로 일행들에게 체포령을 내렸었다. 이에 대해 해당 기사는 “지극히 인선한 사람이며 온유한 사람으로 경천애인 하기에 힘쓴사람”이라고 기록했다.“이것은 서울서 내려가 전도하는 교우에 력력히 목도한 일이라. 만일 유면천으로 하여금 추호 만치라도 그른 일을 하였으면 잡아갈 뿐아니라 죽여도 한이 업거니와 문명 개화하는 때에 명천이 위에 계시고
종교
당진시대
2020.09.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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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선교사의 선교보고에서 유제가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전해진 것보다 훨씬 이전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아펜젤러가 미 감리교선교부 레오나드(A.B,Leonard) 목사에게 보낸 1889년 4월1일 선교보고에서 ‘유형제’와 사역한 보고서가 미국 드루대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고 쓰여있다. 아펜젤러가 말한 ‘유형제’는 유제가 개화기 기독교 선구자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펜젤러의 보고에서 그들은 주일학교를 통하여 설교도 하고 밤에는 부인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아펜젤러와 남쪽지역 가뭄에 대해 고민하고 있
종교
당진시대
2020.09.1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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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양반계급의 초기 신앙인한국인이 개신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 갖게 된 것은 조선왕조가 미국에 문호를 개방한 1880년대 초부터였다. 대체로 1880년대 한국 개화와 관료지식인들의 개신교 수용태도는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즉 유교를 버리지 않으면서 개신교를 관용한 입장, 불교를 믿으면서 개신교를 포용한 입장, 그리고 전통적 종교를 부정하고 개신교에 개종한 입장들이다.조선왕조 내 개화파 관료지식인들은 개항 이후 조국의 ‘개화(開化)’와 ‘부강(富强)’을 모색하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개신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종교
당진시대
2020.09.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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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크리스도인 회보(1897.11.3.)에는 유제에 대한 글이 이렇게 쓰여 있다.“…면천 원을 갈린 후에 덕산 한내라 하는 촌에 거하여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예수도를 행할 때, 인근에 위치한 읍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와 교회책도 가져가고 교회 이치도 묻는 사람이 있는지라”때를 같이하여 수촌사람 조원식과 함께 동역했는데 그는 1892년 7월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로 임명받아 임기를 마친 후 고향인 덕산 수촌으로 내려온 것이였다.한편 유제는 덕산 교회공동체를 부흥시켰는데, 1897년 10월 정동교회 전도인
종교
당진시대
2020.09.0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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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가 코로나19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해 모든 종교시설에 대해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당진의 일부 교회에서 예배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당진시 문화관광과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영상 제작 등이 어렵고 10명 이하의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읍‧면 지역 2~3곳의 교회에서 예배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진시 문화관광과 홍지혜 문화정책팀장은 “당진의 경우 그동안 교회발 코로나19 확진자가 없었고 대부분 교회에서 행정명령을 잘 이행해주고 있다”며 “하지만 행정명령을 어기고 종교행사를 진행하
종교
김예나
2020.09.0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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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완 당진시 기독교역사문화교육위원장탑동감리교회 원로목사 면천 군수직을 마친 후 유제는 거처를 덕산 한내로 옮긴다. 그가 덕산 한내(현 고덕면 대천리)로 이주한 사건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었다. 한내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기독교 전파 때문이었다. 그가 한내로 이사한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예수도를 전함이 소중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상경하는 대신 복음증거를 위하여 면천 인근 덕산 한내로 이사했다.유제는 한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인도하는 선교사명을 다했지만, 그는 많은 어려움과 무고한 오해와 핍
종교
당진시대
2020.08.3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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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의 면천군수 임명은 독특한 면이 있다.면천, 당진, 고덕(한내) 등의 백성들은 유제를 면천군수로 세워 줄 것을 내무아문(內務衙門)에 청원했다.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내부에 청원하여 면천군수를 한 것이며 석비를 각처에 세워 유제의 은덕을 칭송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제는 군수시절 많은 백성들에게 칭송 받았고, 각처에서는 석비를 세워 유제의 은덕을 칭송했다. 뿐만 아니라 아펜젤러 선교사는 유제의 면천 사랑을 기억하고 그 이름을 ‘류면천’으로 명명해 부르는 정도였다. 승정원일기에 유제
종교
김예나
2020.08.24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