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대가 지역사회를 담아내는 폭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새롭게 정착한 사람들,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인 등을 소개하고 유용한 정보를 많이 실어서 당진시대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길 바라요.” 죽음을 연구하는 유정순 당진웰다잉문화연구회장에게 삶이란 더욱 특별하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이 명확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유 회장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활기차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밝고 힘찬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 지난 2009년부터 자격증을 취득해온 그는 한글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에요. 30대에 혼자가 되면서 느낀 고독과 고통을 이 책을 읽으며 극복했어요.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싶어요.”신평면 운정리에서 신성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성은 씨는 올해 63세다. 그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가슴 한편에 아픔을 갖고 살아왔다. 그러다 신영복 교수의 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 위로를 받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그가 지난 1999년, 2009년, 2021년 3번이나 읽은 이 책은 1968년 통일혁명당
“학생이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1년이 넘은 지금..당진시 대학가 상황은 비상! 대학생 코로나 확진자 증가에 비대면 수업들로 발길이 끊긴 대학가 상가... 4월, 봄꽃은 한창이지만 한산한 대학가 현장을 직접 다녀와봤습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나(이광영)는 경기도 오산시에서 40여 년 간 살다가 지난해 7월 당진에 정착했다. 한솔제지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근무한 나는 정년퇴직을 한 후 아내와 귀촌하기 위해 서산, 태안 등을 알아보다 우연히 아미산을 보고 ‘산 아래에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순성면 성북2리에 정착키로 결정했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마늘, 양파, 쪽파, 강낭콩 등 다양한 농산물을 조금씩 재배하며 농촌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성북2리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칠성 이장 추천으로 활동을 하게 됐는데, 지도자 활동
깨진 유리조각들이 널브러지고바람에 휘청휘청거리는 문들이 가득한흉흉한 이곳은?!도심 속 한 가운데 길게 늘여진 폐가촌!단지 외관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은데..수 년째 방치되고 있는 서문리 폐가촌의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나이 지긋한 지역의 원로가 된 지충원 면천향교 전교는 그동안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해왔다. 2018년 2월 면천향교 전교로 취임한 그는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중앙회 부회장을 거쳐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앞서 한국농촌지도자 충청남도연합회장도 6년이나 맡았다.20여 년 전 우강농협 조합장이었던 그는 무엇보다도 농업에 대한 애정이 크다. 쌀농사를 짓는 농업인으로 살아오면서 지금의 농업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농업·농촌이 어렵다고 하는데, 어렵다고 푸념만 할 게 아니라 농민들의 의식도 많이 변해야 합니다. 농민들이 깨어나야 해요. 농협
채운동에 살고 있는 김윤아 씨는 지난 2018년 12월 말 뇌하수체에서 종양이 발견돼 큰 수술을 받았다. 당시 병원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는 다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독서를 좋아했던 그는 호서대 평생교육과 독서심리상담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3년 전부터 독서심리상담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김 씨는 중학생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20대 때에는 하루에 3권의 책을 읽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원 공부로 인해 독서하는 시간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지난 3월, 석문 초락도1리에서 방치된 초락도금식기도원에 엄청난 양의 폐기물들이 포착됐습니다. 널브러진 각종 폐기물들이 비가 왔을 경우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주민들은 노심초사하는데.. 공장 하나 없는 마을.. 주민들을 위협하는 폐기물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20여 년 동안 송악읍 가학리에서 별나라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선 원장은 아이들의 얼굴만 봐도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는 어른들도 생각지 못한 톡톡 튀는 생각과 창의력이 넘쳐흐른다. 아이들은 김종선 원장이 하루를 살 게 하는 원동력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린이집 운영과 관리도 더욱 힘겨워졌다. 방역과 위생에 더욱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김 원장 뿐만 아니라 교사 등 어린이집 종사자 모두 힘든 상황을 견뎌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옛날 사진을 보면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어릴 적 사진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졸업장과 통지표도 보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추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껏 보관을 잘 해왔다. 40여 년 동안 교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퇴임하고 난 후에는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대학장으로 정미면 노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마을에서도 내가 젊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일을 돕곤 한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봉사를 펼치고 싶다. 또한 순간순간을 즐겁고 보람있게 사는
철탑의 도시 당진! 수만 마리 철새들의 쉼터, 소들섬까지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근처에 있는 민가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되는데... 이름도 없던 섬, 소들섬. 매년 추운 겨울 철새들의 낙원이 되어준 소들섬이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시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제작 : 충남콘텐츠연구소 지음
정완옥 전 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장은 지난 16년 동안 새마을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해왔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수청2통 새마을지도자를 시작으로 당진1동협의회장을 거쳐 당진시지회장까지 역임했다. 지난 2월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봉사활동 생각 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언제든지 봉사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새마을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지역 곳곳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도 많고, 구석구
신평면 금천리에 거주하고 있는 안기원 씨는 지난 2012년 경기도 포천에서 당진으로 이주했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았던 안기원 씨는 2016년 유방암 판정을 받으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안 씨가 걸린 유방암은 3중 음성으로 유방암 중에서도 가장 악성이다. 안 씨는 “남편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했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며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에는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생각에 가족이 모두 동행했는데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암 판정을 받고 나오는데 11살 된 딸이 나를 안
사진들이 너무 많아 고를 수가 없을 정도다. 옛날에는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요즘에는 사진 찍을 일이 거의 없어 아쉽다. 코로나19로 인해 밖에 잘 안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나는 올해 여든이 됐다. 여생을 건강하게 아내와 놀러 다니며 살고 싶다. 단체로 해외·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곤 했는데 아내와 단 둘이 다니는 여행이 가장 즐겁다. 시간 제한 없이 편히 쉬면서 순간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노인들에게도 부부끼리 여행을 다녀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사진은 1956년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 찍은 사진이다.나는 우강면 내경1리 토박이로
신평면 거산리에서 정직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황태호 원장은 제자들에게 ‘황쌤’이라고 불린다. 학생들은 원장인 그가 어려울 만도 하지만 그를 편하게 생각해 친근하게 황쌤이라고 부른다. 황 원장은 “눈높이를 같이하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아이들이 보다 재밌게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그는 의약식품을 전공했다. 20대 때에는 한국식품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학원강사인 아내를 만나면서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청소년, 청년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본 아내가 학원 운영을 권유했다고. 이에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다 떠오른다.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더 어렸을 때의 사진도 많은데, 회사 기숙사 생활할 적에 화재가 난 적이 있어 그때 모두 없어졌다. 여수 고향집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아쉽다. 오랜만에 옛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하니 즐겁다.첫 번째 사진은 첫 직장에서 만난 친구 명숙이와 찍은 사진이다.나는 18세에 제일모직의 신사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진 속 왼쪽이 나이고, 오른쪽이 명숙이다. 명숙이는 현재 울산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이다. 우리는 일
“당진시대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요. 지역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은 물론 지역주민들의 대화거리가 되는 말벗 같은 존재에요.”노년학 박사인 김귀자 합덕대건노인대학 교학부장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30여 년을 살았다. 1989년 불과 1년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 남편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상한 삶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그는 삶과 죽음에 관한 세미나를 들으며 웰다잉을 처음 접했고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가톨릭 신자인 김귀자 교학부장은 종교모임에서 만난 당진사람이 호스피스 활동을
순성면 성북2리에 위치한 ‘자연그대로 블루베리(대표 김성욱)’에서는 농가 이름처럼 자연 그대로의 방식으로 블루베리를 키운다. 김성욱 씨는 “식물은 여건이 맞지 않아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리고 산다”며 “환경이 열악할수록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기 때문에 더욱 강해지고 영양성분은 점점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어 “고유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농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씨는 지난 2005년 서울에서 당진을 찾았다. 농사 지을 작물을 고민하
고대면 당진포리가 고향인 김영철 전 당진시양록협회장은 당진에서 줄곧 살다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서울살이가 너무 힘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으나 몇 번의 실패를 겪었다.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중 대우에서 진행하는 리비아 해외취업자 모집공고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5년 동안 리비아로 건너가 열심히 일했다.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고향 당진이 그리워졌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리비아에서 알게 된 지인을 만나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사슴 5마리를 구입했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기에
나는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내게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욕심을 버리고 주위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고자 한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주산을 배우고 있는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다. 나는 순성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에는 1반부터 3반까지 한 반에 57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다. 현재 순성초등학교 전체 학생 수는 100명이라고 들었다. 졸업생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두 번째 사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