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미용과 피부재생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청삼이 고대를 비롯해 순성, 면천 등에서 재배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고대면에서 청삼을 재배해 오고 있는 서흥석 씨는 36개 농가가 회원으로 소속된 청삼연구회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서 회장은 회원 간 청삼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당진청삼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판로 및 소비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서 회장은 당진시대의 출발을 함께 했다. 그는 지역의 활동가들과 함께 당진시대 창간을 도왔다. 서 회장은 “재야에서 진보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과 함께 당진시대 창간을 준비했다”며“당
당진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지속협) 김혜선 사무차장은 당진시대 팟캐스트 애청자다. 처음엔 함께 지속협에서 일하는 이동준 사무국장의 ‘마이콜의 부드러운 직선’을 들으며 당진시대 팟캐스트를 접했다가, 지금은 기자들이 진행하는 ‘뉴스브리핑’부터 ‘봉식이와 연숙이의 인생책방’, 그리고 다문화 이야기를 전해주는 ‘무지개나라’까지 꼬박꼬박 챙겨 듣는다. 청취는 물론 지난 4월에는 놀이서당 회원들과 함께 방송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너무 재밌어요. 신문은 신문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저마다 매력이 있어요. 라디오 방송에 지역민들이 직접 참여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 심상복 명동종합광고 대표는 1977년 10월에 당진으로 내려왔다. 당시 당진으로 시집 온 누나의 권유로 당진에서 광고업을 시작하게 됐다. 가족의 권유로 시작한 광고업은 그의 천직이 됐고, 이를 위해 방문한 당진은 제2의 고향이 됐다. 40여 년간 광고업에 종사한 그는 현재 ‘명동종합광고’를 20여 년간 당진에서 운영해오고 있으며, 그의 영향으로 그의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 모두 당진에서 살고 있다.당진에서 그는 많은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봉사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그는 당진라이온스클럽, 밝은사회당진클럽, 의용소방대
고대면 당진포1리는 당진의 농촌체험마을 ‘1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체험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20여 년 전, 농촌체험마을, 팜스테이, 정보화마을, 녹색농촌마을 등 마을 단위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일찌감치 온라인을 통해 마을주민들이 생산한 황토고구마, 황토배 등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곳은 현재 각 주민마다 단골 소비자들과 꾸준히 거래하고 있을 정도로 판로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최종웅 이장은 “온라인을 통해 당진포1리의 농산물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고정고객이 돼서, 오히려 지금은 온라인보다 단골들을 대상으로 하는
큰 창 너머로 푸른 하늘과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 솔향(행정동)에서는 사시사철 날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솔향을 둘러싼 자연과 한데 어우러지도록 통나무로 지어진 이곳을 전선아 대표가 남편 권세용 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당진시대와 전 대표의 인연도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16년 전 당진에 내려와 인디아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당진시대에 가게가 소개됐다. 그 인연을 계기로 지금까지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있다.“당진시대를 읽기 시작했던 때보다 지금은 신문이 정말 많이 발전했어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지만, 그때나
“당진시대는 지역이 바르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행정과 권력에 대해 과감히 비판하고, 특히 당진지역의 환경문제 등 현안에 대해서 당진시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이홍근 충청남도의정회장은 당진군개발위원장, 충남도의원을 비롯해 한보철강 분리매각 반대 투쟁위원장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해 왕성하게 활동했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현재 전직 충남도의원들의 모임인 충청남도의정회장을 맡고 있다.이 회장은 당진시대 창간부터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독자다.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 보니 지역신문인 당진시대와 접촉할
읍내동 정성가득한방카페에 들어서자 진하게 우려낸 쌍화탕 향기가 코 끝을 스친다. 커피부터 다양한 차까지 손수 내리며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장규진 씨는 최근 당진의 청년활동가로 지역사회를 위한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서른 살인 규진 씨가 사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모든 국민을 비통함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다. 아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은 사회 시스템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의당에 입당한 것도 그 무렵이다. 합덕읍 신리 출신인 규진 씨
한평생 농업에 전념해온 박인규 우강면개발위원장은 농업·농촌에 대한 걱정이 크다. 농촌 고령화와 더불어 최근에는 날씨로 인한 피해까지, 농업인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박 위원장 역시 30년 넘게 해오던 포도농사를 2년 전 접고, 지역의 특화작물로 육성 중인 쪽파 농사를 새롭게 시작했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아직 초기단계인 만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단다.한편 사과와 배 농사는 올 봄 기온이 낮아 동해를 입은 것에 더해 한여름 폭염으로 열과 피해까지 발생했다. 박 위원장은 “수입과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조합원들을 맞이하는 순성농협 민동분 계장이 이곳에서 일을 한지도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지난 세월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지만 2010년 암으로 투병생활을 했던 건 그에게 가장 큰 충격이자 인생을 다시 돌아볼 수 있던 계기가 됐다.“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잖아요. 정말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이해심이나 포용력이 넓어졌어요. 큰 병을 극복해 내는 데에는 신앙생활도 크게 한 몫 했고요. 요즘엔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해요.”그가 전하는 ‘해피 바이러스’는 큰 아픔을 겪으면서
당진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안광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당진지회장은 지난 2001년 합덕여중을 시작으로 교편을 잡기 시작했다. 교사가 되기 이전부터 전교조 활동을 해왔던 그는 전교조의 굴곡진 역사를 지켜봐왔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 꽃을 피웠던 전교조는 여전히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학생들을 향한 올바른 교육과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사회적으로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젊은 교사들의 참여가 점점 줄어드는 등 여러 고민을 안고 있다.안 지회장은 교사 생활을 17년째 하고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에요.”자신의 이름보다 ‘어기구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더 많이 불리는 구본현 보좌관은 지난 2015년, 3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초등학생 때 서울로 떠난 뒤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선배의 권유로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본래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6개월만 같이 일해보자고 한 것이 어느덧 인생이 돼버렸다. 정치라는 게 쉽지 않아 중간에 그만 두고 직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운명처럼 다시 돌아왔다.“정치란 많은 사람들을 대해야 하고, 정쟁이 치열해 스트레스가 커요. 하지만
25년째 농협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병기 면천농협 상무는 농업·농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농사짓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합덕농업고등학교(현 합덕제철고)에 진학했다. 그리고 농협에 입사해 경제사업 관련 업무를 계속 맡아왔다.관심이 많은 만큼 점점 어려워지는 농업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농촌지역의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농촌경제가 어려운 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유 상무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고 있는 세태다. 사람들이 농업·농촌에 관심을 갖지
김종문 전 충청남도 교육위원은 당진군개발위원장, 당진군체육회 부회장 등을 맡으며, 20여 년 전 당진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던 당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 중 하나다. 지금은 지역의 원로로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면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김종문 전 위원은 계성초, 고대초를 거쳐 당진초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 10여 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후 그는 초대 충청남도 교육위원으로 선출돼 3대 교육위원까지 연임했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진상고를 당진정보고로, 당진여고를 당진고(
지체장애인 2급인 김완종 씨는 다섯 살 때 머리를 다치며 장애를 얻었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도, 의사소통도 편하게 할 수도 없지만 당진시장애인복지관을 꾸준히 다니면서 그림도 그리고, 오카리나도 연주하고, 글도 쓰는 등 여러 활동을 하며 활기차게 살고 있다. 당진시대에 대한 애정 또한 여느 독자 못지않은 그는 틈틈이 신문을 읽으며 지역의 다양한 소식을 접하고 있다.김완종 씨는 천안 출신으로 35년 전 일자리를 찾아 당진에 왔다. 당시 입사한 공장 한켠에 당진시대가 놓여 있었고, 그렇게 처음 당진시대를 알게 됐다. 글쓰기를 좋아하
60년 동안 합덕읍을 지켜온 성낙근 합덕읍이장협의회장은 고향에 대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도 크다. 서동리 이장을 맡은 것도 벌써 9년째, 합덕읍이장협의회는 물론이고 오는 28일과 29일 열리는 제2회 버그내연호문화축제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의 흥망성쇠와 함께 울고 웃었다.“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보람도 크지만 책임도 무겁습니다. 과거 당진의 중심이었던 합덕읍과 남부권의 침체가 오래 이어져 걱정이에요. 남과 북의 기찻길이 열리면, 합덕을 지나는 서해선복선전철 건설을 계기로, 남부권이 재도약했으
용연동 출신으로 용연초와 호서중을 졸업한 뒤 당진을 떠난 유 변호사가 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형진 변호사와 함께 당찬공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유 변호사는 본래 수의학을 전공해 농협중앙회에서 수의사로 일하다, 법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지난 2013년 충남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전국노숙인시설협회, 세계의심장 자문변호사를 맡는 등 사회적 역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당진시대를 구독하게 됐다. 유 변호사는 “당진시대는 오랜 기간 지역언론으로서 역할과 기능에 충실해 온 점을 익히 잘 알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면서 논·밭으로 향하는 농부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진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요즘,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이남일 전 한국쌀전업농 당진시연합회장 또한 농사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드넓은 소들평야에서 질 좋은 쌀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해마다 농업·농촌이 어려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치 않다. 한 때 농업웅군을 자랑하던 당진도, 이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게다가
25년 전, 당진시대가 창간했을 때부터 구독하고 있는 강우영 전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장은 시간이 지나도록 당진시대에 대한 애정이 변함없다. 그는 “지역 곳곳의 소식을 속속들이 전달해 주는 당진시대는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당진시대를 칭찬했다.“당진시대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추구하는 지역신문으로 주민들에게 지역의 현안과 미담 등 다양한 정보를 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발로 뛰면서 생생한 현장을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강우영 전 회장은 당진시대의 오랜 독자이자
“당진시대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독자들이 신뢰하는 지역신문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당진시대는 참 아픈 신문이기도 하죠. 그러나 날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해요.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잡아 더욱 냉철하게 현안을 전달하는 언론이 되길 바랍니다.”신평농협 최기환 조합장은 15년 넘게 당진시대를 구독하고 있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지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해 구독을 시작했다는 그는 당진시대는 내용이 알차고 다양한 소식이 담겨 있어 좋다고 평가했다.최 조합장은 “독자들이 신문을 보는 이유는 당진지역의 종합적인
송산면 유곡리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는 김장호 씨는 서울에서 37년 동안 공무원으로 생활하다 정년퇴직 후, 송악읍 석포리 출신인 아내(이재선)와 함께 고향인 유곡리로 돌아왔다. 7년 전 귀향하면서 당진시대를 구독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빠짐없이 신문을 읽고 있다.“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지역에 대해 알고 싶어서 당진시대에 전화를 걸어 스스로 구독을 신청했죠. 당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식을 알 수 있고 농업과 관련한 정보도 알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됩니다.”유곡초등학교(15회)와 당진중학교(17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