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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소식]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6
90세가 넘은 정기수 어르신은 1960년 무렵부터 어업에 종사했다. 아산만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나아갔다. 아산만 일대에서는 주로 준치, 숭어, 강달이 등을 잡았다.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복(伏) 중이면 삽교천에서 해파리도 잡혔다. 정기수 씨는...
당진시대  2022-07-09 17:05
[기획]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4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 중심으로 어업활동
한때는 남원포구에 어선이 수십여 척이 정박했다고 하나, 구술에 참여한 주민들은 1960년대를 전후로 포구에 어선은 많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대신 부장리의 어선들은 남원천을 따라 곳곳에 정박했다고. 주로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서 부장리에 정착한 피난민들...
당진시대  2022-06-13 13:10
[기획]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1 우강에서 가장 번화했던 포구
우강면 부장리에 위치한 남원포구는 강문리의 사발포(부리포)와 더불어 1970년대까지 우강에서 가장 번화한 포구였다.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으며, 남원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부장리농협이 설립되면서 부장리는 물론, 인근 마을...
당진시대  2022-04-11 16:21
[읍면소식]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 독개나루 2
삽교천변의 주요한 해상교통 중심지
독개나루 인근 마을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쌀로 운임을 지불했다. 이용하는 빈도에 따라 운임을 달리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근 마을 주민 중에는 도고장이나 선장장으로 채소나 생선 등을 팔러 다니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반주민들보다 더 많은 양의 ...
당진시대  2022-03-05 21:01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 독개나루 1
삽교천 건너 아산으로 가던 나루터
독개나루는 합덕읍 신흥리와 우강면 내경리에서 아산시 선장면 궁평리 모새절로 가는 나루다.독개나루는 삽교천 연변에 사는 합덕과 우강의 들 사람들이 식수가 나빠서 독개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삽교천을 건너가 선장에서 식수를 구해 오던 곳이었다. 옛날에는 당...
당진시대  2022-02-20 21:19
[기획] 삽교천 통해 조세미 경창에 실어나르던 곳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1
합덕은 오래 전부터 감조하천(感潮河川)인 삽교천 연변에 위치한데다 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쌀 생산량이 많아 수상교통이 발달한 지역이다. 우강과 더불어 곳곳에 조창이 설치되어 삽교천의 조운로를 통해 조세미를 경창(조선시대에 설치한 중앙의 세곡 저장창고)에...
당진시대  2021-12-18 13:17
[기획] 시루지에서 참봉고사 지내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시루지 2
시루지에는 살매기를 하는 이들이 물 때를 기다리기 위해 만든 임시초소인 ‘살막’도 있었다. 해변가에 움막 형태로 지은 살막은 저마다 살 맨 곳이 잘 내다보이는 곳에 지었다. 살을 맨 사람들은 참봉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떡이며 음식을 가져다 놓고 제를 ...
당진시대  2021-07-19 20:03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시루지 1
전통어로 사둘질…낙지잡이도 번성
시루지에서는 살 말고도 조립식 휴대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사둘질도 이뤄졌다. 물이 쓰면 낙지도 많이 잡혔다.“시루지 앞바다에 뻘이 길게 빠지면 낙지가 무지하게 잡았어요. 거기 가면 암만 못 잡아도 50~60마리, 많이 잡으면 150마리씩 잡았다고. ‘양...
당진시대  2021-07-12 18:14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서원포(중선골) 3
신흥개발 방조제 건설하며 사라진 서원포
서원포가 사라진 건 1960년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기록은 찾지 못했으나 지역주민들의 구술에 의하면 1960년대 서원천 하류에 제방이 막히면서 바닷물의 흐름이 끊겼다. 주민들은 이 제방을 ‘신흥개발 방조제’라 불렀다. 농지개발의 일환으로 시행된...
당진시대  2021-05-17 11:40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서원포구(중선골) 1
새우젓 장사꾼 오가던 서원천 외나무다리
서원포구는 송산면 명산리에 1960년 중반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 작은 포구다. 주민들의 구술에 의하면 현재 송산방조제에서 2km 가량 떨어진 상류에 일명 신흥개발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바닷길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인근 주민들은 명산리의 서원포구를 이...
당진시대  2021-05-03 19:06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7
오섬의 별미인 맛조개호박볶음과 소금에 절인 꽃게
썰물 때면 오섬포구 앞 갯고랑에도 펄이 드러났다. 오섬 앞 펄에는 특히 맛조개가 많이 났다. 오섬 주민들은 ‘써개라’는 맛 잡는 도구로 맛을 캤다. 더러는 펄에 커다란 둥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앉아 맛을 잡기도 했단다. 그러다 물 들어오는 때를 놓치면 ...
당진시대  2021-04-19 11:36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2
“썰물 때면 바지 걷고 걸어 다녔지”
동곡리 은골과 쌍천동 송산면 동곡리에 남은 옛 지명 중 ‘은포’라 불리는 포구를 기억하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다만 현재 송산방조제를 막은 지점에 은골이란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안평일 씨의 집은 앞마당에서 낚시대를 던지면 바다에 닿을 만...
당진시대  2021-04-19 10:44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4
마을의 역사 간직한 소금창고
옛 항구의 흔적 대부분이 사라진 오섬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이 있다. 옛 나루터 부근에 자리한 낡은 창고가 그것이다. 이 창고는 일제 강점기 때 오섬항을 통해 공출되었던 쌀을 보관했던 창고로 알려졌다.오도리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
당진시대  2021-03-22 11:23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3
당진의 관문이었던 ‘오섬포구’
오섬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다. 당시 오섬은 당진에서 인천으로 가는 정기여객선을 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60세 이상의 당진 출신 주민들 중에는 오섬에서 인천행 여객선을 타고 서울을 드나들었다던...
당진시대  2021-03-08 11:18
[뉴스]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1
당진의 관문이자 대표 항구 ‘오섬’
조선시대 이전부터 당진은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포구의 기능도 주로 세곡 운반에 비중을 두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포구들은 점차 쇠퇴해 이제는 옛 지명이나 문헌을 통해 당시의 명성을 가늠할 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당진의...
당진시대  2021-02-23 16:06
[읍면소식]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성구미포구 5
통발로 만든 상에서 먹던 성구미 간재미무침
성구미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음식은 간재미무침이다. 갖은 야채를 넣고 매콤새콤하게 무쳐낸 간재미는 봄철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유명했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당진의 바닷가로 관광객들이 몰려들 무렵, 성구미포구도 외지에서 온...
당진시대  2021-01-29 20:50
[기획]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성구미포구 2
낭장배·실치배·통발어업 성행했던 황금어장
1950년대 전까지 성구미포구에서는 중선배·유자망 어업이 이뤄졌고,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낭장망·자망 어업이 번성했다.‘돼지배’라고도 불리는 낭장망은 한때 10여 척의 성구미포구 어선이 사용했던 주된 어업방식이었으나 현재는 단 두 척의 배만 남았다...
당진시대  2021-01-04 10:46
[기획]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마항포구 2
“새우젓집 뒷마당에 커다란 독이 가득”
송악읍 도원리 출신인 송화섭 씨와 박영규 씨도 말목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말목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던 어린 시절, 윤장성 씨네 집 뒷마당에서 새우젓 담은 커다란 독을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지금 초대천 다리를 놓은 곳에 이전에도 물을...
당진시대  2020-12-16 10:12
[뉴스] 동녘끝 퉁수바위로 소풍 오던 시절
행담도 주변 아산만은 간조시 수십만 평의 모래펄이 드러나는데, 이곳에서 인근 어민들이 조개를 잡고 굴을 땄다. 행담도 인근 갯펄은 △평택 만호리와 행담도 사이에 드러나는 수십만 평의 모래펄인 영흥펄 △맷돌포 앞과 평택호 관광단지 앞에 드러나는 진강펄 ...
당진시대  2020-10-10 16:57
[뉴스] 1960년대 신평어촌계의 중심이었던 깔판포구
“그땐 깔판포구 규모가 더 컸지. 포구는 없었어도 배들이 그쪽으로 많이 돌았어. 다른 데는 뻘인데 깔판은 모래사장이라 배를 대 놔도 가만히 있잖어.” (노이석) 인근 포구 어디에도 어선을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천연 모래해변이 조...
당진시대  2020-09-1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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