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출향인을 만나다] 재판정에 선 소설 ‘분지’의 작가 남정현 선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러나 채운뻘이 키운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
촉망받던 신예, 솔직 대담한 항거로 권력의 그늘밑 30년


“그러나 채운뻘이 키운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
촉망받던 신예, 솔직 대담한 항거로 권력의 그늘밑 30년

알만한 사람들은 작가 남정현(65세)씨를 안다. 그리고 그가 정미와 당진읍 사이를 오가며 채운뻘에서 꿈을 키운 문학도였다는 사실을, 그보다 그가 많은 작품으로 내내 유명세를 타지 못한 것이 문학적 재능부족이나 나태 또는 그외의 다른 어떤 이유때문이 아니라 서슬퍼런 60~70년대에 저항문학의 맨앞에 서서 언제나 맨처음 칼을 맞고 쓰러져 오랫동안 지병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더구나 그의 작품 <분지>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재판을 받은 작품이었다는 사실과 그로부터 20여년간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판금당해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가 않다.
최근 그의 작품에 대한 활발한 재해석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혜화동 자택에서 조용히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노작가 남정현씨를 만났다.

불온한 작가군에서 민족작가군으로

남정현 선생을 만난 곳은 혜화동 로타리 근처에 있는 '보헤미안'이라는 찻집이다. 우체국 2층에 자리잡은 이 찻집은 '우체국'이라는 이름이 주는 고풍스러운 느낌 때문에 왠지 더 시적(詩的)이다. '오늘도 나는 우체국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했던 유치환의 시가 떠오르는 탓인지도 모른다.
깡마르고 작은 체구의 남정현 선생은 서울시에서 가장 늦게 잎이 진다는 도로변 플라타너스가 가까이 보이는 창가에 바싹 기대 앉아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나무의 기(氣) 때문에 내가 항상 이 자리에 앉게 되는 건지,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늘쌍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잎이 푸른건지, 그건 나도 몰라. 아무튼 10년 넘게 난 이 자리에 앉아왔어.”
애정어린 눈으로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는 남선생의 말처럼 이 골목 저 골목 떨어진 잎새들이 나뒹구는 것과는 달리 찻집 앞의 몇그루 플라타너스는 아직도 시퍼런 이파리들을 무성하게 달고 있었다.
대화는 자연 고향이야기로 시작이 되었다. 남선생의 고향은 정미면 매방리. 한때 서산군에 편입되어 있다가 당진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한때 극심한 탄압속에 칼부림을 당했던 ‘불온한 작가군’에서 이제는 ‘진보적.민족적 작가군’으로 소속이 바뀐 그의 내력과도 같다.
아직도 한달에 한번 모임을 갖는 고향친구들의 오랜 우정을 남선생은 자랑했다. 그들은 모두 당진중학시절에 만난 친우들이다.

잊지못할 채운뻘에서의 독서

당시 정미 천의에서 당진중학을 오가면서 하루에 꼭 두번 지나던 곳이 있었다. 지났다기 보다 흠뻑 빠졌던 곳이다. 드넓은 채운뻘이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에게 그곳은 넓은 세상을 가르쳐준 곳이고 특히 돌아가는 해질녘의 그곳은 황홀하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돌아가다 논작업 일손을 괜스레 거들기도 하고, 쌓인 볏짚에 기대어 몇시간이고 책을 보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채운뻘이 나를 키운 셈이지. 빌린 책을 보다 광활하기 짝이 없는 채운뻘을 바라보면 세상이 왜 그다지도 아득하고 고독하고 때로는 광활하고 생동했는지 몰라.”
이때부터 시간이 흘러서도 채운뻘을 연상하면 어렴풋이 윤곽이 잡혔던 그의 생각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이 광활한 자연을 신이 창조했다면 사회를 창조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사회를 창조하면서 비로소 도덕과 안전이 생겨났다. 자연 자체를 볼 때 자연은 약육강식의 생존논리와 공포.두려움이 지배하는 곳이지만 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본적인 힘은 문학이다. 문학은 설령 말 한마디, 글 한귀절이라도 불안정한 인간에게 위안이 되는 진정한 힘이다.'
남선생은 또 윤동주의 '서시'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당시 사회와 시대상황에서 민족적 순결성을 지키려는 뼈를 깎는 고통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며 모든 문학작품은 역사와 사회를 떠나서는 가치를 따질 수 없다고 말했다.

스물여덟에 동인문학상 수상한
빛나던 ‘신예’

남정현 선생은 스물여덟살 되던 1961년, 잡지 ‘사상계’에 소설 '너는 뭐냐'를 발표하며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신예였다. 그러나 문학의 존립이 필연적으로 사회를 향한 날카롭고 진지한 통찰에 기초한다는 그의 문학관은 이후의 작품에서 가장 솔직한 형태로 드러났다. 그의 문학인생은 이미 고난을 예고하고 있었다.
1964년 단편소설 ‘분지’를 발표하면서 이것은 현실로 나타났다. 해방후 미군정이 시작됨을 상징하는 미군진주. 그 환영행렬 속에서 미군에 의해 겁탈당하는 어머니를 대상으로 설정한 편지글 형식의 사회고발소설인 ‘분지’는 아마도 국내 최초의 직설적이고도 통렬한 민족소설일 것이다.
‘미국에 의한 겁탈’이라는 소재는 지금까지도 민족문학.실천문학의 맥속에서 우리민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결정지은 가장 중대한 요소로 떠오른다.
국가권력의 정통성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작품은 결국 재판정의 피고석에 세워졌으며 남선생은 구속되었다. 7년 징역, 자격정지 7년을 구형받고 3년을 끌었던 이 재판은 국내 문학사를 어둡게 장식하며 ‘선고유예’로 간신히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작품 ‘분지’만큼은 출판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3년간의 고통과 병들고 지친 육신, 남정현 선생은 당분간 작품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진지한 통찰과 해학으로
모순에 도전

10여년의 길고도 어두운 공백끝에 남선생은 당시 이어령씨가 맡고 있던 '문학사상'에 '허허선생'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당당히 재기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왜곡된 사회구조와 모순, 지배계층의 허구적인 의식을 해학적이고 신랄하게 드러낸 것으로 74년 긴급조치 1호로 가장 먼저 지목받게 되었다. 남선생은 기소조치도 없이 형무소로 직행했다. 다시 한번 권력에 의해 다리가 걸린 것이다.
20대의 나이에 동인문학상으로 문학계의 촉망을 받으며 출발했던 재기 넘치는 신예작가는 허구적인 권력에 솔직대담하게 도전함으로써 그 꽃을 활짝 피우지도 못한 채 그후로도 10여년간을 자신의 작품과 함께 그늘속에 묻혀있어야 했다.
이 사이에 작품활동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남정현의 화려한 명성은 권력의 그늘에 가리운 채 한풀 꺾여 세간에 전해졌다.
미약하나마 ‘정치의 해빙기’가 시작된 87년에 가서야 소설 ‘분지’는 판금상태에서 해제되었다. 정작 작품을 내놓은지 23년이 지난 뒤였다.
이러한 여정을 남선생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요새 '창작과 비평'에 '세상의 그 끝에서'라는 작품을 새로 발표했어. 노아의 홍수와도 같은 인간파멸상태에서 새로운 희망을 갈구하는 모습이지. 우리의 현실은 마치 인간의 내면세계에 폭탄이 떨어져 황폐해진 느낌이고, 우리는 그것을 새로 복원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얘기지.”
이런 생각은 최근 '실천문학'의 권두언에서 남선생이 쓰고 있는 <시장원리>와 <인간원리>의 대비에서도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질서가 죽음과 멸망을 낳는 에고이즘(이기주의)의 극을 향해 달리는 <시장원리> 속에서도 문학은 <인간원리>를 추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

“위대한 고전들을 잘 들여다 봐. 영원불멸의 위대한 울림이 결코 그 시대가 요구하고 염원하는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보게 될거야. 그것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인간에 대한 절절한 사랑, 동시대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이지.”
이 또한 남선생의 중요한 문학관의 한 줄기다.
최근 남선생은 자신에 관한 문학논문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각 대학과 대학원 논문에서 남정현과 그의 작품들이 활발하게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썩 싫지 않으면서도 남선생은 요사이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한 빈자리에서 새로운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사람의 죽음을 보았지. 시인 신동엽이도 내 품에 안겨 숨을 거뒀어.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지. 난 내 집사람의 임종을 끝내 보지 못했어. 반려자의 의미, 요새 난 그에 합당한 새로운 언어를 찾고 있지.”
그런 한편 남선생은 요사이 털어버려야할 인간상징,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는 인물인 ‘허허선생’의 반대인물을 구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아름다운 인간사회 구축을 위해 일하는 성스러운 인간상을 현실에서 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평론가 이와나미가 내 작품을 번역하면서 나를 '현실과 격투'하는 작가라고 소개했더군. 이제는 새로운 주인공을 통해서 이 현실을 복원해야지.”
이 말을 남선생이 자리를 뜨면서 일러준 마지막 말에 이어보니 훨씬 뜻이 명료해졌다.
“문학은 수용할 수 없는 게 없는 가장 큰 그릇이야. 그리고 또한 종교가 아니면서도 종교보다 더 숭고한 것이지.”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