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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1995.01.16 00:00

고장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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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악면(松岳面)에 속한 리명(里名) ⑧
- 학이 모여든다 해서 소학동, 쇠약골로 변해

19. 月谷里(월곡리)
본래 洪州君(홍주군) 新北面(신북면)지역으로서 다라실 또는 월곡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大洞(대동), 大垈里(대대리) 일부와 中興面(중흥면)의 月谷里(월곡리)를 병합하여 월곡리라 해서 당진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월곡리의 자연부락명은 대촌리, 다라실이다.
20. 井谷里(정곡리)
본래 면천군 중흥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內井里(내정리), 外井里(외정리), 丹谷里(단곡리)를 병합하여 外井(외정)과 丹谷(단곡)의 이름을 따서 정곡리라 해서 당진군 송악면에 병합되었다.
정곡리의 자연부락명은 담안, 구루지, 배울이 있다. 담안의 지명은 함박섬, 소반창, 몽추골, 망우리가 있다. 구루지의 지명은 턱대골, 용이안, 벌그버리, 동미, 사둘꾸지가 있다. 배울의 지명은 속수섬, 상골, 텃골, 숨박골, 증설미, 개머리, 구유섬, 왕재, 삼꾸덜기가 있다.
21. 石浦里(석포리)
본래 면천군 中興面(중흥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石橋里(석교리), 好音里(호음리)와 승선면의 客浦里(객포리), 書院里(서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석교(돌다리), 객포(객가→객께, 원래 개펄가 즉, 갯가를 한자표기로 객포)에서 이름을 따서 石浦里(석포리)라 하여 당진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석포리의 자연부락명은 갯가, 샘골, 담안, 돌다리가 있다. 갯가의 지명은 대고랑, 강울, 용샘이 있다. 갯가의 유래는 농지로 조성되기전 비사로 되어있었기에 배가 들어와 항구로 사용되었다고 하여 갯가로 불리우게 되었다. 담안의 지명은 담안, 가마닥, 방아다리가 있다. 돌다리의 지명은 돌다리, 갓골, 느랭이가 있다.
22. 佳鶴里(가학리)
본래 면천군 昇仙面(승선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下佳里(하가리), 內洞(내동), 後谷里(후곡리)와 金鶴里(금학리), 上佳里(상가리)라 하여 당진군 송악면에 편입되었다.
가학리의 자연부락명은 선머리, 쇠약골, 덕적골, 광대고랑, 웃가사울, 도구머리, 서쪽마을, 동쪽마을, 당닥골, 한사울, 터굴, 당고개가 있다.
선머리는 서원머리라고도 하며 유래는 송산면 명산리에 서원이 있었는데 서원앞에 있다 해서 서원머리라 했고 서원머리가 변하여 선머리라 전한다. 쇠약골의 지명은 소학동이 있는데 이 유래는 학이 모여든다 해서 소학동이라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 쇠약골이 되었다.
덕적골의 지명은 황적골, 봉이자리가 있다. 황적골의 유래는 파라산 밑에 큰 황정승묘가 있어서 황정골이었다가 덕수李氏(이씨)가 와서 비석, 장군석등을 묻어 버리고 그 바로밑에 큰묘를 쓰고 덕적골이라 개명까지 했다 한다. 봉이자리 유래는 덕수이씨묘가 벼틀에 도트마리 형국에 섰는데 3정승 6판서가 나올자리었는데 아들 3형제가 다 죽어서 과부가 된 며느리 셋이 묘를 파헤쳐 버려 석관을 열으니 봉이 날아가 그 앞논에 앉았다 물을 먹고 떠났다 해서 봉이 앉았던 논을 봉이자리라 일컫는다. 그후 관을 다시 덮고(좋은 자리라 해서) 묘를 원상회복 했지만 과부 셋이 모두 아들 셋을 낳았지만 정승은 못되고 당고개에 여러호가 잘 살고 있다.
동쪽마을의 유래는 동쪽에 위치해 동쪽마을이라 칭하는데 집 좌향이 모두 동쪽을 보고 지었다 해서 단합도 잘된다. 당닥골의 유래는 사리때에는 학교앞까지 갯물이 들어왔다 해서 당집을 짓고 바다에 제를 올리기 위해 지은 집이 있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자료제공:구자생(송악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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