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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모아서 뭐한대유” - 당진읍 무궁화이발소 박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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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을 위한 삶을 사는 박기택 씨

당진군민대상 사회봉사부문 대상 수상

약간 마른 편에 연약해 보이는 체구. 고생 많이 한 촌로의 모습. 박기택씨(61)의 첫 인상은 그랬다. 깍듯이 내미는 그의 손을 잡으면서 이발소에 들어섰다.
당진읍 군민회관옆 골목에 위치한 그의 이발소는 4평 남짓한 공간에 거울과 마주한 의자 두 개와 작은 소파, 세면대가 옹기종기 붙어있었고 가족사진이 눈에 잘 띄는 벽쪽에 붙어있었다. 밖에서 보면 허름한 건물이지만 내부는 속이 실한 게딱지 같았다. 이발소는 꼭 박씨를 닮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파출소 소사, 자전거포 점원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박씨가 이발을 처음 시작한 건 18세부터이다. 군 제대 직후 집 근처에 중풍으로 누워 계시는 분을 찾아가 머리를 깎아주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주변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의 머리를 무료로 깎아주고 있다.
올해 당진군민대상 사회봉사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그는 30년 넘게 숨어서 이 일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극빈가정 자녀들의 학자금도 대납해주고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을 굳이 알려서 무엇하겠느냐”며 상 받고 칭찬 받는 일이 오히려 어색한 듯 머쓱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가 돌봐 준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16년째 머리를 깎아주었던 노인이라고 한다. 21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던 그 노인은 박씨를 붙들고 이 신세를 어떻게 다 갚냐며 울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빨리 나아서 건강하게 걷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보답하는 거라는 대답이 무색하게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못내 아쉬운 듯이 잠깐 고개를 떨구는 그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박씨의 집에도 그가 꼭 돌봐야 할 사람이 있다. 그의 아내는 7년째 뇌경색으로 투병중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효부상을 받기도 한 박씨의 아내는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몇 년 동안 병간호를 했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위해 박씨는 매일 아침 손수 조반을 차린다. 거기다 새벽에 밭일까지 한다는 그의 부지런함은 어려운 세월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모를 대신해 남동생 둘과 여동생 둘을 출가시켰다. 나이보다 10년은 더 깊게 패인 주름이 그간의 고생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스려 보려고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며 자녀분은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더니 금새 환해진 얼굴로 자랑을 시작했다. 슬하에 1남 2녀 중 딸 둘은 모두 시집을 보냈는데 “사위가 맘에 쏙 들어” 하고 말한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검찰사무직(공무원) 준비중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다들 착하고 성실해서 속 썩인 적이 없다며 내심 흐뭇해했다.
“돈 많이 모아서 뭐한대유, 보람있게 살다 가면 그만이쥬.”
고생하며 살아 온 사람 입에서 나오기는 힘든 말이었다. 아들 장가보내고 여유가 생기면 이발소를 늘려 노인들을 위한 사랑방을 만들고 싶다며 자식 자랑할 때의 그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 모을 궁리보다 쓸 궁리를 먼저 하는, 채운리 토박이 박기택씨는 거울과 마주한 의자 두 개와 작은 소파, 세면대가 옹기종기 붙어있고 가족사진이 눈에 잘 띄는 벽 쪽에 붙어있는, 살맛, 밥맛 나게 하는 게장같은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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