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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볼만한 산 ] 산소처럼 갸날픈 억새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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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계곡의 맑은 물 마시며 황석산성 오르는 길

조망 제일의 “황석산”

박 대 희 당진산악동우회회장


높은 산과 고개가 너무 많아 천령이라는 이름을 지닌 함양군에서도 산세와 조망 제일의 황석산(1190m)은 북으로 길게 거망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과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따라 교태스럽게 하늘거리는 억새의 장관이 아름다운 산이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대각선을 이루는 금원산과 기백산의 능선을 비롯하여 천고지가 넘는 4개의 거대한 봉우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하나의 계곡을 만들었으니 안의현의 3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용추계곡이다. 이곳은 너무 아름다워 심진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당진에서 경부고속도로 천안과 대전을 지나 다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지곡 톨게이트에서 24번 국도로 빠져나와 용추계곡 표지판을 따라 20여분 가다보면 유동마을 좌측에 산행안내판을 만난다.
그 길 따라 연촌 마을로 들어서면 붉은 빛으로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와 밤나무가 알밤을 드러내 보이고 맑게 흐르는 개울물이 한가롭게 흐르니 시골 정취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마을길을 10여분 오르니 마을 어귀에 등산길의 초입을 알리는 리본이 눈에 띈다. 고향의 뒷산처럼 정감을 주는 높은 수고 밑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포근하게만 느껴지는 솔밭길이다.
산이 붉으니 흐르는 물 또한 산빛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려니 솔 향기 그윽하고 걸을수록 포근해서 더욱 좋다. 초입에서 1시간 가량 지나 우측 능선허리를 안고 돌아서니 정상에서 뻗어내린 지능선은 급경사로 이어진다. 초입과 전혀 다른 경사길을 오르다가 가쁜 숨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 한 모금 청해 보지만 나무 사이로 새어나온 정상의 맑은 하늘이 가린 지 오래다. 참으로 대단한 경사구나, 하는 마음에 2시간 가량 지난 후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힘겹게 오르니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기백산과 금원산이 보이고 남 덕유산에서 지리산으로 장쾌하게 뻗은 백두대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한 앞을 바라보니 양 날개를 펴는 듯한 거대한 암봉 두 개가 백색에 황색 물감을 덧칠한 듯 서 있으니 좌측 봉우리는 우전 마을에서 올라서는 봉우리이며 또 하나는 황석산 정상이다.
거대한 바위들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듯한 암봉은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며 좌우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황석산성의 시원스럽게 뻗어나간 성곽은 심산유곡의 심오함과 유연함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산세와 북서로 뻗어내린 암봉을 감싸안으며 미완성 성곽을 오르니 암봉의 위엄과 부드러움의 이면성을 보여주는 황석산성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혜의 요새다.
정상에 올라서니 바위 사이를 타고 스며드는 가을 바람이 세차게 느껴진다. 정유재란 때 왜구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다 성이 함락되자 이제는 하는 마음에 천길 절벽으로 몸을 날려 지금도 바위가 붉게 보인다 하니 그 한이 오죽 하였을까? 오던 길을 따라 하산하다 다시 안부에서 북쪽 길로 향하니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 우회도로를 버리고 오던 길을 바로 향하니 북봉의 암반 능선 길이다. 미리 준비해온 로프를 이용하여 내려서니 짧은 거리지만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바위길의 짜릿한 기분은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빼곡이 들어선 나무숲은 온통 시야를 가리며 나뭇가지는 모자고 배낭이고 친구를 반기듯 자꾸 끌어당긴다. 1154봉에 이르니 약간의 조망을 보여줄 뿐 첩첩이 들어선 숲이 다시 시작된다. 높은 참나무 경사길을 내려서 나지막한 봉우리를 다시 올라서니 키를 넘은 싸리나무와 넓은 초지의 억새군락을만난다. 가을은 모두가 단풍만을 생각하지만 단풍보다 먼저 가을을 손짓하는 억새! 그 푸르름에 윤기 찬 억새가 청초한 빛을 발하며 반짝일 때 나무가지의 푸른 잎새는 단풍을 준비한다.
찬바람에 낙엽이 땅 위에 흩어질 때 다시 흰빛 억새는 싸늘하게 다가서는 바람과 더불어 깊어가는 가을의 아련함을 더해준다. 단풍은 화려하고 정열적이며 따뜻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억새는 소박하고 청초하며 시원한 산소같은 가냘픔이 있어 좋다. 지금 우리는 그 산소 같은 억새를 지나려니 바람따라 흔들리는 억새가 조용히 다가서며 귓속말로 유혹하는 것 아니니 괘념치 말라고 한다.
30여분을 지나 주 능선 안부에서 장벌재로 향하는 우측 하산길은 급경사의 연속이며 20분 정도 내려서니 능선상에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를 만난다. 봉우리 시작부분에서 90도 우측으로 내려서니 산은 다시 가파름의 연속이며 산죽은 길을 덮고 온 산에 만연하니 그곳이 이곳같은 등산길과 사람 발길 잦지 않은 바위군락지의 두텁게 낀 푸른 이끼가 태고의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하산한 지 2시간 가량 지난 후 넓은 계곡의 흰 반석 위에 둘러앉아 시원스럽게 흐르는 용추계곡의 맑은 물을 바라보며 술 한잔 기울이니 가을날의 낭만이 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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