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동(42)씨는 18살 때부터 농사를 진 남한의 농부이고, 임명희(32)씨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러있던 북한 처녀였다. 둘은 말 그대로 남남북녀인 셈이다.
중매로 한씨가 중국까지 가서 임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99년 8월 15일. 이듬해 6월29일 한씨는 임씨를 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형편 상 결혼식은 꿈도 못 꾸고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했다. 다시 일년이 지나 첫딸 수진이를 낳고 올해 5월경에 둘째를 임신했다. 남편 한씨는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었지만 농사일과 하루하루 일 다니기에도 급급했다. 지난 10월29일의 합동결혼식은 임씨의 막내 시누이 한용석씨가 신청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다 좋죠, 뭐. 생활력도 강하고, 착하고, 어머님에게도 잘하죠. 일도 뭐든지 야무지게 하니까 나무랄 데가 없어요.”
남편 한씨는 부인에 대해 뭐든지 좋죠, 이뻐요, 행복해요, 라는 말로 끝마친다. 조금 시샘이 나서 나쁜 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없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허허허, 하며 어정쩡한 웃음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런데 부인 임씨는 남편에게 영 서운한 점이 많은 모양이다.
“보따리를 몇 번이나 쌌어요. 남편이 너무 게을러서 많이 싸웠고 싸우고 나면 속상하고 못 보는 부모와 형제 생각에 참 서럽더라구요. 처음엔 남편 통장에 10만원도 없는 거예요. 첫애 낳고 장사, 식당일, 밭일 등 조금씩 돈 벌러 다녔어요. 이제는 빚도 갚고 허리 조금 폈죠.”
남편 한씨는 아버님이 며느리를 못보고 눈을 감으신 게, 부인 임씨는 친정식구들 없이 결혼식을 올린 것이 영 섭섭하다. 그래도 둘은 결혼식을 마치고 온양 온천으로 1박2일간의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이 어땠냐는 말에 신랑 한씨는 “기분 좋았죠, 조금 떨리기도 했어요”라며 웃는 반면, 신부 임씨는 “사람 사는 거야 다 똑같죠. 북한이고 중국이고 남한이고 뭐 다를 게 있겠어요”라며 덤덤하게 말한다.
그래도 사진을 찍을 때는 남편 옆에 꼭 붙어 서서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말로만 그랬지 실상은 남편 사랑보다 부인 사랑이 더 깊었나보다.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