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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9 21: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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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자부뤽켄 미대 입학을 앞둔 정용재씨 "

“당진상고를 졸업한 후에 미대에 여러 차례 지원을 했었지만 고배를 마셨죠. 제대 후에 돌조각 작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한 2년 제자기간을 보냈고 1년 간 석공생활을 했어요.”
미장공이었던 정용재(35세, 채운리 대영수퍼)씨의 아버지는 일이 없는 겨울이면 집에서 종종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미술이라는 뜨거운 소용돌이의 밑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정씨는 혼자 있는 시간에 집에서 조금씩 연필이나 크레파스 등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다가 거리로 나가 풍경화, 인물화 등을 그렸다. 제대 후에도 돌을 다루는 공장에 다니면서 미술잡지를 틈틈이 살펴보던 그는 독일의 개념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년 전 독일로 가는 첫 비행기에 오른 그는 독일에 닿자마자 어학학원을 다녔다. 어학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독일의 베를린, 뒤셸도르프, 함부르크, 카쎌, 자부뤽켄 대학에 입학 원서를 냈지만 모두 낙방했다.
그는 자부뤽켄 대학의 1차 마패심사(본인이 그린 작품 20~30점 정도의 포트폴리오 평가)를 통과했지만, 2차 인터뷰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언어소통도 문제였지만 나이가 많다는 점이 불리했다.
그런데 긴장으로 가득한 심사 과정 중에 그는 한 교수(볼프강 네슬러)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교수는 뜻밖에도 동양적인 정서를 갖고 있었다.
“독일에는 다행스럽게도 청강생 제도가 있었어요. 그 때 만난 볼프강 교수를 찾아가 청강승낙을 받아냈죠.”
지난 6월 어학연수생 비자가 만료돼 귀국한 그는 다시 여행비자로 독일로 떠나 7월에 자부뤽켄에 다시 도전, 입학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청강생으로서 독일에 머물던 때 그는 한국의 작품과 비교, 구성방식과 정서에서 큰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종이에 작업한 간단한 스케치도 작업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한국은 교내전시에 대부분 한정돼 있는 반면 독일 학생들은 어떠한 프로젝트가 제시되면 교수와 학생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장소 섭외 등 모든 과정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작가수준이라고 말한다.
자부뤽켄 미대는 여러 수업형태 중에서 학생이 선택하여 수강할 수가 있다고 한다. 교수는 2주에 한 번 정도 나와서 2~3일 정도 학교에 머물며 학생과 직접 일 대 일로 아이디어와 스케치 등 그림에 관한 전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교수가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등에 대해 알기를 원해요. 그러면서 작품에 대해 더욱 발전적인 방향을 함께 이끌어 내도록 하죠.”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앞두고 있는 그는 동·서양 문화의 차이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7년 정도 공부할 생각이에요. 그동안 저의 작품세계를 단단하게 굳히고 펼칠 수 있는 여러 활동들을 하고 싶어요.”
출국을 한 달 앞두고 그는 현재 이번 상록문화제 행사 중 군민회관에 있을 전시행사의 무대 설치작업을 돕고 있다. 어려운 입학절차를 통과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정용재씨. 오랫동안 준비해온 밑그림에 이제 그만의 독창적인 호흡을 차근차근 불어넣을 차례다.

홍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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