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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의 시름 잘라 버려요” - 석문면 초락도의 코스모스이용원 이만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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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틈새를 메우며 차츰 쌓여 가는 고단함과 우울로 지친 요즘 늦가을의 공기로 맑은 거품을 내, 머리를 감고 싶다.
삶 속에서 잔뜩 헝클어진 마음까지도 깨끔하게 손질해주는 이용사 이만종씨(64세). 석문면 초락도리에서 코스모스 이용원을 운영하는 이씨는 30여년 전 현재의 이용원을 인수해 옛 모습 그대로 오랜 세월동안 초락도의 따뜻한 사랑방지기로 이웃들을 맞아왔다.
초등학교 졸업 후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이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40년전 이용사 면허를 취득한 이씨는 대호지면에서 7년간 협동이용원을 운영해오다, 부인 신맹순(59)씨와 결혼해 1년 후 매형의 소개로 초락도리로 이주했다고 한다.
울퉁불퉁한 작은 길을 따라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당시 초락도에도 새마을바람이 불어왔다. 주민들은 힘을 모아 지붕을 개량하고 구들을 들어냈다. 이씨는 그때 개량한 이발소를 지금껏 쓰고 있는 것이다. 나지막하게 빛이 들이치는 창문과 낡은 미닫이문이 어린시절로 통하는 기억의 문을 똑똑 두드리기에 충분하다.
섬의 흔적을 갖고 있는 초락도에는 도비도와 당진포리 등 인근 갯벌에서 해물을 채취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는 주민들이 많았다. 이씨의 아내도 바다에 나가 갯지렁이나 조개를 잡아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오래 전의 기억을 추려 올리는 이씨는 그러나 개업 당시 하루에 10여명씩 찾아올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명절 때는 혼자 일하기가 힘들어 사람을 둘 만큼 바빴었지요. 지금은 교통도 좋아지고 집집마다 차가 있어서 굳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심심하니까 그냥 붙잡고 있지요.”
지금은 하루에 서너명도 찾아오고 이마저도 없을 때도 있지만 이씨는 초락도에서 유일하게 남아 상영(?)되는 흑백영화를 멈추고 싶지 않다고 웃는다.
“겨울에는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난로가에 둘러앉아 몸을 녹이면서 장기도 두고 이런저런 농사 얘기며 사는 이야기도 곧잘 나눴지요. 그러다 보니 마을 소식이 제일 빨랐어요.”
이씨는 면도솔이며 이발기, 의자, 그리고 손님들 머리 감길 때 쓰는 작은 조루 등 30년전부터 써온 것들을 아직도 사용한다. 손님이 없을 때는 이발소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데 TV 역시 작고 낡은 예전 것이다.
코스모스라는 상호처럼 수수하게 살아온 이씨는 슬하에 두 딸 은주(31세)씨와 금주(30세)씨, 그리고 아들 원주(26세)씨 3남매를 두었다. 모두 결혼해 비록 떨어져 지내지만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작은 딸 금주씨는 아버지를 닮아 미용에 관심을 갖고 서울 시흥에서 미용실에 다니다가 현재 아기를 키우기 위해 잠시 쉬고 있다고. 금주씨는 집에 내려오면 부부의 머리를 깎아주고 파마도 해준다고 한다.
이씨는 두어달 간격으로 고대면 당진포리 박회군씨의 집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몸이 불편해 잘 걷지 못하는 박 노인을 찾아가 머리를 손질해주고 온다.
“벌써 3년 째 그 분을 찾아가는데 머리가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하세요. 머리를 다듬으면 전보다 한결 돋보인다는 걸 그 분도 아시죠. 그렇게 매초롬히 해드리고 나면 저까지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손님들이 요청하면 이른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도 언제든 문을 열어둔다는 이씨는 꾸준히 이발소를 찾는 동네 단골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오늘쯤 일상이 주는 시름을 잘라버리듯 그동안 미뤄왔던 머리카락을 가볍고 새롭게 변화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홍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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