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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80년대 중반 서산 앞바다에 유조선 물막이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전 매스컴이 앞다투어 보도하던 적이 있었다. 바로 정주영 신화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신화뿐만 아니라 땅덩어리가 좁은 나라에서 살고있는 국민들에겐 장미빛 희망이기도 했다.
 그 뒤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것은 아직도 신화이고 장미빛 희망으로 남아 있는가.
 바지락, 굴, 낙지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부석면 간월도 주민 50여 세대에게 낙지는 씨가 말랐고, 개펄엔 폐사한 조개껍질만 뒹굴고 있으며, 바닷가에 쳐 둔 통발에는 지푸라기만이 엉켜있을 뿐이다.
 방조제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1986년 천수만 지역의 어류 생산량은 1만2천1백50톤이었으나 방조제가 완공된 91년에는 4천5백70톤으로 줄어들었다. 62%나 감소된 것이다. 갑각류의 경우 77년에는 6천톤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씨가 말라 잡히지 않고 있으며 낙지 등 연체종물도 20만톤에서 5천톤 수준으로 감소해 버렸다고 한다.
 또한 마을 앞바다가 육지로 메워져버린 부석면 칠전리, 지산리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날품팔이 신세로 변했다.
 개발은 이렇듯 생태계를 파괴해 갔고 생태계의 파괴는 주민의 생존권을 앗아가 버렸다.
 이쯤해서 잠시 우리 지역을 보자. 한진, 교로리, 난지도 주민들의 잇단 집단민원과 분쟁소송 등 일련의 사태들을 접하면서 주민들이 보상병에 빠져 걱정이라는 소리가 행정기관이나 주민 일각으로부터 전해져 온다. 또한 정부당국이나 기업들은 몇 푼의 보상금을 지급함으로써 마치 주민에게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진실한가. 개발의 뒷그늘에서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생각해 봤는가.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빼앗기면서 몇 푼의 보상금을 받는다고 누가 보상병에 걸렸다고 말할 것인가.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개발이 아닌 이익을 보장해 주는 개발은 요원한 것인가.
 원하지도 않으면서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몇 푼의 생활정착금을 요구한다고 해서 누가 그들을 손가락질 할 것인가.
 내 집 앞에 남의 차를 주차해 놨다고 주차금지라고 써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돌까지 갖다놓는 우리가 아니던가.

<당진시대 1994년 9월 5일/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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