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공해공단과 한보화력발전소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5월 31일과 6월 3일 이틀 동안만도 반대서명에 참여한 주민이 1천5백명을 넘어섰다. 청년학생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층의 주민이 우리 고장의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환경위기로부터 당진을 지키려는 투쟁위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읍내거리를 오가는 여성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서명에 높은 관심을 보였고, 서명 당일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지킨 여성대표의 모습이 훌륭해 보였다.
그런데 오히려 여성들의 약함과 그네들의 탈정치성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남성 지도자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음은 역설적인 현실이다. 서명운동 당일에 지역의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투쟁위가 결성되고 한달 가까이 활동을 해오는 동안 우리 지역의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동안 대우받는 많은 일에서 지역의 대표요, 지역의 유지요, 지역의 어른이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지역에는 갑자기 사람이 없어 보인다. 주민들의 쾌적한 환경을 지키기 위한 의지에 반해 정작 지역의 중대한 문제에 앞장서야 할 지도자들은 갑자기 평범해지고 싶어진 것인가.
그동안 당진을 선도한다고 했던 사람들, 당진을 아낀다고 했던 많은 사람들, 또 각종 선거 때만 되면 당진과 당진군민과 당진의 미래를 위해 몸바치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다 지금 어디로 가고 없다. 그들이 남긴 말들만 무성하다.
물론 아직도 적지 않은 주민들이 현실적으로 닥치지 않은 문제라고 해서 오늘의 환경 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문제를 직접 느끼게 될 때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 바로 「환경」이라는 사실을 이쯤해서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어쩌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지경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은 이 시대 이 지역에 산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죄악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이끌어 간다는 명예 속에 특혜를 누리고서도 위기에 처한 지역의 상황 앞에서 갑자기 지도자의 자리를 떠나고 싶어했던 수많은 지도자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당진시대 1996년 6월 10일/1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