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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9 21: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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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딛고 장애인과 일하는 사람

장애를 딛고 장애인과 일하는 사람
다만 지금은 장애인 사랑방 간사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때문이다


 장애인협회 윤상실(39세)간사의 손길은 요 며칠사이 부쩍 쉴새가 없다. 그동안은 28일 장애인협회가 주관하는 자선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이제는 그 갈무리를 하느라 또 정신없이 바쁘다.
 며칠전에는 당진장애인협회가 발간하는 신문 「조약돌」 4호가 발간돼 1천부를 전부 띠지를 붙여 발송작업하느라 하룻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다행히 맘 좋은 청년 두명이 도와주어 그나마도 하룻밤만 새고 만 것이었다. 혼자서 했더라면 이삼일은 족히 걸렸을 것인데 그들이 고맙기 그지 없다.
 젊은 윤간사가 혼자서 잽싸게 일을 할 수 없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른손이 의수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크게 표나지 않지만 힘든 일을 해야 될때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3년전, 서울에서 한일합섬에 근무하던 중에 윤간사는 사고를 당했다. 기계 스위치를 내려놓고 수리하고 있었는데 같이 근무하는 아저씨 한분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다가 그만 수위치를 건드려 갑자스레 기계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그바람에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오른손 손목이 절단되어 있더란다.
 병원에 입원해서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회사측으로부터 산재보험 혜택도 못받고 실의에 빠진 채 그는 낙향해야만 했다.
 스물다섯에 상경했으니 십여년만에 고향에 내려오는 그로서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그나마 쥘 손마저 잃어버렸으니 참담한 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여전히 살림은 어렵고, 어릴 적 고생했던 기억만 가득한 고향이 밉기까지 했다.
 열세살이었던가.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윤간사는 남의 집 더부살이 생활을 시작했다. 교복입고 중학생이 된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쓰라렸지만 고사리 같은 손을 쉬지 않고, 어려운 짐 지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도 국민학교적 친구들을 가끔씩 만나지만 그땐 그네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지금도 제일 가슴에 못이 되는 것이 배우지 못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때 너무 무거운 짐을 많이 져서 남들만큼 크지도 못했어요.”
 그리 작은 키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윤간사는 벌써 눈시울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그때 고생했던 일들이 어지간히 가슴에 쌓여있는 모양이었다.
 고향에 내려와 고생하는 어머니와 다섯 동생을 보며 시름만 더해가던 차에 91년 어느날 장애인협회 당진읍 분회장인 이대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몇번 전화만 받고 말던 그는 별반 기대도 없이 협회 사무실에 나가 보았다. 뜻밖에 그는 거기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멀쩡하던 자신이 한번 사고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백안시 당하는 걸 못견디던 그는 비로소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을 믿어주는 새 친구들을 만난 것이었다.
 그때부터 윤간사는 부지런히 왼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글씨도 쓰고, 타자도 치고 잃어버린 오른손을 되찾기에 열심이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다.
 4개월 전에 전간사가 생활고로 그만두면서 윤상실씨가 새 간사역할을 맡게 되었다. 물론 어려운 협회 살림에 월급이 따로 나올 리는 없었다. 다방이나 슈퍼에 담배를 도매로 떼다 주고 얼마 안 남는 수익금이 곧 간사의 월급인 셈이다. 다행히 상고에 다니는 막내만 빼고 동생들이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어머니도 고생 그만 하셔야 되는데...”
 때마침 오늘이 3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제삿날이라 집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윤간사가 일어선다.
 고대면 슬항리에 집이 있지만 윤간사는 협회 사무실에 붙어있는 방에서 혼자 기거하고 있다. 딱 부러지게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그는 아마도 아파계신 어머니께 맏아들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미안하고 속상해서 그러는 것이리라.
 생명같은 오른손을 쓸 수 없으니 마땅한 데 취직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하자면 못 할 것도 없다. 다만 지금은 모든 장애인의 유일한 사랑방인 ‘장애인협회 사무실’ 간사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처럼 ‘착하고 부지런한 노총각’인 윤간사는 아무쪼록 많은 장애인들이 희망을 갖고 살기를,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잠깐 사이에 장애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똑같은 잠재력과 인격을 인정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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