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게메고 경운기 끌고
온동네 누비며 폐품모아 재활용, 어느덧 20년

 날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그에 대한 자각이 비로소 일기 시작한 요즈음 절약과 근검의 평범한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우리모두의 본보기가 되고있는 사람이 있다.
 고대면 장항리 이만재(49세)씨.
 지난 20년동안 이씨는 동네곳곳의 쓰레기, 논,밭두렁의 폐비닐, 농약병 치우는 일을 한 번도 거른 일이 없었다.
 그것도 그냥 치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비니루, 상자, 큰병, 작은병, 농약병등을 세밀히 분리해서 다시 쓸만한 물건들이 있으면 동네 곳곳에 나누어 주었다.
 기름집에서 쓸만한 큰 병은 기름집에 갖다주고, 작은병이 필요한 집에는 작은병을 갖다주고... 남은 것들은 가득가득 모았다가 면사무소에 전화해 실어가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헌 자기, 밥상따위의 민속적인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깨끗이 닦아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갖다주기도 했다.
 취재팀이 이만재씨를 만나러 갔을때 그는 동네에서 주운 멧돌을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갖다주러 나가고 집에 없었다.
 부인 윤주득(43세)씨가 혼자 작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 양반은 노상 바빠요. 남들한테 늘 갖다주느라고 그러죠 뭐. 오전에도 쌀 몇가마 가지고 나가더니 동생네 몇집 쭈욱 돌리고 왔나봐요. 손바닥만한 논에서 나오는게 얼마나 된다구.”
 그렇게 부지런하고 마음 넓은 남편이 좋기도 하지만 느는 살림이 없으니 아주머니로서는 눈꼽만치 서운한 구석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 여윈 8남매 중 맏아들한테 시집와서 여지껏 그 치닥거리에 재미 붙여 살다보니 어느덧 마흔을 넘겼으니 말이다.
 그러니깐 20년전, 윤아주머니가 시집왔을 때는 논에서 나오는 쌀 다 쳐봐야 식구들 식량삼기도 부족했었다고 한다. 이만재씨가 논두렁 찾아다니며 폐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동생들 학비 보태려는 방편에서였다.
 그렇게 폐품수집한 것이 어느덧 20년. 워낙 부지런한 데다가 아껴쓰는 버릇이 몸에 배어버린 그는 생계의 필요가 줄어든 다음에도 언제나 날만 좋으면 지게 메고, 경운기 끌고 이 논두렁 저 밭두렁으로 다니며 샅샅이 쓰레기를 줏어 모으는 것이다. 어느 날은 쓰레기를 분류하다가 꼬박 밤을 새운적도 있단다.
 “남들처럼 돈버는 일에 그 정성 다 쏟았으면 우리도 집 한채는 벌써 장만했을 거예요.”
 남편한테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서운한 소리를 아주머니는 취재팀한테 대신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아주머니는 또 어느새 대견한 남편 얘기를 한다.
 “이렇게 가진 것 없이 살아도 형제끼리 ‘의’는 말할 수 없이 좋아요. 형이 매사를 양보하니까 동생들도 다 그런거죠. 다 헐어빠진 집이긴 하지만, 그것도 서로가 가지라고 여태 미루고 있어요.”
 참 희한한 얘기다. 밥풀 하나라도 서로 저 먼저 먹겠다고 야단인 요즘 세상에, 심지어 재산 상속때문에 등돌리고 사는 형제들이 태반이고 싸움박질이 끝없는 요즘 세상에.
 그뿐인가.
 “봄철에 일나갔다 돌아올 때면 이만한 쑥을 한 보따리 캐가지고 와서는 동네 할머니들, 아주마들 나눠주고, 손톱만치라도 누가 고맙다고 뭘 갖고오면 받는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일손 없는 집에 가서 장정 몇 사람이 할 일을 혼자 하고 오는가 하면, 서로 모르고 이웃과 동시에 사료점을 냈다가 그것마저 양보해 돈덩이 포기한다고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동네에서는 이만제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어린 꼬마아이들까지 그가 나타나기만 한면 쪼르르 모여든다. 달리 뭐가 있었서 그런게 아니라 그만큼 반가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고마운 이웃사춘이기 때문이다.
 하도 대견하고 이뻐서 동네 노인네들은 누룽지 한쪽이라도 나눠주고 싶어 그 야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전서 전문대 다니는 작은 딸은 그런 아버지한테 한가지 불만이 있다고 한다. 농사일이 아무리 한가한 때라도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아침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학이라고 모처럼 집에 쉬러온 마당에 해도 뜨지않은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밥먹기가 수월할리가 없다. 그래서 딸은 가끔씩 아주머니한테 투정을 부리곤 한단다.
 이제는 남들처럼 깨끗한 집에 가구도 사다놓고 정리해서 살자고. 아버지도 살림에 신경 좀 썼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아주머니는 딸의 심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이렇게 타이른다고 한다.
 “너의 아빠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니. 사람들이 다 저 좋은 일만 하려고 하니 네 아빠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게야.”라고.
 웃는 아주머니 말속에 왠지 모를 한숨이 서려있다.
 이렇게 돈 몇푼 되지도 않는 걸, 궂은 일마다 골라 하는 남편이 살림꾸리는 아녀자 입장에서 어찌 속상한 구석이 없으랴 싶다.
 “그래도 동네사람들이 워낙 위해주고 칭찬이 자자해서 뿌듯할 때가 많아요. 천성이 부지런한데다가 성실해서 뭐하나 버릴 줄도 모르고, 참 정직한 양반이죠.”
 한참을 기다려도 이만제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아주머니는 모과차도 끓여주고 동네 잔치집에서 가지고 온 인절미도 구워주었다.
 “오다가 어디서 또 쓸만한 거 챙기고 있나......”
 아주머니는 취재팀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지 고개를 빼고 남편을 기다린다.
 우리는 며칠 뒤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그만 일어섰다.
 돌아오면서 우리는 ‘환경운동’이라고 쉽게 내뱉어온 추상적인 단어가 왠지 쑥쓰러웠다.
 환경운동은 거창한 구호도 아니고, 양심을 걸어야 하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끼고 절약하는 상식적이고 건전한 생활일 뿐이었다.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너무나도 허황한 소비문화에 빠져 상식적인 생활범주에서 멀어도 아주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마구 쓰고, 마구 버리고, 그리고 이제 와서 그 엄청난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만제제의 위대한 점은 ‘한결같이 아끼는 마음’을 20년동안이나 지켜오면서 이 소박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몸으로 깨우쳐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