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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뒤흔드는 뻥튀기 소리 - 쉰셋의 사연에 주름 가득한 이지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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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
 장날 온 시장바닥에 울리는 뻥튀기 소리에 사방 1km 이내의 사람들은 귓전이 들썩거린다.
 지난 10일 장날은 그 소리가 유난히 더 잦았다.
 그런데 요즘처럼 소음공해에 이상하게도 민감하고 내 영역을 칼날같이 지키려는 사람들조차 이 대단한 소리에는 마음이 너그럽기만 하다.
 “장사 잘 되슈?”  “이야, 곱게도 튀겨졌네” 다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저마다 한마디씩은 건네고 간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단 한번 눈길이라도 던지고 간다. 그중 할머니들의 눈길은 더욱 예사롭지가 않다.
 “고만치가 얼마유?”
 마침 다른 볼 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바슬바슬 곱게 나온 튀밥을 보고 구미가 당긴 할머니는 갑자기 쌀 한줌 안 쥔 빈 손이 아쉽다.
 “좀 잡숴보슈.”
 이씨 아저씨는 특별히 선심쓰는 기색도 없이 막 쏟아부은 튀밥을 통째로 내민다. 모르긴 몰라도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과거가 그리워질 것이다. 이지식 아저씨는 그러니까 우리에게 뻥튀기 뿐만 아니라 진한 향수까지 보태주는 사람인 셈이다.
 석문인 고향인 이 아저씨는 벌써 18년째 뻥튀기 기계를 돌리고 있다.
 “농산일 바쁠땐 농사짓고, 겨울에 구정 대목 때까진 이걸 허쥬. 그전에는 이삿짐도 나르고 이일 저일 안해본 게 없슈.”
 말이 필요없이 아저씨 얼굴에는 쉰셋동안 얽혀온 사연들로 주름이 벌써 가득하다. 탑동으로 이사와서 작년부터 이곳 시장 5거리 근처로 일터를 옮겨왔다.
 평일에는 장사가 별거 아니고 장날 손님이 더러 모인다. 쌀이나 옥수수를 기계통 속에 집어 넣고 7분쯤 지나서 “펑”하고 쌀을 튀겨낸다.
 그 7분동안 마냥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계를 아무 말없이 바라보는 아저씨 눈에는 별이별 상념이 다 떠오른다. 내 대신 농사 뒷일 하느라 고생하는 마누라. 이제 벌써 여읠 나이가 다 된 큰 딸. 거기다 줄줄이 따른 4남매가 눈에 어른어른 거린다. 또 한가지 있다.
 “걱정이유. 외제가 너머 많이 들어와서, 왼갖 과자도 문제지만 쌀꺼정 들어오면 나 겉은 사람 이젠 농사 못짓쥬. 「신토불이」라고 노래도 있던디 틀린 말 하나 없데유.”
 농사는 고사하고 이제 튀밥같은 거 해먹을 사람이나 있을까 이래 저래 심사가 심난하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올해는 서울까지 가서 새 기계를 장만하느라 백만원쯤 지출이 컸다.
 한 번 튀기는데 천오백원. 아쉬운 대로 드문드문 묵은 쌀, 묵은 곡식 들고 찾아오는 아지매들이 더러는 고맙고, 더러는 대견하다.
 “암요. 우리헌테는 우리 게 젤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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