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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단결과 화해가 핵심 - 이우영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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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농사에 기초한 우리나라 전통의 풍속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일제의 강점시대를 거치면서 절반은 잃어버렸고 무분별한 산업화쪾서구화과정에서, 그리고 지금 처한 국제화 바람속에서 여지없이 허물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한길로 통하고, 국가간 무한경쟁의 시대로 돌입한 마당에 옛 것을 지키자는 말의 의미가 한 갓 국수주의자의 주장이 되어 버렸다 해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가장 당진적인 것이 또한 가장 한국적이요, 세계적”인 것이며 앞으로 십년, 이십년 후 어느날 갑자기 당진다운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당진다운 것을 찾아 키워야할 필요가 요즈음 새삼 다시 제기되고 있다.
 부분적으로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을 찾아 키워낸 대표적인 사례로 ‘기지시 줄다리기”를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12일 있었던 기지시 줄다리기 행사를 이런 의미에서 다시 상기해보며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 이우영 회장을 만나본다.

 

■ 우선 기지시 줄다리기는 어디에 유래를 두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 원래 기지시는 틀모시라고 불러왔는데, 베틀;기에 못;지 자를 합쳐 기지시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풍수학적으로 기지시는 ‘옥녀가 베틀을 짜는 형국’이라고 하는데 이름에서나 실제 지형적으로나 다 맞아 떨어집니다. 흥겹게 자질을 한다는 뜻의 흥척골이나 북을 두드린다는 북당골, 그외 고을마다 지닌 이름이 베틀 짜는 일과 직접 관계가 있는 이름입니다. 줄다리기의 기원 역시 베틀을 다 짠 후에 마전하는 모습과 같은 것이죠. 아주 오랜 옛날에는 부녀자들이 하던 소규모 행사였다고 하는데 벌써 4백년 역사를 지니게 됐습니다.
■ 4백년 동안 전통이 단절된 적은 없었습니까?
 - 왜정때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끊기기도 했습니다. 흰 한복을 입은 조선군중들이 모여드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위협적인 일이었던 게죠. 백의 민족의 단결을 상징하는 흰 한복. 그것이 두려워서 그들은 흰 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검은 물을 뿌려대기도 했어요. 그런데 해마다 지내오던 당제를 걸렀더니 마을에 큰 화가 계속 생겨서 왜놈들 묵인 아래 또 계승되곤 했답니다.
■ 당진에는 무형문화재가 참 드문데 기지시 줄다리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또 그 직접적인 동기는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그러니까 73년도였죠. 줄다리기 대제행사를 끝내고 났는데 마을 사람들 중에서 그만 두자는 얘기들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는 행사에 드는 비용을 동네사람들 주머니에서 추렴을 했으니까 행사 한번 제대로 치르자면 시간에서나 돈에서나 모든 면에서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니었어요. 어쨌든 그때 ‘수백년 내려온 전통인데 끊을 수 없다’는 노년층 중심의 여론과 ‘소득도 없고 힘만 들 뿐 의의가 없다’는 젊은층 일부의 여론을 놓고 마을 사람들이 찬반 논의를 벌였죠. 결국 심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도’에 관련자료를 제출했더니 ‘절대 육성해야 한다’는 답변이 통보됐습니다.
 그뒤에 충남 무형문화재 35호로 공식 지정이 됐습니다.
■ 이 선생님도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걸로 알고있고, 또 행사도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줄로 아는데요.
 - 당시 저를 포함한 세사람이 자료를 냈는데 기능보유자는 50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더군요. 그래서 저만 해당이 된 것입니다.
 이 행사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81년에 있었던 ‘국풍 81’행사에 초청받아 출전하면서부터였습니다. 줄을 짜가지고 가느라고 주민들이 고생도 많이 했는데 거기서 진가를 인정받았던 겁니다.
■ 올해는 기지시 줄다리기 소제행사였는데 대제와 소제는 어떻게 구별합니까?
 - 소제는 1년에 한번씩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를 지내고, 대제는 윤년마다 당제와 줄다리기 행사를 함께 지냅니다. 그 뜻은 3년간 베를 짜고 그 뒷마무리를 한다는 것이죠. 소제는 전야제를 포함해 이틀, 대제는 4일간 지냅니다.
■ 부작용도 더러는 있다고 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가장 큰가요?
 - 4일간 보통 12만 인파가 모여드는데 문제가 전혀 따르지 않을 순 없겠지요.
 작년에도 문제가 좀 있었지만 다행히 마을주민이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행사로 어떤 문제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죠.
■ 젊은 분들 중에 착실히 이어나갈 사람들은 있습니까?
 - 현재 이수자, 전수생 모두 22명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존회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요. 젊은 사람들이 아주 열심입니다.
■ 기지시 줄다리기 행사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 우선 유교, 불교, 민속신앙의 합동제례라는 점에 3.1정신과 같은 화해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줄이 직경 1m80인데 줄만이 아니라 행사자체가 아주 규모가 큽니다. 더구나 한편에 5천명씩 한꺼번에 ‘의여차’하고 함성을 지르면 그 소리가 또 장관이죠. ‘의여차’라는 소리도 의로움;의, 갈;여, 또;차로 ‘의롭게 가고 또 간다’는 민족적인 단결과 정진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단결이 이 행사내용의 핵심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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