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부끄럼없는 양심의 길 70년 - 석문면 교로3리 신현택(72세)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능한 젊은 인재양성이 꿈
당진의 4.19 주역중 한사람


 나이 일흔 둘에 여전히 꿈과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 얘기할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예사롭지 않으며 강한 웅변조의 말투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진다.
 신현택(72세) 옹은 앉자마자 자신의 꿈부터 이야기한다.
 “내 꿈은 유능한 젊은 인재를 발굴해서 이 지역과 나라를 위해 쓸만한 재목으로 키우는 일이지.”
 묻지도 않은 말에 선뜻, 자신의 꿈부터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 그것이 그의 꿈중에서도 얼마나 절절한 꿈인지 짐직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늘 이 사회의 일보전진을 생각하며 살아온 습성같은 그의 생활태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거기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아직 우리사회에 쓸만한 재목이 나서서 해야할 일이 많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 책임감 그런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은 ‘서해안 시대’관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서해안 시대라고 여기저기서 떠들기도 많이 했지만 말이 큰 데 비해서 결과가 너무 형편없어. 주민들이 어장을 잃었으면 그만한 생존의 기반을 마련해 줘야지. 농지로 조성한 땅에다 오히려 공단을 만들지 않나, 그것도 죄다 공해업소들만 입주시키고, 다른지역 특정폐기물까지 다 쏟아버리겠다면 그게 어떻게 개발이 될 수가 있겠어”
 간척지도 옆으로 끼고 있고, 화력발전소도 곧 들어설 석문면 교로3리가 집이다 보니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행해지는 갖가지 일들이 그에게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한 문제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3.15 부정선거와 4.19로 고삐를 틀었다. 지난달 4.19를 기념한 인터뷰를 청했다가 서로 약속이 어긋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군사정부 아래서도 그런일이 공공연했지만 1950년대에는 아주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 그때는 마을마다 ‘투표함 바꿔치기’가 되지 않은 곳이 없었지. 석문도 ‘막고개’에서 투표함을 바꿔치기 당했지?”
 전국적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항의시위가 잇따르면서 당진에서도 당시 야당생활을 하던 김시환, 이규영, 구자성, 정재전, 조득행, 신현택, 박태선, 손인교, 선기동, 허식, 남창희, 배선익, 이장열씨 등을 필두로 부정선거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사형을 비롯한 이승만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그야말로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반대세력을 무조건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씌워 제거하던 때였다. 진보당 조봉암 당수가 그러했듯이. 말이 야당생활이지 정부를 비판하는 일 자체가 목숨을 건 위태로운 일이었다.
 “관에서도 못하게 막고, 어떻게 된 법인지 선 채로 1분이상 말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지. 그래서 이동마이크를 들고 시종일관 걸으면서 연설할 수 밖에 없었지.”
 그러면서 신현택씨는 한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송산마을에 방송홍보를 나갔는데 저녁에 돌아오려고 보니 사찰계 형사들이 나루터에서 노를 없애버렸더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오섬에서 도로 나와서 도보로 고대면, 석문면까지 20리 길을 밤을 새워 걸었었노라고. 어떤 동지는 울었고, 다들 발이 부르터서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씩 마을 할머니나 주민들이 누룽지와 떡, 물을 들고 나와 격려해 줄 때는 눈물과 함께 고단한 가시밭길이 기쁘게 여겨졌다고 한다. 물론 주민들은 감시를 피해 몰래몰래 누룽지를 전해주곤 했다.
 “그때는 부모, 처자식을 버릴 각오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었지. 가족들 만류도 있었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 싶더군.”
 신현택씨는 원래 교편을 잡고 있었다. 석문국민학교와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삼봉국민학교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던 중 가정형편으로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농촌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직시하기 시작했고, 국가로부터 형편없이 버려진 농촌의 구조적인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는 미국의 원조와 차관속에서 우리나라의 주된 작물이던 밀과 면화등이 완전히 쓰러지던 때였다.
 그같은 문제의식에다가 천성적인 의협심이 있어서 그는 부와 안락의 반대편에서 고난으로 점철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그는 지나다가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것을 보면 어차피 뱀의 독에 쏘여 개구리가 죽어있을지라도 기어코 뱀을 죽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바른 말 잘하고 아부할 줄 모르는 성격이었다.
 이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남들처럼 출세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식을 가진 지성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으로 그는 한가닥 양심의 가책도 없이 편한 마음으로 살고있다.
 현재 민주당 고문으로 있는 그는 틈만 나면 옛동지들과 만나 지역의 구석구석부터 국가정세, 세계정세를 논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과거 독재의 서슬퍼런 칼날아래서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순간순간 몸을 내던져온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보신주의,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프게 느껴진단다. 아무리 사회가 복잡해져도 ‘애국’의 정신은 나보다 남을, 나보다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숭고한 정신임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