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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문화예술에 씨앗 뿌리는 선구자 - 대전 심포니 오케스트라 양기철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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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지않은 나이. 그렇다고 결코 적지도 않은 나이. 대전 심포니 오케스트라 양기철 단장의 나이는 올해 마흔여덟.
 당진읍 구룡리에서 태어나 성당국민학교, 당진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사대부고를 다니면서부터 성악을 시작했으니 음악에 심취해 살아온 세월도 어느덧 30여년이 된다.
 지난 30년간의 삶에서 음악은 그에게서 단 하루도 떨어질 수 없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음악이든, 문학이든, 그림이든, 혹은 돈이든, 그외 어떤 것이든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는 자기삶에 충실한, 성실한 사람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의 저력은 또다른 곳에 있다. 그 자신이 성악을 전공했듯이 전체 클래식음악의 한부분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그는 늘 전체를 향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 어지간한 사업체를 거느린 기업가 못지않은 ‘문화사업가’이다.
 그는 「충청오페라단」과  「대전 심포니 오케스트라」,  「한밭여성합창단」을 창단했으며, 그들 세 단체에  「대전음악제」와  「대전무용단」을 합쳐 ’93 대전엑스포에 지역문화의 총화를 선보였던  「대전예술단」의 단장을 맡고있다.
 1989년 맨처음 그가 창단한  「충청오페라단」 은 지난 5년간 5편의 오페라를 20회 공연하여 2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였고, 예술의 불모지 충청지역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격찬을 받았다.
 충청오페라단은 최근 5월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MBC의 후원으로 바르샤바국립극장 주연가수를 초청, 오페라  「루치아」를 공연함으로써 지역민간 오페라단으로서는 처음으로 커다란 성과를 올렸으며, 대단한 각광을 받았다.
 또한 91년 발족한 대전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순수민간 오케스트라이며 음대를 졸업한 성악전공여성 50명으로 구성된 한밭여성합창단도 92년 창단이래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8년간의 교직생활을 2년전에 완전히 마감한 그는 요즘 목원대와 충남대에 강사로 출강하는 시간을 빼면 자신의 전부를 예술단 운영에 바치고 있다.
 그러니까 오페라단을 창단하던 5년전에 그는 학교음악선생님과 대학강사와 오페라단 단장을 모두 맡고있었던 셈이다.
 ‘문화예술을 위해서, 지역문화예술의 진보를 위해서’ 그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후 그가 한 일은 바로 ‘개인재산을 털어내는’일이었다. 그것은 신념과 의지를 갖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목적이던 시절에야 다른 가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알게되었습니다. 인생은 짧고(Life is short), 예술은 길다(Art is long)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물질적인 환락이 일시적이고 허무한 것이라면 문화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그는 충청도 사람이고, 그리고 당진사람이다. 그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충청도가, 그리고 당진이 문화예술에 얼마나 목마른 곳인지를 알고있다. 심지어 그 갈증조차 깨닫지 못할만큼.
 그리고 아직 「클래식」이라는 예술파트가 얼마나 일반대중으로부터 멀고 재미없게 느껴지고 있는지도 알고있다.
 그래서 그는 이 일을 시작했다. 갈증을 풀고 행복을 가져다줄 우물이 저기 있는데도 아직 가려하지 않고, 갈 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직접 노래도 하고,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보고 들을 사람, 그것을 물질적으로 도와줄 사람을 연결짓는 사업가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오페라단의 홍보
과장을 맡고있는 부인 송정빈(43세)씨의 말처럼 돈을 벌려고 했으면 한참 벌 수도 있었을 결혼생활 22년을 그들은 그 일에 쏟아부었다.
 “제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충청도 문화예술, 구체적으로는 당진의 문화예술에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머지않아 당진에 문화예술의 꽃이 필때까지 부단히 씨앗을 뿌리고 물주는 일 말입니다”
  「머지않아 당진이 마산, 창원같은 공업도시가 됐을때 문화예술말고 그 어떤 것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기름지게 할 수 있겠느냐」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는 결코 젠체하는 예술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인류의 행복이 문화예술의 향유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그냥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당당하고 겸손한 문화예술의 일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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