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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참으로 질긴 인연인데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할머니와 두남매

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이 한 집에
인연은 참으로 질긴 인연인데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할머니와 두남매

 순성면 갈산리 520번지.
 면사무소 호적계에 의하면 이 집에는 무의탁노인 1가구와 소녀가장 1가구가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무의탁노인 김순예(1933년 충남 온양생) 할머니와 소녀가장 고수연(여. 순성국 3년), 동생 고현훈(남. 순성국 1년)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기막힌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김할머니가 고씨집안으로 출가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초혼에 실패한 할머니는 21살의 꽃다운 나이에 고씨집안의 두번째 할머니가 되었다.
 1945년 민원처리가 정비되는 상황과 사회적인 분위기에 의해서 호적정리를 하지 못했고, 끝내는 무의탁 독립 세대주가 된것이다.
 할머니의 시집생활은 여느 집안의 사정과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해마다 겪는 춘궁기, 보리고개, 개떡... 더욱이 3공화국이후 농촌경제가 감내해야만 했던 경제개발정책은,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했지만 삶의 역정은 더욱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풍족하지 못한 집안살림이었으나 할머니의 붙임성있는 인간관계와 노력으로 장성한 자식들을 출가시켰으며, 수연과 현훈이는 막내아들 내외가 결혼한 후 서울에 살면서 얻은 남매이다.
 현훈이가 태아나고 백일이 지날즈음 현훈이 아버지는 갑자기 병을 얻게 되었고, 자리에 눕게된다. 가정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하자 아들내외는 시골에 와서 생활할것을 의논하였고, 이미 시골할아버지가 병석에 누워있는 상황인지라 쉽게 받아들이기가 난처했지만, 상황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2가구가 한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으며 할머니와 수연이 남매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할아버지와 막내아들이 경제력을 상실한 상황, 그리고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갑자기 4식구가 늘어났기에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서울에서 내려온지 얼마 안되어 현훈이마저 심한 감기와 결핵으로 집안 방구석은 병원 입원실이 되었으며 식구중 절반은 거의 송장이었다 한다.
 이러한 사정은 수연이 엄마의 가출로 더욱 더 악화되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할머니는 되뇌이신다.
 “왜 살아왔는지 무르것슈.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자식들인데 왜 내가 그 모두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되었는지. 며느리가 나갔을 때에도 한편으로는 원망했지만 뒤돌아서서는 이해가 될 정도로 사정은 좋지 않았지요.”
 그러나 체념하고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한다. 할머니는 생활의 시름을 뒤로하고 현훈이를 먼저 살려내야겠다고 맘먹었다. 당진, 천안, 그리고 서울의 병원을 찾아다니며 현훈이를 살려낼 방도를 찾았다. 다행히 주위의 도움과 의사들의 배려로 현훈이는 점점 회복되었으며 막내아들도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겨 치료를 받게 되었다.
 집안 분위기도 정리되고 한숨돌릴 시간이 있는가 했지만 차례로 할아버지와 막내아들 장사를 치루고 나니 이제 노약해진 할머니와 수연이 남매만 남게되었다.
 이후 어린 두남매가 학교에 가기전까지 할머니는 마지막 힘을 다해 품을 팔아서 생활을 이어왔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든지 다했다.
 6년전, 조그맣게 시작한 구멍가게가 지금은 유일한 생활 수입원이다. 1평 남짓한 크기에서 얼마안되는 돈이지만 아이들의 생활비와 교육비를 준비하신다. 수연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소녀가장으로 선별되어 그나마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제 할머니에게는 마지막 꿈이 하나있다. 수연이와 현훈이가 큰 어려움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상황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관절염으로 행동이 더욱 불편해진 몸이기에 더욱 더 안타까운 심경뿐이다. 수연이과 현훈이는 아주 건강하다. 그리고 성격도 원만하다. 흔히 결손가정에서 많이 발생하는 문제가 아직까지는 없다한다.
 “어린나이에 많은 상처를 입고 컸지요. 그러나 수연이와 현훈이는 잘 견뎌냈어요. 지놈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사리 손으로 하는 것을 보면 메말라진 눈물이지만 눈시울이 뜨거울 때가 있지유.”
 두남매도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이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은 “할머니”이시며 앞으로 커서 하고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어요.”라고 남매는 대답한다. 한많은 할머니의 삶과 기특한 두남매의 미래에 대한 꿈... 이제 할머니의 마지막 희망과 두남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우리 사회의 책임이여, 국가의 의무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결코, 혼자 힘으로는 살아올 수 없었다는 할머니, 수연이네 가정 얘기가 행사용으로 점철된 가정의 달과 UN이 정한 “세계가정의 해”에 진정으로 우리마음에참뜻을 구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병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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