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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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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읍내에서 족발집을 경영하는 전은숙(39세)씨는 혼자 힘으로 탄탄한 기반을 이뤄놓은 ꡐ의지의 한국인ꡑ이다. 20평짜리 상가에서 수중에 50만원을 갖고 시작한 족발집이 얼마전 40평짜리 넓은 식당으로 바뀌었고 곧 있으면 새 아파트로 입주하게 된다.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ꡐ재복이 있다ꡑ고 말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ꡐ재복ꡑ보다는 ꡐ억척스러움ꡑ이 먼저였다. 잘 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재복을 불러들인 것이다.

 전씨는 지금으로부터 꼭 10년전 스물여덟의 꽃같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했다.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고 학교 다닐 때 배구, 수영선수로 활약할 만큼 밝고 활동적이었던 그에게 남편의 사망은 곧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야 하는 형벌과도 같았다. 게다가 병원비로 있는 재산까지 다 날린 터여서 그에게 남겨진 건 두아이와 친정 어머니가 얻어준 월세방이 전부였다.

 남편이 병상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화장품 외판원 생활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4살, 6살이었던 두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쉬는 날도 없이 자전거를 끌고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녔고, 비오는 날이면 수금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러나 생활고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모두 다 아는 사람들 뿐인 고향에서 그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ꡐ먹고 사는 일이 왜 부끄러워야 하는가ꡑ 부끄러움 대신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는 오기와 검소한 생활철학이 자리 잡았다.

 누구에게나 한번씩 기회는 오기 마련인가보다. 전씨는 5년전 그동안 어렵게 모은 돈으로 20평짜리 상가를 얻어 당진에선 처음으로 족발집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직접 기술을 익혀와 요리를 하고 운전면허를 따 배달도 다녔다. 주인이 종업원 몫까지 하니 훨씬 더 정성이 깃들게 마련이었다.

 깔끔한 음식, 신속한 배달로 차츰 신용을 쌓아갔고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이후부터 작은 쓰레기 봉지까지 함께 넣어주는 일 등이 그 한 예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얼마전 간판을 바꿔달아 적쟎이 걱정했지만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찾아들고 있는 것도 이미 전씨의 정성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살아온 10년 세월이 전씨에겐 짧고도 긴 세월이었다. 그리고 그 세월은 물정 모르고 살던 때의 장미빛 꿈은 앗아갔지만 성실함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일깨워준 스승이기도 했다.

 이제 좀 숨돌릴 여유가 생긴 전씨는 남모르게 키워가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젊어서 고생했던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노인들을 위해 언젠가는 양로원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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