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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18 13:5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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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뱃길 건너 육지소식 전한 난지도 집배원-석문우체국 이종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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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하고 양심있는 사람들이 흔히 바라는 바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있어야 될 사람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난지도 사람들에게 그는 다정한 이웃이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이다.

 전화와 TV가 보편화되기 전 육지에서 날아오는 숱한 사연들은 반드시 그의 손을 거쳐 전해졌기 때문이다. 난지도에서 태어나 70년도부터 이곳의 체신업무를 담당해 온 석문우체국의 이종천(60세)씨. 이씨는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도 25년을 한결같이 도급 집배원 생활을 해온 우직한 사람이다.

 이씨는 요즈음에도 변함없이 석문과 난지도를 오고 간다. 아침 8시 배로 난지도에서 나와 삼길포에서 또 버스를 타고 석문우체국으로 출근, 근무를 한 후 우편물을 들고 오후 2시께 도비도에서 집배를 하고 5시 배로 난지도에 들어간다. 60여 세대의 난지도 주민들에게 그가 하루에 배달하는 우편물량은 신문까지 해서 50여통 정도이다.

 석문에 나왔다가 갑자기 태풍이 불면 꼼짝없이 발이 묶여 우체국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한다. 그래도 요즘은 교통이 좋아졌지만 70년대만 해도 배가 걸핏하면 뜨지 못해 집에 들어가는 날은 한달에 고작 일주일 정도일 때도 많았다.

 그러나 이씨가 몸고생하는 것보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제때에 우편물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외로운 섬 사람들에게 그는 군대간 아들소식, 돈 벌러, 공부하러 객지로 떠난 자식들의 안부를 전해주는 유일한 소식통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ꡐ이주사님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씨는 웬만큼 경력이 붙으면 올라가는 이런 직급을 실제로는 갖고 있지 않다. 도급직에는 승진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라고 보수가 넉넉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고 10년 동안은 받는 월급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많았다. 덕분에(?) 아내가 모진 고생을 해야했다. 해태를 따고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어 4남매를 키워온 것이다.

 ꡐ내일이면 나아지겠지ꡑ ꡐ내년에는 달라지겠지ꡑ 오로지 이런 생각으로 묵묵히 견뎌온지 꼬박 25년이 흘렀다. 그러나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남들은 이제 읍내에 나가서 편안히 살라고 하지만 전세집 하나 얻을 만한 재산도 없고 노후에 7대째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싶은 맘도 없다.

 대신 한길만을 걸어온 그에게 남겨진 건 늘 조급하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는 인내심과 고향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해왔다는 자부심이다.

 그리고 10년전부터 그의 생활에 버팀목이 되어준 신앙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신앙은 하나뿐인 아들이 군대에 가서 사망했을 때 내 자식으로 인해 더 많은 자식들을 사고위험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는 의연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이씨는 며칠전 석문로타리클럽에서 수여하는 모범직업인 표창을 받은 바 있다.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선다는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이 따로 없는 도급 집배원 일을 꾸준히 할 계획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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