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컴퓨터 세상서 활자를 고집하는 별난 젊은이-동방문화사 서평식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화 그 자체가 목적인듯 불과 수년사이에 우리주변은 급격히 변해갔다. 변화의 주역은 역시 컴퓨터였다. 컴퓨터를 모르면 이젠 젊은 세대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고 공들여 배운 기술이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허탈감에 씁쓸해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경찰서앞 골목에 들어서면 허름한 인쇄소가 하나 있다. 동방문화사란 간판을 달고 있는 이곳은 당진에서 유일하게 활자명함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인쇄소 한 벽면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수천개의 활자들과 매일같이 씨름하고 있는 이는 의외로 올해 서른두살의 젊은이이다.

 서평식씨.

 서씨가 활자 인쇄술을 배운것은 불과 10년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당진의 인쇄소는 전부 활자를 사용했지만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금새 활자는 자취를 감추었다. 화려하고 다양한 글씨체를 단숨에 만들어내는 컴퓨터를 반기지 않을 고객은 없었고 고객들의 취향을 모른체 할 인쇄소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씨는 이 활자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배운 기술이 억울해서도 아니고 사업성이 좋아서도 아니다. 활자명함에 대한 나름의 애착과 자부심이 있어서이다.

 중후한 멋이 있고 깔끔하고 쉽게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화려한 컬러명함에 비교될 수 없는 활자명함만의 독특한 개성이란다. 이것이 서씨 혼자서만 느끼는 매력이라면 역시 오래가지 못할 터이지만 꾸준히 활자명함을 찾는 고정고객이 있어 서씨는 쉽게 이 퇴물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활자와 명함 인쇄기 한대만 달랑 들고 시작한 인쇄소였지만 고성능 인쇄기를 들여놓아 이젠 제법 인쇄소 구실을 하고 있다. 광고물, 초대장, 판촉물까지 취급하게 돼 일거리가 많아졌지만 서씨는 아직도 혼자서 일하고 있다. 전망이 확실한 사업이라면 누구 라도 데려다 가르치고 싶지만 그렇지도 못하고 골머리 앓으며 까다로운 활자 인쇄술을 배우겠다는 젊은이도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잔일을 혼자 도맡아 하고 있어도 서씨는 실수를 대충 넘겨버리거나 스티커를 급조해 오자를 땜질하는 식의 편의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몇 백장을 찍어 냈어도 실수가 있으면 알아서 다시 찍어내 스스로에게나 고객에게나 만족할만한 완성품을 만들어 납품한다.

 신용 하나로 꾸려온 인쇄소였고 그 신용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무섭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