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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우여곡절, 애들보며 잊는다 - 대건어린이집 운전기사 안홍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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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반 여러분 아저씨하고 내일 또 만나자”
 매일 아침과 저녁 대건어린이집 원아들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있는 안홍식(56세)씨. 조금한 체구에 세상을 달관한듯한 그의 인상처럼 안홍식씨는 어릴적부터 인생의 달고 쓴맛을 모두 봐왔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황해도 태생인 안씨는 부모와 형제를 남겨둔 채 6.25 전쟁때 5촌 당숙을 따라 남한으로 넘어왔다. 1년뒤 남한으로 넘어온 아버지를 만나기는 했지만 북에 계신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소식을 모른다.
 열살 때부터 남한생활을 하게된 안씨는 아버지와 함께 전라도 무안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젊으신 아버지는 안씨가 13세 되던해 그와 7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젊은 여자와 재혼을 했다. 적은 나이차, 낯설음 이런 것들이 안씨와 새엄마와의 사이를 갈라 놓았다. 그런 이유로 안씨는 새엄마와 싸우고 야반도주를 했다.
 무안에서 목포로, 다시 광주로... 몇날 며칠을 굶으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곳에서 어슴살이를 하다가 전라도 중앙가마원이란 고아원에 들어갔다. 3년동안 중앙가마원에서 생활하다 새어머니의 ‘돌아오라’는 편지를 받고는 수원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여름엔 아이스크림 장사, 겨울엔 연탄집 조수, 수원 다리밑에서 넝마생활도 몇년간 했었다.
 24세 되던 해 부인 노선자(54세)씨와 결혼을 했다. 신혼이어야 할 시기였지만 두동생과 숙부가 남기고간 4명의 사촌동생등 6명의 동생들을 돌봐야했기에 신혼의 달콤함보다는 하루세끼 걱정이 앞섰다.
 수원에서 인천으로, 다시 여주로 여러지역을 옮겨다니며 직장생활을 하던 안홍식씨는 77년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현대건설 해외근무를 지원했다.  택시운전을 하던 실력으로 84년까지 사우디, 쿠웨이트, 아랍, 이라크등 외국을 돌면서 덤프트럭 운전을 했다.
 열살 때부터 어느 한곳에 정착을 못하고 계속 떠돌아다니던 안씨는 85년 이제는 좀 조용히 안락한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합덕으로 이사를 왔다.
 안홍식씨는 자신이 살아왔던 날들이 너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중에서도 65년 자신이 몰던 회사차를 다른 사람이 몰다가 사고를 낸 일을 잊지 못할 억울한 일로 꼽는다. 사건을 수습할 돈이 없어 안씨가 범죄자의 죄목을 썼던 것이다.
 3남1녀를 둔 안씨는 요즘 하고있는 대건어린이집의 운전기사 일에 적지않은 애착을 갖고 있다. 나이도 있고, 항상 미래가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역경들이 조금씩 지워지기 때문이다.
/류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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