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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9 19:4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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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할머니, 한 닷새동안 일하지 마시구 푹 쉬셔야 해유. 금방 나으실 수 있는데 자꾸 일하시니까 낫지 않는 거예유.”

 모내기에 정신없던 농민들에게 잠시라도 유식을 위하라는 신호인 듯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송악면 본당리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본당 보건진료소를 찾은 한 할머니 환자에게 진료소장 배상희(32세)씬즌 간곡히 이렇게 당부했다.

 한평생을 고된 농사일에 시달려 뚜렷하게 이렇다 할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곳 저곳 아프다며 진료소를 찾는 어르신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이 어쩌면 진료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는 시골 보건진료소. 이곳에서만 꼬박 5년째 머물고 있는 배상희씨는 그러한 역할을 잘 해와 주민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진료소 경력 10년째의 간호사다.

 앳된 목소리에 적당히 섞인 충청도 사투리, 화장끼 없는 얼굴에서 시골 아낙같은 순박함이 물씬 풍겨 나오는 배씨를 가리켜 주민들은 ‘천사가 따로 없다’고 스스럼 없이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배씨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생기면 한밤중이라도 싫은 표정없이 기꺼이 달려가곤 한다. 주민들이 배씨를 좋아하는 것은 헌신적인 모습이 첫 부임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기 때문.

 어르신들에 대한 극진한 정성도 그녀가 본당리를 비롯, 청금, 방계, 봉교리 등 4개 마을 1천여 주민의 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진료소장이라는 이름보다 며느리 삼고 싶은 이웃집 처녀로 주민들에게 각인된 배경이다.

 배시는 매주 목요일마다 진료가방을 챙겨들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가 진료활동을 벌인다. 매주 한번씩 반복되기 때문에 특별히 진료할 일이 없을 때도 많은데 노인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그녀는 어르신들에게 다정한 말벗이 돼주기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며 손톱, 발톱을 깎아드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덜어드리는 일, 그 일을 그녀는 진료 못지않게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당진 원당리가 고향으로 6남매 중의 막내로 자란 그녀는 대전간호전문대를 졸업한 뒤 낙도인 보령 삽시도에서 첫 진료소 근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스물세살의 어린 나이에 전기도, 물사정도 여의치 않던 섬에 홀로 들어가 2년을 보냈다. 일복이 많아서인지 발령 첫날부터 전기도 끊겼던 진료소에서 손전등을 켜고 봉합수술을 했었다는 그녀는 섬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1년 365일 긴장 속에 살아야 했던 그때가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리고 안면도에서도 2년을 근무했고 지난 94년 본당 보건지소가 문을 열면서 이곳으로 왔다. 그 사이 삽시도에서 만났던 지금의 남편 김영삼(순성면 근무)씨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한달 후면 예쁜 첫아이를 보게 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어렵사리 아이를 갖게 됐을 때 배씨보다 더 기뻐한 사람들은 바로 동네 주민들이었다고 한다. 행여나 그녀가 놀랄새라 진료소 출입문도 살그머니 여닫았다는 동네주민들은 이미 그녀를 한 가족으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을 가족처럼 위해주고 방문진료를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어르신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배씨, 그녀의 정성어린 진료활동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동네주민들에게 오히려 마음처럼 잘 해드리지 못하고 있어 죄송할 때가 많다며 겸손해 하는 배씨와의 첫 만남은 숨은 보석을 찾아낸 반가움이었다.


 이명자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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