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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탤런트 금보라

" '나주댁' 고향은 당진이었어요" 김항룡 기자l승인2004.11.27 00:00l(5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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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주년 창간 기념호를 준비하면서 가벼우면서도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
 먼저 당진사람에 대한 소개이기에 당진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정치인, 연예인, 공직자, 예술가, 스포츠선수들 중 당진 출신 스타들이 떠올랐고 연기자로는 차태현,금보라, 코미디언 겸 가수로는 김무스, 프로축구 김기동 선수 등이 물망에 올랐다.
 이들 가운데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친근한 사람은 아무래도 탤런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탤런트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자신과 비슷한 모습이나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이들을 통해 발견하고 곧 동질감을 느낀다. 탤런트를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아주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 이름을 알고 얼굴을 기억한다.
 신문지면을 통해 한 명의 탤런트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면 독자들에게나 탤런트에게 값진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탤런트 금보라(41, 본명 손미자, 고대면 진관리 출신)씨를 인터뷰하게 됐고 그 과정을 창간 11주년 기념호에 담아본다.
 아울러 당진시대의 창간 11주년을 축하하는 금보라씨의 축하메시지도 이번 특집호에 함께 담아본다.


"인터뷰 안 합니다"
 결정이 끝나는 대로 금보라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수화기를 들었고 몇 번의 통화음 끝에 금보라씨의 음성이 수화기로 전해졌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충남 당진에 있는 당진시대 신문사입니다." 이후 인터뷰 시간을 내달라고 용건을 말하자 "전 인터뷰 안 하거든요" 차갑게 느껴지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실제 금보라씨는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인터뷰를 하고 있지 않았다. 신문기사나 잡지에서조차 금보라씨의 인터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의 부탁을 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몇 분 뒤 다시 한번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거듭되는 요청에 금보라씨는 인터뷰 질문내용을 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그 뒤 A4용지 1장 분량의 편지를 써서 금보라씨의 메일로 발송했다.
 그 편지에는 인터뷰에 응해줘야 하는 이유와 몇 개의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일정에 쫓겼는지 메일확인이 되지 않다가 이 후 한통의 전화가 금보라씨로부터 걸려왔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이후 인터뷰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10월29일 금요일 오후 7시 문화방송내의 여자 분장실에서 약속이 잡혔고 인터뷰를 위해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문화방송에서 '금보라'를 만나다
 금보라씨는 약속시간에 다다를 때 쯤 MBC 연예오락 프로그램 '브레인서바이버' 촬영을 위해 문화방송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약속시간 확인을 위해 기자와는 문자 교신이 이뤄지고 있었다. 금보라씨의 문자에는 '천진난만함'이 배어 있었다.
"제가 좀 바빠서리', '옙' 등
 젊은 세대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휴대폰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낯설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밝아보였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머지 기다림은 그만큼 계속됐고 7시가 조금 넘어 사진 속 모습으로 금보라씨는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면 진관리 출신 연기자 금보라
 금보라(41, 본명 손미자)씨는 1963년 당진군 고대면 진관리에서 손남순,최선분씨의 3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80년 영화 '물보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이래 'KBS 맨발의 청춘(1982)', '미로'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MBC주말드라마 '여우와 솜사탕'MBC 창사 42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대장금'에서 각각 '성구애' 역과 '나주댁'역을 맡으며 전성기에 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화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감독 이원세, 1981)', 황석영 감독의 '장사의 꿈(1985)'등 다수의 작품들이 있다.

"나는 나죠. 원래 나니까"
 연기자 금보라씨는 도도한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렇게 된 데에는 맡은 배역이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금보라씨는 드라마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차이가 있냐는 질문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난 원래 나였다"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을 오해하든 하지 않든 항상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금보라씨를 가까이서 보았을 때 도도함보다는 '시원시원함'이 느껴졌고 차갑기보다는'당당함'이 옳아보였다. 거침없는 표현과 특유의 억양, 짧고 간결한 대답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었던 기자가 데뷔시절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내밀자 '이게 언제 적 사진인가!' 스스로 놀라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때 그때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할 줄 아는 숨김이 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보라씨에겐 3명의 아들(오승준, 오승민, 오승언)이 있다.
 첫째 승준(16)이와 둘째 승민(14)이는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셋째 승언(8)이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끼도 다분해 자신을 참 많이 닮았다고 금보라씨는 소개했다.

"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하고
 신작로 먼지 썼던 고향 당진, 너무나 소중해요"

"해나루쌀 광고섭외 들어오면 할 겁니다"
 처음 전화통화에서 금보라씨는 "고향은 그저 태어난 곳일 뿐이예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인터뷰를 거절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다. 자신이 태어난 곳(고대면 진관리 422번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때가 되면 조부모와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당진을 찾았다. 그리고 학창시절 방학 중 당진에 내려와 쌓은 추억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다. 특히 할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했던 일, 신작로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던 일 등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문화방송 대기실에서 금보라씨는 해나루 광고 섭외가 들어온다면 출연료가 다소 적더라도 선뜻 수용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고향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그간 해왔던 것처럼 연기를 통해 고향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고향은 항상 내 맘속에..
  금보라씨 고유의 털털함은 말투 곳곳에 배어있었다. 당진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향까지 내려갈 필요가 있겠느냐? 고향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잔 하면 되지"라며 재치있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오늘 내려가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금보라씨로부터 처음으로 질문이 받았다.
 자신의 고향에서 올라온 사람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잊지 않고 자신을 찾아준 것이 고마워서였을까, 금보라씨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금보라씨의 마음에 고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고향은 자신에게 해준 것이 없지만 자신이 고향에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말에 동감하는 듯 했다.

"브레인서바이버" 촬영현장에서 본 금보라
 인터뷰가 끝난 뒤 금보라씨는 여자 분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8시부터 있을 브레인서바이버 촬영준비 때문이었다. 섭외된 20여명의 출연진 사이에서 중간쯤 금보라씨가 보였다. 탤런트 조형기씨의 옆자리였다. 촬영이 시작됐고 금보라씨는 도도하면서 우악스러운 대본의 대사들을 읊었고 관중들을 웃음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러나 역시 드러난 대사에서는 금보라씨 본연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본연의 모습을 다르게 표현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연기자는 평생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이 드라마에 비쳐진 모습을 가지고 도도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만큼은 금보라씨의 본연의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끝으로 금보라씨는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연기)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일 조차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그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그리고 고향 당진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일문일답]

"연기자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


<언론을 통해 고향 분들에게 인사해 본 적이 있나요?>
 ” 연기자로 생활한지 25년이 됐지만 그래본 적은 없었어요. 이번 기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고대면 진관리 422번지에서 태어났대요.
 두 달 만에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지만 겨울방학이나 여름방학 때면 할아버니와 할머니가 계신 고향 당진에 자주 놀러갔어요.

<최근 당진에 와 본 적이 있나요?>
 ” 지난 명절(추석)에 들렸었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묘가 그 곳에 있는 걸요. 갈 때마다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해요.
 방학 때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 막걸리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참 많이 했습니다. 막걸리 한 잔 드시고 고추를 찍어 안주하시고...
 지금은 대부분 도로가 깔려 흙을 밟아보기 어렵지만 예전엔 신작로였구요. 그곳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온갖 먼지를 뒤집어썼던 기억과 함께(웃음)...

<이름과 데뷔작(물보라)이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 어! 그래서 금보라가 된 거예요. 옛날에는 배우가 극중 이름이나 영화의 이름을 예명으로 많이 쓰곤 했어요.

<손미자라는 이름은?>
 ” 촌스럽죠. 얼마나 촌스러웠으면 예명을 썼겠어요. 그래도 손미자라는 이름은 저에게 무척 소중합니다.

<고향이 힘이 돼줬으면 할 때?>
 ” 항상 힘이 들죠. 하지만 제가 힘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좋은 연기 보여드리는 것이 그 방법 같구...

<당진에 해나루 쌀이 유명합니다. 또 해나루라는 브랜드를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고출연 섭외가 들어온다면 출연료가 좀 낮더라도 동참할 의향이 있나요?>
 ” (해나루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듯) 그럼요.

<녹화가 끝난 뒤?>
 ”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그만큼 어렵고 힘든 작업 이예요."

<고향분들에게 어떤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나?>
 ” 기억해달라고 부탁드린다고 기억해 주시는 건 아닐 거예요. 기억해주시면 그저 감사드릴 뿐이죠.

 

[금보라의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

연기생활 시작한 첫 촬영장 '욕지도'
 처음 경험하는 것은 추억으로도 쉽게 남는다. 첫 키스, 첫사랑.
 나에게도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그리워하는 추억, 기억하고 싶은 시간으로 남았다. 누군가 잠시 잊었던 순간을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내미는 순간. 사진 속 내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진은 데뷔작 영화 '물보라(감독 김수용)'의 한 장면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10대 때 사진 속 장소(욕지도, 경남 통영시 소재)에서 처음 영화를 찍었다. 내 몸을 감싼 파도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 깨끗했다. 또 배로만 이동해야 했을 정도니까 그야말로 완전한 섬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두 달간 그렇게 머물렀고 그것이 나의 첫 연기생활이 됐다.


김항룡 기자  hr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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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생활 시작한 첫 촬영장 '욕지도'

MBC 오락프로그램 '브레인서바이버' 녹화 직전 금보라씨가 탤런트 조형기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전 권투 챔피언 홍수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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