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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대시론-남연숙(본지 편집위원)] 라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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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살림에 재주가 없고 관심도 없어서 식구들에게 늘 미안했었는데 나도 보통의 가정주부는 되어야지 하는 각오로 묻혀두었던 요리책들도 보고 요리 사이트에 가입도 하고 또 요리사 자격증을 막 땄다는 동네 아줌마에게 돈도 지불하면서 요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사실 식구들에게 그럴듯한 요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뭔가 그럴듯한 가정주부로서의 나 자신도 되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모처럼 식구들이 오붓하게 함께 하는 토요일 저녁상에 드디어 업그레이드(?) 된 내 요리실력을 선보이기로 마음 먹고 식구들에게 기대하라고 큰소리 치며 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미리 메모한 재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사려니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게 되었고 양손에 가득 장을 보고온 나는 그야말로 헥헥거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잔뜩 기대에 차서 두둑한 장바구니를 보며 벌써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습니다. 장 본 것을 대충 정리한 나는 그만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습니다. 안 하던 짓을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잠시 쉬었다 요리를 한다는 게 그만 일어나지를 못했고 그 날 저녁은 결국 식구들 모두 후루룩 맛있게(?) 라면을 먹었습니다.
 그날 라면 사건으로 난 좀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날은 밤 늦게까지 독서논술 수업이 있었고 토요일 오전은 요가와 탁구를 연이어 하여 피곤한 상태였는데 오후에는 안하던 요리까지 한다고 과욕을 부렸으니 결국엔 라면을 먹는 꼴이 되고 만 것이지요. 나는 늘 그런 식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하고자 하는 목표를 늘 높게 잡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대부분 목표의 끝자락이나 간신히 잡게 되든지 아니면 완벽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꿈과 이상은 높고 크게’ 라는 말이 자라는 청소년에게는 진리처럼 들리고 사실 맞는 말이지만 점점 나이를 먹을 수록 그것만이 최고는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행복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아주 명쾌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가지고 싶은 목표와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의 차이가 적을수록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십억의 재산이 있는 사람이 백억대의 재산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고 백억대의 재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 조그만 판자촌에 살지만 집이 있음에 감사하고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같이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으로 세상을 얻은 듯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7년 영국의 런던정치 대학 연구팀은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문맹률 80%, 1인당 국민 소득 200불, 뇌물과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나라, 해마다 국토의 70% 이상이 비에 잠기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돈이 많지도 않고 지식이 풍부하지도 않고 게다가 대자연마저 그들을 홀대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68점으로 23위 입니다. 한 연구 기관에서 시행했던 또 한번의 행복지수에서 한국의 30, 40대 남성 가운데 60%가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불행의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 가족간의 갈등, 직업상의 스트레스, 취업문제 등이라고 합니다.
 결국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행복 논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사는 것은 각자의 마음 먹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니까요.
 한 해가 또 지나갑니다.  이루지 못한 일에 아쉬워하고 내년에는 꼭 잘해봐야지 하는 각오를 합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목표를 조금 낮추려고 합니다. 요리도 피곤할 때는 하지 않고 독서논술 수업도 팀을 늘리지 않고,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좀 더 여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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