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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앞두고 학급마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점심을 먹고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마법의 성’ 노래에 끌려 2층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수화를 진지하게 연습하고 있었다. 30여명 되는 학생들이 세줄로 대형을 이루면서 맨앞줄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중간 줄은 서서, 맨뒷줄의 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수화’ 퍼포먼스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마침 “너무나 소중해 함께 있다면.....” 하는 노래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또 그들의 동작과 일치해 눈물이 날뻔 했을 정도였다. 아마도 정식공연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리라 확신하고 있다.
그들이 쉬는 동안 주의를 환기시킨다음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얘들아! 너희들의 수화동작이 너무 아름답구나! 그렇지만 너희들이 하는 ‘수화’는 청각장애우들이나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우들과의 언어소통수단인 만큼 그 뜻을 분명히 깨닫고 열심히 하되 축제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사회에서도 그들을 만날 때마다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 잘하고 그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도록 하자!” 하는 주문을 늘어 놓았다.
그들의 연습을 보면서 나는 70이 넘으신 외삼촌을 생각했다. 어렸을 적 함께 생활했던 외삼촌, 구두기술이 너무 좋아 중학교 때 손수 지으신 구두를 선물해 주어서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랑을 했었는지 모른다. 또 봉급때마다 빳빳한 천원짜리 지폐를 삼베과자와 함께 건네주시던 정이 많으신 우리 외삼촌, 나는 그 외삼촌을 벙어리 삼촌이라고 불렀었다. 비록 말은 못하시고 듣지도 못하시지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었다.
애들한테도 소개를 시켜줄 만큼 나는 우리 벙어리 외삼촌을 좋아했었다. 지금은 언어장애우와 청각장애우로 호칭이 바뀌었지만 나는 왠지 50여년동안 써온 벙어리 삼촌이 더욱 정겹다.
 나와 삼촌은 서로 손바닥에 글을 써가면서 의사소통을 했다. 불편함은 없었다. 얼굴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있을 정도였기에 언어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으로 오가는 것들이 말보다 더욱 귀하다는 것을 그때부터 알고 지내왔다. 그런 외삼촌 탓인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나는 말 수가 적은 아이로, 학생으로, 군인으로, 사회인으로 그렇게 성장해 왔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말수가 많아졌고 그 말 때문에 실수도 많이 했다. 책임지지 못하는 말, 본의는 아니지만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말등등.
나는 오늘도 70평생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손을 놓고 계시지 않는 말없는 외삼촌을 존경한다.

- 송악고 교사  |  본지 편집위원
- skyhoch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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