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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도서관 어르신 배움사랑방에서 만난 할머니들 - 글 배우는 할머니들의 요즘 사는 맛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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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때나 스무살때나 배우고 싶은 맘 한결같았지”

하루하루 눈 트이는 기쁨, 새 인생 사는 듯
졸업장 받아보는게 소원, 일년 열두달 배울기회 있었으면...

“학교 가는 길. ‘는’자가 빠졌네요, 그림을 잘 그립니다, 잘, 자에다가 받침 무엇이 필요할까요? 네, 잘하셨어요.”
“학교에 다녀, 녀, 나냐너녀 배우셨었죠?”
“아이구 헛갈리네, 도대체가 생각 안나요.”
1일 오전, 당진도서관 2층에 위치한 평생교육반 교실에서는 열명 남짓 할머니들이 한글 받아 쓰기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송애선 교사가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불러주면 학생들은 공책위에 교사가 불러준 문장을 뇌까리면서 받아 적는다. 받침 하나하나 곰곰 생각하다보니 문장을 까먹어 더러 한글자씩 빠뜨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할머니들은 끝까지 ‘소임’을 다했다.

“어려서 못배운게 한이 돼서 그려. 다른애덜 학교가는거 볼땐 얼마나 부러웠는지 화장실 뒤에서 숨어서 봤다니께. 애들한테 일러달라고 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 지덜 배운거 유세하느라 그런게지.”
읍내 병원에서 청소일을 하는 이광명할머니는 출근시간 때문에 미처 수업도 끝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이광명 할머니의 말처럼 ‘못배운게 천추의 한’인 할머니들이 모여 뒤늦게 한을 풀고 눈을 밝히는 현장이다. 바로 당진도서관이 평생교육프로그램의 하나로 2회째 마련한 어르신 배움사랑방의 모습. 지난 12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도서관 이전문제로 이달말까지 일주일에 네 번씩 수업시간을 늘려 집중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하루 3시간씩 초등학교 1학년 단계인 국어읽기와 쓰기를 배우고 간단한 연산 등 수학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지도교사는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 경력을 가진 송애선씨.
“우리 어르신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일어날 줄을 모르신다니까요, 얼른 책을 읽고 싶으셔서 그런지 정말 열심히 하신답니다.”
송씨의 말처럼 이곳에 나온 할머니들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대입시험을 앞둔 수험생 저리가라다. 공란없이 빽빽히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는 출석부에서도, 출근시간 때문에 혹은 버스시간 때문에 마음 졸이면서도 한 문제라도 더 풀고 가려고 연산문제가 프린트된 복사물을 가져가는 모습에서 그러한 열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이름자도 모르니까 답답해서 나온거야. 애들도 이제 다 커서 집을 나갔으니 무슨 고지서가 와도 읽어 줄 사람이 있나? 영감은  눈이 어두워서 또 어렵고..”
송악면 전대리에서 날마다 버스를 타고 교육을 받으러 온다는 송복순 할머니의 사연이다. 송할머니와 같은 마을에 살며 함께 교육을 받으러 나오는 황순희 할머니는 “지금은 이름도 쓸수 있게 되었다”며 “너무 좋다”며 흐뭇해 했다.

“우리 딸이 살고 있는 안산에서는 1년 열두달 시청에서 한글교육을 한다는거야. 그래 공부 못한게 너무나 한이 되어 군청으로 전활했지. 그랬더니 도서관에서 한다는 거야. 열일 제쳐두고 부랴부랴 당진으로 내려왔어. 글 배우려고.”
정미면 천의리에 사는 장간옥(58)씨는 어려서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먹고 살기가 어려워 미처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글을 배우기전엔 그야말로 기역자도 몰랐다는 장씨는 얼마 전 글 모르는 고통에서 벗어난 희열을 짐시 맛보았다.
“내 이름을 쓸 줄 아나, 버스간판을 볼 줄 아나, 집에 고지서가 주렁주렁 와도 당췌 뭔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근데 얼마 전 집에 온 고지서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어. 받침 하나하나 기억해내어 이어 붙이니까 건강보험공단이더라구. 기분 참 좋았지.”
장씨를 비롯 이곳에 나오는 할머니들은 이처럼 하루하루 ‘눈이 트이는’ 기쁨이 마치 인생을 새로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일제시대때 아버님이 강제징용에 끌려가 홀어머니 아래서 어렵게 성장했다는 변은미(가명,58)씨는 이제 은행에 가서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청구서를 쓸 수 있게 되었다며 요즈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제주도 여행 갈 때였는데 왜 공항에서 쓰는 게 많잖아요. 일행들에게 글 모르는거 들통날까봐 몰래 화장실에 가서 모르는 사람한테 써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어요. 배우지 못한 사람의 설움은 당사자가 아니면 몰라요. 그런데 이젠 은행에 가서 막 쓸 수 있고 주민번호 같은것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일주일 내내 여기올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변씨는 공부를 계속해 3년안에 검정고시를 보는 게 꿈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고등학교 졸업장까지만 받았으면 좋겠다는 변씨는 아마 그때 즈음이면  평생 꿈이었던 시와 수필도 쓸 수 있게 되지 않겠느냐며 마음은 벌써 자신만의 문집출판에까지 달려가 있다.

여자가 배우면 팔자가 드세진다며 친정아버지가 가르쳐주질 않아 문맹이 되었다는 김신자 할머니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한때는 독학으로 천자문도 익혔다는 의지의 인물. 세월이 흐르면서 그나마도 모두 잊어버렸지만 할머니는 열 살때나 스무살때나 배우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못배운게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어렸을땐 여자라고 안가르쳐주셨고 시집가선 시부모님 슬하에서 자식낳고 키우느라 배울 여력이 없었지 늘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지금 기회가 되어 배우려는데 자꾸 잊어버려서 어렵네요. 자식들은 모두 대학졸업했는데 저는 초등학교 졸업장이라도 하나 받아보는 게 소원이지요.”
가난 때문에,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문맹의 상처를 안게 된 할머니들은 비록 두 달이라는 짧은 교육기간이지만 막힘없이 읽고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도록 하기위해 아픈 다리를 이끌고 가파른 남산 도서관길을 오른다. 할머니들의 배움을 향한 열망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문맹’이라는 속박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본능에 다름 아니다. 자유롭고자 함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남편이 그 나이 먹어서 뭘 배우려느냐고 하는데 자기들은 몰라요. 글 모르는 심정을.” -변은미씨
“눈 어두운 사람 밝혀주는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인복순할머니
“여기서 글 잘 배우면 우리 딸이 서울대 보내준다고 했는데..”(웃음)- 장간옥씨
“곧 도서관이 헐린다는데.. 우리같은 사람들 어디서 또 배울수 있을지..  이런 교육 계속 받게 해달라고 윗분들한테 얘기좀 해주슈”-김신자 할머니

 


인·터·뷰 어르신 배움사랑방의 리더 송애선 교사
 “우리 학생들 화장실도 안가요”


“참 성실한 학생들이죠. 힘든거 전혀 못느껴요”
어르신 배움사랑방의 송애선 교사는 이곳 할머니들에겐 자신들의 문맹의 눈을 틔워주는 심청이와도 같다.
‘우리 선생님 너무나 꼼꼼하게, 철두철미하게 가르쳐주신다’며 학생들로부터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5년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어 쉽고도 재미있게 어르신 학생들을 이끌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화장실도 안가세요. 모두들 친정어머니 같고 한자라도 깨우치려는 열의가 강해 제가 오히려 배우고 있어요.”
송씨는 배우고자하는 할머니들의 욕구에 비해 아직 문맹자 교육에 대한 체계화된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자치단체 차원에서 연중 이러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실제 학교과정처럼 운영한다면 좀더 많은 분들이 배움의 기쁨을 누릴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 제가 가르치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예요. 실제 초등학생들과 할머니들을 비교한다면요? 음... 초등학생들은 열문제만 내도 짜증을 내고 싫어하죠.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스무문제를 내도 열심히 하신다는 거예요.”
뒤늦은 배움길에 나선 할머니들에게 송씨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뤄진다’며 용기를 듬뿍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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