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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52] 푸른숲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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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다.
다른 학생들 모두가 영어 어휘시험을 치르는 동안 3층 교실 창문을 통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눈길을 돌리니 자그맣게 조성된 화단사이로 높이 솟아오른 나무 한 그루에 시선이 갔다. 그 나무는 고인이 되신 전직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심으신 나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외국산 소나무로 당시 교장 선생님의 고향집에서 직접 학교에 옮겨 심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심을 당시는 서 너 살 어린아이 키 정도였으나 지금은 10여m는 족히 넘을 만큼 키가 컸고 잎이 무성해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줄 만큼 잘 자라났다. 교실을 나와 운동장 쪽을 보노라면 산등성이를 따라 무성하게 잎을 드리운 나무들로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부임하던 25년 전 당시에 그 곳은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 언덕이었다. 당시 교감선생님과 담임교사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산의 경사면에 한그루의 나무들을 심었었다.
토사질의 흙과 돌이 대부분이어서 미끄러져가면서 나무를 심었는데 그만큼 심기도 힘들었지만 심은 나무가 제대로 잘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은 여느 산 못지않게 푸른 숲을 이루고 있다.
지난 토요 휴무일, 그 당시 나무 심기에 참여했던 제자들이 학교를 방문했었다.
마침 자율학습 당번이라 그 모임에 참석했다. 모두들 40대 초·중반의 중후한 모습들로 변해있었고 실로 오랜만의 만남이라 얼굴을 몰라보면 어쩌나 했었는데 당시의 얼굴들에 대한 기억들이 되살아났음에 감사했다. 이름은 가물가물했지만 어쩌다 기억나는 이름을 불러 줄때면 깜짝 놀라 기뻐들 했다. 준비해온 식사를 함께 하면서 학창시절 동안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추억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잘려진 산의 하얀 경사면이 그들의 노력으로 이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푸른 숲으로 변한 것처럼 이 제자들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푸름을 간직하면서 남을 위해 자그마한 그늘이라도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익한 사회인들이 되어주길 기원해 보았다

송악고 교사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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