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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7.24 00:00
  • 호수 623

농군, 꽃보고 약도 얻는 야생화테마농원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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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면 홍양선씨가 농사지으며 전통약재개발을 공부하는 이유

▲ 야생식물테마농원을 꿈꾸는 홍양선씨. 아직은 꿈일 뿐이라며 마당에 심은 야생화를 하나씩 소개해준다.

 먼 듯 아주 가까운 .... 홍양선(45세)씨를 만나면서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그것이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과 길의 초입부터가 그랬다. 송산면 도문리를 지나면 명산리인데 초행길에 집을 잘 찾을 수 있을까 했더니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바로 명산리라고 쓰여진 표지석 옆이었다.
 길의 초입에 ‘멍성골’이라는 작은 팻말이 서있어서 찾기가 더 쉬웠다. 팻말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작고 구부러진 길을 들어서서도 교회당 바로 밑에 있는 집이라 길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초행길에 단숨에 집을 찾아버린 것이다.
 야무지고 단단해 보여서 잠깐 차가운 인상을 주었던 홍양선씨는 마당에 들어서자 마자 그의 꽃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자 생면부지의 한사람이 이내 또 친숙한 이웃이 되어버렸다. 울타리도 없는 집에 울타리 대신 옹기종기 심어진 꽃들. 홍씨는 그것들이 꽃이라기 보다는 풀이라고 굳이 해석을 달았다. 4월초에 화사한 꽃을 피우고 나머지 열달 넘도록 그저 푸른 풀로 살아가는 그네들의 생애를 굳이 치장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마음이 꼭 들꽃같다. 홍씨는 들꽃 들풀의 마음을 아는 사람같다.
 “이것은 구절초예요. 이것은 나리꽃, 이것은 꽈리, 그리고 저건 매발톱, 옆에는 둥글레, 또 저것은 ‘부자’라고 불리는 식물인데 옛날에 임금이 사약을 내릴 때 그 독성분을 여기서 얻었다고 합니다. 부자의 꽃이름은 따로 있는데 그게 바로 바꽃이죠.”
 아니, 어찌 그렇게 식물들의 이름을 잘 아시나요? 그리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종류의 풀들을 한움큼씩 마당에 심어놓은 건가요?     
 “뭐 이걸 대수라고 그러십니까? 꽃도 여럿이 함께 보고 좋은 약재도 얻고싶어서 하나씩 옮겨다 심은 건데 아직 누구에게 내보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긴 했다. 그것들이 마당 가장자리에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긴해도 아직은 그저 한움큼씩 뿐이었다. 그래도 그 종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초롱꽃, 패랭이, 치자, 나팔꽃과 함께 서로의 넝쿨을 타고 오르던 더덕... 돌아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들이 더 많다.
 평소에도 산이 좋아 틈만 나면 산을 오르던 터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산식물에 대해 관심이나 상식이 더 있는 편이긴 해도 어디까지나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의 직업도 어디까지나 농사꾼이었다. 벼농사를 위주로 소도 제법 키우고 있는 그가 아니던가. 그랬던 그가...
 지난해 고마운 사람의 조언으로 신성대 전통약재개발과에 입학하면서부터 평소 관심사이던 야생화, 야생약재에 더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사꾼인 자신의 직업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고 자신이 꼭 하고싶은 분야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에게도 늦깎이 꿈이 하나 생겼다는 것이다. 홍씨는 집과 마주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맞은 편에 아버님의 산이 제법 있습니다. 앞으로 그곳을 개발해서 야생화와 약용식물이 있는 공원으로 개발하고 싶습니다. 직접 재배도 하면서 주변이나 다른 지역에서 와서 보아도 손색이 없는 테마농원으로 말입니다. 그럴려면 아직 꽃명으로만 알고있는 식물의 이름도 약명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 쓰임새나 처방도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겠어요? 배워야 할 게 정말 무한하게 많습니다.”
 아직 1학년에 재학중이니 전문대 과정만 해도 1년반을 더 다녀야 하고 이미 이런 종류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역의 선배들에게서도 배워야 할 게 많다고 홍씨는 생각한다. 올봄 농사일로 가장 바쁜 때에 대학등록을 하는 바람에 매일 종종걸음 치며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정신없이 지냈는데 방학을 하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보니 정말로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다. 
 이곳 토박이인 홍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농사일에 정착해서 살만큼 농촌이 좋았다.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농촌에 남게 되다보니 부모님을 모시는 일도 9남매의 막내인 홍씨가 가지게 된 복이었다. 농업기술센타에 왔다갔다 하다보니 관상용 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모두가, 2006년 7월에 홍양선씨가 바로 이 모습으로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식물 중에서도 작은 식물,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해서 그 사람이 작거나 식물성인 것은 아니다. 홍양선씨는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4H활동을 시작해 농업경영인회 활동 등 농업관련 사회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자 끝없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사회 각 분야에 관심도 많고 매사 적극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닌 게 아니다. 송산면 지역은 농업경영인, 농민회, 법인회사, 농촌지도자회, 쌀전업농 등 5개의 농업관련단체가 협의체를 구성해 공동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사무국장이 바로 홍양선씨였다. 협의회는 그 안에 산악회를 조직하여 함께 등산도 하고 마음정리도 하며 수시로 농업과 관련된 당면문제를 논의하기도 한다.
 말머리가 농업이야기에서 한미FTA로 넘어가는 것도, 화제가 넘어가자 홍씨 말의 톤이 높아지는 것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야생화 작은 꽃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긴 했지만 그 자신이 위기앞에 있는 대한민국 농사꾼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름에 잠긴 우리 농민 형제들에게 힘내자는 말밖에 달리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상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농사꾼이 수지맞는 농사를 지으면 그보다 큰 낙이 없을텐데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나니 말입니다. 정부에서건, 관료들이건 제발 농업을 가격이나 상품가치로만 보지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농업은 한 나라의 근본이고 바탕입니다. 농촌이 이대로 파산지경으로 가면 다시는 일으킬 수 없습니다. 아직 이만큼이라도 살아있을 때 우리농업과 농촌을 지켜야 합니다.”
 화제가 무거운 방향으로 가버리자 홍양선씨나 묻는 사람이나 서로에게 미안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예 미안해 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준엄한 현실이므로. 우리는 이런 농담을 나누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것저것 다 수입해 쓴다는 마당에 정부관료들은 수입해다 쓰면 안되나요?”
 근심이 아무리 커도 작은 희망 하나를 막을 수는 없다. 어둠이 빛 한줄기를 덮지 못하는 것과 같다. 머지않은 날, 두메산골에 들꽃 만발한 야생공원을 만들겠다는 홍양선씨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것이 꿈을 향해 부지런히 노를 젓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또하나의 희망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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