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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72] 믿음을 담은 편지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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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직장생활을 한지가 벌써 3년째이다.
아침 05:30분이면 핸드폰 음악소리에 맞춰 일어나는 것이 70년 대 중반 군대생활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하기가 힘든 때에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이런 우리 딸에게도 어려운 때가 있었는데 바로 고등학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이다. 온순한 성격임에도 그때는 웬일인지 투정도 잘 부리고 말도 잘 안하고 매사에 예민해져서 부모로서도 여간 고민스럽지 않았었다.
지금부터 한 8-9년전 딸아이가 고 1이나 2학년 되었을때 마침 학교에서 시험이 있었고 얼마있지 않아 성적표를 보게 되었다. 다른 과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다만 수학성적이 너무 저조해 충격을 받았었는데 장학생으로 고교에 입학한 딸의 수학성적이 낙제점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무언가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대화를 하려해도 방문을 열어주지 않아 호통을 치니 그때서야 문이 열렸고 그런 다음에도 좀처럼 말은 고사하고 얼굴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저도 실망을 많이 했는지 울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 아이에게 매를 댈 수는 없었고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편지를 쓰게 되었다. 지금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썼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사랑하는 우리 딸.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해 준 것 너무 고맙다. 오늘 수학 성적이 너무 안좋은데, 결과에 연연하지는 말아라. 아빠는 네가 받은 점수가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열심히 한 결과라면 그것으로 만족한단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반성하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 주길 바란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는 그래도 글은 남보다 잘 쓰지 않니! 아빠도 학교 다닐때 수학성적이 좋지 않았어, 네가 날 닮아 그런가 보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아빠는 너를 믿으마! 사랑하는 아빠가.” 이 편지를 읽고 아이의 마음이 편해졌는지 그 이후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딸과의 사이에는 거리감이 사라졌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도 자식을 믿어주지 않으면 그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말수가 없어진 아이와 성격이 예민해진 아이들에게 사랑과 믿음이 담긴 편지 한 장의 효과는 부모 자식간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리라 생각한다. 백 마디의 말보다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한통의 편지가 그 어떤 것보다 값진 효과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송악고 교사  |  본지 편집위원
skyhoch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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