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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87]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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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방학식과 학급종례를 마친 후 교무실 책상 앞에 한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하도 오랜만에 보는 편지라 반갑기도 하고 그 내용이 궁금하기도 해서 바로 뜯어보았다. 마지막에 그 학생이 부탁한 것도 있고 해서 전체의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학생들이 피부로 느꼈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내신 성적이 등급제로 바뀌면서 예상했었던 것이지만 그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그를 포함한 대다수 학생들의 정신적 고통은 대단한 것이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등급제의 도입은 학생들로 하여금 친구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주범인 셈이다.
기성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가 누구냐고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고등학교 때 친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사고를 갖추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절,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자기의 정체성, 개인 및 가정의 문제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은 뭐니 뭐니 해도 친구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땅 위의 고등학생들은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상대의 실수가 나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비인간적인 제도 하에 살아가고 있는 슬픈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성적에 민감해져있으며 이것이 긍정적이고 순종적 이어야 할 대상인 교사들과 그렇지 못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1월 2일 아침 8시20분 학교에 도착하자 도서관의 불이 밝혀져 있다.
누군가 불을 켜고 히터를 가동시켰을 텐데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책상 칸막이 사이로 한 학생의 머리가 보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하는데 내가 담임하고 있는 학생이다. 이 녀석은 방학 중에 스스로 공부를 하겠다고 보충학습을 마다한 녀석이다. 아침 일찍 나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그 결심이 변치 않길 기대하면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좥낮추고 사는 즐거움좦이라는 책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가슴에 열정이 있으면 청춘이요, 20대라도 꿈과 열정이 없으면 늙은이”라는 내용이 단골 메뉴라 한 눈에 들어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언젠가 기쁨의 날이 오리니...“ 편지를 쓴 녀석에게 푸쉬킨의 시를 담아 답장을 해야겠다.
송악고 교사  |  본지 편집위원
skyhoch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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