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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외길① 당진출신 목조 조각가 한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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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으로 만드는 우화

▲ 한선현의 작업실은 예나 지금이나 목공소같다. 재미있는 우화로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기까지 한선현은 아주 오랫동안 침묵의 순례자이거나 엄청난 노동을 하는 목수로 지낸다.

작가란, 작가라는 길을 가는 사람일 것이다. 길이란... 아마도 집을 떠난 곳일 게다. 집이 익숙함의 중심에 있다면 길은 낯설음의 극에 있다. 길 위에 있는 사람은 익숙함을 떠나 생생한 낯설음 속에 있는 사람이다. 미지에 자신을 열어놓고 그 어떤 초자연적인 기류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 작가란, 스스로 그것을 택하고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 아닐까. 하여 사람들은 그가 던지는 새로운 세계에 놀라워한다.

 목조 부조로 주목받고 있는 전업화가 한선현(40)을 만났다. 그를 만난 것은 무엇보다 그가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한씨는 3년반 전에 고향 당진을 떠나 지금은 서울 수색에 살고 있다. 작업실은 수색의 끝,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와 맞닿은 소박한 지점에 있다. 도심에서 벗어난 변두리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곳에 쌈직한 작업실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변두리에 있지 않다. 지난 해 1월, 자신의 여섯 번째 개인전 <흰 염소의 전쟁, 그리고 평화>를 통해 한국 미술계 신인작가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고 그 뒤에도 여러번 화랑들로부터 전시초대를 받은 것은 물론 화랑측의 주선으로 세계 각지 ‘아트 페어’를 다니고 있다. 여섯 번째 개인전 역시 ‘갤러리 <상>’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돈 없는 작가에게 돈 안들이고 작품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보다 더 값진 행운이 어디 있을까. 그런 작가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특별한 계기도 없이 찾아온 고향사람의 방문에 놀람 반(半), 의아함 반인 표정이지만 한선현은 크게 구멍난 작업바지에 노란 스카치테입을 덥석 붙인 채 켜켜히 껴입은 작업복차림 그대로다. 그의 작업실은 여전히 목공소 같다. 작업실에 잇닿은 작은 방은 갖가지 동물과 사람을 그린 드로잉 소품들로 우화세상을 이루고 있다. 또다른 한쪽은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들이 걸려 작은 전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잠깐 뒤돌아선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흰 염소. 흰 염소는 그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흰 염소의 특기는? 외다리타기, 높은 바위 빨리 올라가기, 독초가 아니면 어떤 풀이라도 먹어치우기, 꼬리밑으로 냄새를 풍겨 암놈 유혹하기, 그래서 염소는 내 무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감독인 나는 내 염소에게 희망을 건다. 그래서 염소를 유쾌한 웃음의 발상지로 등장시키려고 한다. 사람들은 점점 웃음이 적어진다. TV를 보며 웃는다. 동물들도 웃는다. 인간에게 맞서 이겨보려 웃는다.」

 이것은 다섯 번째 개인전이 열렸던 2005년, ‘화가의 작업실을 찾아 떠나는 상상미술여행’ <유쾌한 상상작업실> 편에 실린 한씨의 글이다. 이렇게 한선현에게 전격 캐스팅된 염소는 내내 그의 작업에서 그가 할 말을 대신해 왔다. 그의 작품은 우화적이고 위트가 넘치며 재미있고 리드미칼하다. 언제나 여러 편의 부조작품으로 경쾌한 비트 리듬의 입담을 선사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침묵에서 태어나고 침묵으로 뒷받침되는 것이다. 침묵이 없다면 그림 속의 입담은 볼 수 없다. 만일 그가 홀로 지낸 긴 침묵과 몰입, 노동의 시간이 없었다면 한 편의 우화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주목을 받기까지 그의 젊은 날이 또한 하나의 긴 침묵이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오로지 그림과 함께 뒹굴고 그림을 통해서만 세상과 만나던 그에게 입시라는 평균의 관문은 무려 ‘4수’라는 시련을 그에게 던져주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오로지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렸다. 그리고 4학년이 되던 해, 스물여섯 나이에 첫 번째 개인전을 열며 그는 한 막의 긴 침묵을 깼다. 그보다 더 순수했던 때를 한선현씨 자신도 알지 못한다. 95년에는 배효남과 함께 관훈갤러리와 당진 수선화공간에서 ‘2인 조각전’을 열었다. 당진에서 열린 최초의 조각전이었다.        
 
 한선현의 조각재료는 나무다. 그가 나무라는 재료와 만나게 된 것은 이태리 유학 때였다. 그곳에서 성당 문을 만드는 원로 장인 Maestro Claudio Chiappini를 통해 나무 부조를 배웠다. 그때 회화와 같은 느낌이 나는 나무의 매력과 자신의 감성이 나무와 맞는다는 사실 모두를 발견하게 되었고 두 번째 개인전 <동물>을 그곳에서 열었다. 유학 후 그는 박기호 화가부부가 작업중인 (구)유동초등학교에 교실을 얻어 바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2002년 덕원갤러리 기획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주제는 <인간과 동물>. 당시 자신의 작품 포트폴리오 13개를 만들어 서울 등지 화랑을 직접 돌며 적극적으로 프로포즈하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는 ‘발가벗은 느낌’이 된다. 작품을 만들고 작품전시를 기획하고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화랑에 설득하고... 혼자였던 고독한 작업 끝에 덕원갤러리는 결국 그의 <인간과 동물>전을 선택했다. 이 전시는 가진 것 없이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길에 대한 도전 하나로 맨몸으로 부닥친 그를 새로운 길로 안내했다. 그리고 2006년 개인전 이후 한선현은 외길에서 혹은 광야에서, 길 복판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작업을 하고있다. 길은 살아있어서 그에게 한없는 양식과 굶주림을, 한없는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준다. 그 길에서 새로운,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있다.           

 순례자가 그러하듯 한선현은 걷기를 좋아한다. 작업실에서 집이 있는 수색역까지 걸어서 37분. 그는 매일 아침과 저녁 이 길을 혼자 걸어서 오고간다. 어린 딸 아들과 디자이너인 아내 김연숙이 있는 보금자리를 떠나오는 걷기는 매일의 의식(儀式)과도 같다. 작가가 건강해야 세상에 건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생각, 대상에 집중하라ㆍ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라는 명제들도 걸으면서 정리가 된다. 이런 생각은 그가 요즘 강의에서 만나는 관동대 학생들에게 다시 던져질 것들이다.
 그뿐 아니다. ‘꼭두새벽을 여는 사람들’ 혹은 ‘이 시대의 꼭두’와 종전의 테마인 ‘외길’을 관통하는 새로운 작품을 예감하는 것도 이 길에서 갖는 그만의 설레임이다. 

※한선현 : 1968년 당진읍 출생 / 당진초ㆍ당진중ㆍ호서고ㆍ관동대 조소과 졸업 /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졸업 / 일곱 번째 개인전 준비중
※작업실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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