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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92] 후회없이 보낸 26년 교직생활

당진시대l승인2007.02.12 00:00l(6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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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교직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임용고시 합격이 하늘의 별따기 정도로 어려워졌지만 내가 교직을 시작한 1981년도만 해도 교사의 인기는 없었던 것 같다.
처음 2학년 담임을 맡아 그럭저럭 5월이 되었는데 점심시간에 두 명의 학생이 다투다 한 학생의 코뼈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그 학생과 함께 집으로 갔었다. 무슨 야단을 맞을까 걱정 때문에 가는 걸음은 무거웠었다. 학생의 집에 도착해 어두컴컴한 안방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제 불찰로 학생의 코뼈가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제 자식이 맞을 짓을 했으니 그런 게지요. 제가 자식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오히려 담임인 내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말씀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난해 봄인가 동창회 모임을 위해 학교에 온 그 학생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마흔이 넘어 중년의 티가 몸에 배인 그는 목사가 되어 천안의 모 교회에서 목회활동과 사회봉사활동을 겸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때 어머니의 말씀도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학교 동창회에서 어려운 학생의 가정에 쌀 한 포대씩 나누어 주도록 한 적이 있었다. 생각나는 학생의 집을 몇 번 방문했었지만 아무도 없었는데 그날은 학생의 어머니가 계셨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쌀을 마루에 놓고 떠나려고 할 때 차문을 열고 “안녕히 계십시오”하는 순간 어느새 준비해 오셨는지 검은 비닐봉투에 계란 몇 알을 가지고 가라 하신다. 안 받으려 차 창문을 닫는 순간 그 어머니는 그 봉투를 던지듯 의자에 내려놓았다. 삶은 것도 아닐 텐데 깨졌겠구나 생각하면서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었다.
학교에 와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서너알 중 하나는 깨져 있어 알을 손에 묻혀가며 먹은 적이 있었다.
나는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 그 어려운 가정에서 담임이 왔다고 계란을 주신 그 마음이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은 내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교사가 아닌 것이 정말 고맙다.
첫째로는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이곳이 좋고 또한 물질적인 촌지의 유혹을 받지 않아 좋고 마지막으로 교사의 말이라면 순순히 따르는 심성 좋은 아이들이 있어 좋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지만 모두 함께 어려웠으니 위축되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
송악고 교사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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