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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외길⑤ 문화 안내자인 전업작가 도예가 양광용

손끝에 닿는 예술, ‘비움’의 미학 김태숙l승인2007.03.12 00:00l(6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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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문화적으로 궁핍한 사회에 살면서 스스로 문화안내자가 되어 저변을 넓히고 있는 전업도예작가 양광용씨.  
 

“문화는 고급 장식장 속이 아니라 당신의 입술이 닿는 찻잔 속에 있다”

작가가 작업만 하기엔 팍팍한 문화토양, 문화 안내자 몫까지 맡아
도자기 체험 학습관ㆍ도자기 갤러리 손수 짓고... 이제는 작업 중

도예가 양광용. 그의 일은 무언가 잘 만드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일은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 ‘비우는’ 것이란다. 그가 비운 것에 다른 누군가 무언가를 채워 넣을 때 그의 작업은 의미를 완성한다고. 게다가 그릇을 잘 비우려면 잘 비우려는 욕심까지 잘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렵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섭리와 관계를 통찰하여 그 앞에서 자기의 자리를 아는 것. 그것이 작가의 냉철함이리라. 또한 어쩌면 이러한 냉철한 자각에서 그의 기다리는 여유와 겸손은 나오는 것이리라.

 2001년, 나이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전국 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기이성으로 전국과 당진을 떠들썩하게 했던 양광용(40)씨. 어느날 그의 작업장 「벌수도예」로 불쑥 찾아갔다. 다듬지 않아서 덥수룩한 수염에 도자기 흙이 튀어 여기저기 얼룩이 진 잠바를 걸치고 있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큰상을 받았다고 젠체하는 기색 없이 늘 매사에 부지런하고 열심이라는 인상을 주었던 그때처럼 그는 늘 일하고 늘 구상하고 늘 자신의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도 많았다. 2005년 지방비 지원을 받아 세운 도자기 체험 학습관과 도자기 갤러리가 그의 억센 노력과 섬세한 손끝으로 다듬어져 있었고 그의 아이들, 한규(12), 한솔(9), 은서(6)가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도예가인 그의 아내 조천재(36)씨는 엄마노릇, 아내노릇에 작업까지 하느라 지칠 만한대도 여전히 고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들과는 간간이 얼굴을 보며 살아온 터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마주앉아 속깊은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지라 모처럼의 재회가 다정하고 흥미로왔다. 작업실 밖에서는 때늦은 추위와 눈발이 어둠을 재촉하고 있었지만 도예가가 구운 상큼한 찻잔에 커피를 마시자니 평범한 커피가 그저 그윽하기만 했다. 이렇게 손끝에 닿는 것, 내 입술에 닿는 어떤 것이 그윽한 의미를 지닐 때 이 순간이 그윽해지고 삶에 은근한 기쁨이 감도는 것이었다. 양광용씨도 그것을 이야기했다. 문화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먼 곳에, 혹은 고급 장식장 속에, 그저 눈으로 보는 것 속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체험하고 느끼고 그것을 즐기는 순간, 자기 삶에 온전히 젖어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여 나는 얼마전 선물로 받은 찻잔을 아끼느라 포장을 풀지도 않고 모셔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졌다. 진작 그 잔으로 차를 마셨더라면 나는 벌써 이같은 그윽한 시간을 즐긴 터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애써 행복한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이야기는 어느덧 우리 문화풍토에 관한 것으로 옮아갔다. 전업작가로서 살아가기에 녹녹지 않은 우리의 풍토와 환경. 앞뒤 생각없이 작품 만드는 일에만 골몰하자면 생계가 오간 데 없어지는 팍팍한 상황. 가장으로서도 생활인으로서도 무책임해지는 현실. 그렇다고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든 수요자와 직접 연결하는 일에 나서면 상업적이라고 격을 낮춰버리는 삐딱한 시선들. 작품과 상품을 가르고 작가와 상업미술가를 나누고 생활과 예술을 나누고... 도무지 조화와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이분법의 논리와 구조 속에서 작가들은 쉽게 추앙받고 그러다가도 너무 쉽게 매도당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양극문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말로는 문화국민, 문화시민이라고 하지만 문화를 자기의 실생활과 한 칸은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는 전시성 문화가 여기저기 배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화생산자와 수요자 사이에 가장 두텁게 형성되어 있어야 할 문화매개자, 혹은 안내자층이 너무 얄팍하다는 게 그 원인이다. 말하자면 문화매니저들이 없는 것이다. 결국 작가들이 매니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작가와 수요자를 연결할 매개자가 없는 지점에 우리가 서있다. 그것은 결코 작가의 책임이 아니다.

 양광용씨가 자기작업에만 간단하게 몰두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이러한 문화적 궁핍 때문이다. 사회가 작가에게 떠넘긴 문화안내자의 역할을 그가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자신의 책무로서 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체험을 할 줄 모르는가. 자기 손으로 만드는 일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평가받는다는 강박관념에 늘 사로잡혀 있다. 체험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선생님과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시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주저하다가 시간만 때우고 돌아갈 뻔 한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보고서도 모른 척 한다면 작가가 아닐 것이다. 양광용씨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체험에 뛰어들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작가만의 섬세한 노하우로 아이들을 격려하고 지원한다. 그리하여 어떤 쾌감과 희열을 느낀다면 아이는 문화와 예술을 체험한 것이다. 이것이 문화를 이해한 시민을 기르는 일이고 이런 체험을 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넘칠 때 그때가 비로소 작가가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때가 아직 멀어 보인다.               

 양광용씨는 2005년 자신의 아까운 시간, 두 해를 도자기학습관을 짓는 일에 쏟아부었다. 자기작업으로 마음을 돌이키고 추스르는 데 다시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생활의 자원은 모두 바닥나 지난 겨울에는 난방기름도 한 통씩 간신히 조달해 써야만 했다. 작가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외양에 비해 한없이 궁핍한 우리문화가 빈곤을 벗어날 수 있다면 전업작가 뿐 아니라 문화안내자의 역할까지 감당할 용의가 있다. 그것이 그가 서있는 시대의 조건이자 한계이기 때문이고 그것마저 사랑하는 게 진정 작가가 가야하는 쓰라린 길인 걸 알기 때문이다.

 밤바람이 찼다. 타인들을 배려한 공간 「벌수도예」는 커졌지만 정작 아이 셋과 사는 그의 단칸방이 너무 단촐하다. 방 한 칸으로도 가운데 오밀조밀 책꽂이를 쌓아 침실과 거실을 나눈 살뜰한 정성이 아름다웠다. 현관을 열어 찬바람을 뒤집어써야 다녀올 수 있는 화장실을 마다않는 아이들. 우리가 장식장에 가둬놓는 도자기로 녹차를 따라 마시는 꼬마 아이들이 자유로와 보였다. 이제 여섯 살배기 막내딸 은서에게는 50분 거리인 유치원과 집 사이를 혼자서도 즐겁게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강단과 여유와 흥이 있다. 까닭없는 분주함을 저만치 벗어나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부럽다. 한 때 도예가가 꿈이었다가 ‘아빠가 자주 밤을 새워서 싫어졌다’는 큰아들 한규. 학교 다녀오면 학원 대신 아빠의 작업실로 달려가 열심히 공룡을 만드는 둘째 한솔이. 미안하고 그저 고마운 아내. 그리고 벌수도예. 그간 열정과 정성으로 가꾸어온 이곳 베이스캠프에서 양광용씨는 이제 다음 단계의 행군을 시작하고 있다. 그 뜨거운 밤 위로 시린 겨울의 마지막 눈이 내린다.

양 광 용

 *수상경력
 2001.08 제 31회 전국 공예품대전 대통령상 수상
 2000.10 충남 공예품대전 동상
 1999.10 전국 공예품대전 장려상
           전국 공예품 대전 입. 특선 8회

 *전시경력
 2005 젊은작가 초대전 (나눠요 갤러리)
 2004 2004한-프 도예페스티발
       (아드레아드뷔시 국립도자박물관/프랑스)
       2004한-스 도예페스티발
       (바로셀로나 국립박물관/스페인,비스발)
 2003 한국전업도예가협회전 (인사아트플라자)
        한국미술협회 당진전, 학동인전(수선화공간, 군민회관)
        2003 한국관광전 (일본,다루마야세이 백화점 특설관)
 2002 2002 프렌지 페스티벌 (대전, 엑스포 전시관)
 2001 서 일본 도자기 박람회 (일본, 기타쿠슈)
       전국공예품대전 수상작 전시관 (서울 코엑스 인도양홀)
       2001 도자기 엑스포 (경기, 이천)
 2000 한·일 도예 페스티벌 (일본, 고이에 가마 갤러리)
 1999 청주 공예 비엔날레 (충북, 청주)
       봄의 열림 전 (서울, 가나아트)
       세번째 생활속의 여유로움 전 (서울, 핸즈앤마인드)
       정월 상차림 전 (서울, 통인화랑)
 1998 서울 오픈 아트페어 (섬유센터 갤러리)
       두번째 생활 속의 여유로움 전 (서울, 통인화랑)
 1997 생활 속의 여유로움 전 (서울, 통인화랑)
 1996 학동인전, 당진미협 창립 전 (당진, 수선화공간)
 1995 명지 그릇전 (서울, 예당)

 ·현  재 : 벌수도예 운영, 한국전업도예가협회
 ·사는곳 : 충남 당진군 고대면 성산2리 산145-15번지
 ·연  락 : 작업실 (041) 352-7531 HP 011-9800-7531
 ·이메일 : ylk2y3@nate.com

 


김태숙  ts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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