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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3.19 00:00
  • 수정 2017.08.14 06:00
  • 호수 654

강사용 전농 충남도연맹 부의장
"험난했지만 빛나는 농민운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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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에서 생명의 근원은 농업이다. 지금은 한미FTA 협상에서 거래되는 흥정거리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지만 수천년 동안 이 땅의 농업은 만백성의 생명을 책임지고 경제활동의 근본을 맡아왔다. 농업이, 농민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이 땅의 미래가 위협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농민운동을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 험하고 위태롭기만 한 가시밭길이었지만 한 번도 이 길을 후회한 적 없다.

 첫 번째 사진은 1971년, 19살 때 옥현리의 옛집에서 찍은 것이다. 아래 집에 살던 사촌누님(강사복), 대전에 살던 생질(맹선영)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촌누님과는 여전히 서로 오가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당시 나는 농사를 지으며 4H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농촌에 꿈과 희망을 갖고 활동했다.

 두 번째 사진은 같은 해, 4H 회원들과 함께 대전시 유성구 농업진흥원에서 열렸던 충남도 경진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모습이다. 당시 4H회는 활동이 매우 활발했고 회원들은 그 속에서 부농의 꿈을 키웠다. 경진대회에서 당진군 4H는 쌀 다수확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이 때 경진대회는 3박4일간 열렸는데 우리들은 유성 풍전호텔에 투숙하며 경진대회에 참여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맨 왼쪽이 나고 그 오른쪽으로 고영대, 한기홍, 이상복, 앉은 이가 김태준이다. 맨 오른쪽에 계신 분은 4H 후원회장이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세 번째 사진은 1990년, 우리 마을을 찾은 농활대와 간담회를 가질 때의 모습이다. 맨 오른쪽이 나고 그 옆으로 당진군농민회장을 역임했던 서흥석 전 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지내던 나는 가혹한 농업말살 정책에 분노해 카톨릭농민회에 가입하면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군사정권 시절에 시작한 농민운동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꿨다.
농민운동을 시작하면서 농활대를 맞아 함께 일하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농업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비록 온갖 탄압을 받아야 했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이 때야 말로 무척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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