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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초보중학생 종훈이의 꿈과 일상, 그리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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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라 불리는 한 소년의 중학교 입성기

▲ 아버지는 종훈이의 재능과 가능성이 환경때문에 묻혀 버릴까봐 걱정하면서도 사실은 종훈이가 재능만 있는 외곬수가 되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종훈이에게는 성실과 책임성을 먼저 가르친다.

 

호서중학교 1학년 재학중

이흥기·황향순씨 2녀1남 중 둘째

 

“중학교 오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아요”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하지만 꿈은 있어요”

 

 종훈이(13)는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이다. 종훈이 엄마 아빠는 종훈이를 평범한 아이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지만 주위에는 종훈이가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종훈이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봄날 늦은 오후 종훈이네를 찾아 길을 나섰다. 

 종훈이가 그저 평범하기만 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이의 긴 수상경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송산면 유곡에서 졸업한 종훈이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매우 우수한 학업성적을 냈고 여러 분야의 경시대회에 학교대표로 출전해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다. 그 분야도 독서, 과학, 컴퓨터, 한자, 수학, 영어, 백일장, 국토정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기 짝이 없었다. 그중 전국단위의 수상경력만 보아도 대통령기 독서경진대회 입상, 한국수학학력평가원 평가 금상, 성균관대학총장 수학능력 1등급 인정서 획득, 중앙일보 헤럴드 후원 ‘이스턴영어경시대회’ 전국 최우수상 등 분명 눈에 띄는 이력을 가진 아이였다. 상훈에는 선행상과 봉사활동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종훈이는 6학년때 친구들의 추천으로 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학생회장 활동도 성실하게 잘 수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종훈이를 둘러싼 주변의 관심은 그 아이가 여섯 살 때 전문기관으로부터 ‘영재’ 진단을 받은 아이라는 데 있었다. 다행히 그동안 종훈이가 학교와 주변 어른들의 관심 속에서 자기 재능을 발휘하며 무탈하게 잘 자라주긴 했지만 지금 그 아이가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변화무쌍한 사춘기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어른들에게는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종훈이가 이 시기의 변화와 격정을 잘 넘겨 인생에서 넘어지지 않기를, 또한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잘 키워 사회를 이끌거나 보살피는 훌륭한 성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이다.

 작년까지 송산면 동곡리에 살았던 종훈이네는 종훈이 누나의 성화로 당진읍에 이사해 원당리 부경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종훈이네를 찾았을 때에는 길어진 해거름과 저녁을 재촉하는 바람으로 아파트 정원 목련꽃이 눈부시게 흔들렸다. 목련은 종훈이처럼 아직 어린나무였다. “아유, 뭐 특별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찾아오셔서 어떡해요.” 종훈 어머니 황향순(41)씨는 현관문을 열어 우리를 맞이하면서도 멋쩍음을 감추지 못했다.

 종훈이네는 평범하고 단촐한 집이었다. 가구도 과감하게 생략해서 거실이 시원하고 널찍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거실에 TV가 없다는 것이었다. 소파 맞은 편에는 TV대신 갖가지 생활용품을 진열해 놓은 커다란 진열장이 놓여있었다. 이것은 종훈이 아빠가 하고 있는 유통네트워킹 사업에 필요한 제품들이었다. 그러니까 종훈이네 거실은 작은 사업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종훈이 엄마아빠는 2녀1남인 아이들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본업 외에도 이렇게 다른 사업을 통해 수입을 보충하고 있었다. 종훈이 아빠 이흥기(43)씨는 현대제철에서 하역일을 하고 있었는데 2교대 근무를 하면서 근무가 없는 시간이면 잠을 아껴 네트워크사업을 하느라 바빴다. 

 

 햇빛 잘 드는 거실은 종훈이 엄마의 문인화 습작실이기도 했다. “배운 지 1년밖에 안됐어요.” 종훈이 엄마는 쑥스러워 했지만 거실 군데군데 걸린 문인화 작품은 집안 분위기를 더욱 맑고 차분하게 해주고 있었다. 

 종훈이네 집에는 허세와 낭비의 흔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단순했다. 구석구석에 생활의 필요와 절제에 입각한 여러 요소들이 종훈이네만의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종훈이 방만 해도 그랬다. 이집에서 제일 작은 종훈이 방에는 작은 침대와 책장, 책상이 있었는데 공간을 아끼느라고 침대발끝에 얼굴과 마주보도록 올려놓은 책장을 보니 ‘아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의 필요로 자연스럽게 조성된 이 분위기가 종훈이에게는 독서하기에 맞춤인 상황이 된 것이다. 뭐든 가까워지려면 늘 보아야 한다는 말처럼 늘 잠자는 침대발치에 놓여있는 책은 종훈이에게는 밥만큼이나 자주 보는 어떤 것이었다.

 

 종훈이는 늘 그랬던 것 같았다. 엄마 황씨에 따르면 종훈이는 특별히 자신을 위해 마련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하고싶은 일을 찾아냈고 어느 날 문득 보면 무언가를 잘 하고 있는, 그런 아이였다. 워낙 무던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늦어서 한때 모자란 아이가 아닌가 했었다는 종훈이. 농사일로 바쁜 엄마가 누나를 위해 틀어주었던 한글ㆍ영어 비디오 테입을 어깨너머 유심히 보더니 네 살 때부터는 한글과 영어를 깨쳐 버렸다. 형편도 넉넉지 않았지만 장난감 하나, 딱지 한 장 사달라고 조르는 법 없이 집에 있는 책들 가지고 조용히 잘 노는 아이였다. 그런 종훈이에 관해 어느 날 유치원에서 놀라운 연락이 왔다. 종훈이에게 영재성이 있으니 전문진단을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전영재연구소는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 후 종훈이를 영재로 인정했다. 4학년 때에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영재테스트를 통과했고 5학년때에는 순천향대학교 영재학교에 심화학습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으나 거리가 멀어 1년만에 그만두었다.   

 “종훈이가 영재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늘 조심스러웠죠. 자식 잘되길 바라지 않는 부모는 세상에 없겠지만 저 역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이고 혹시나 하는 염려가 더 컸지요. 학교에도 종훈이 인성에 더 신경써 달라고 부탁을 많이 드렸어요.”

 아버지는 작은학교의 장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종훈이가 송산 유곡초등학교라는  작은학교에 다녔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던 같아요. 그때 다방면에 걸친 경험도 할 수 있었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하나하나 신경쓰며 지도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종훈이가 돌아왔다. 호서중에 다니는 종훈이는 덩치도 꽤 컸고 의젓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쑥스럼이 많은 어린 소년이었다. 종훈이는 취재를 몹시 난처해 했다. “뭐 내세울 것도 없는데...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구요.” 겸손한 종훈이를 보면서 안도감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종훈이는 조심스럽지만 주저없이 또박또박 자기생각을 이야기했다. “저는 사회과목이 좋아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는 것도 재미있고, 우리나라와 여러 지형을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나중에 외교관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종훈이는 학생수가 많고 과목마다 선생님이 바뀌는 읍내중학교가 아직 낯설다. “중학교 오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아요.” 그리고 엄마아빠 몰래 컴퓨터게임 허용시간을 슬쩍 넘기기도 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하며 뛰어노는 게 좋은, 평범한 아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훈이는 부담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주변의 기대를 느끼고 있었고 자신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었다. 벌써 가끔은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1학년이고 해서 생각을 잠시 접어놓는다. 종훈이 엄마아빠는 엄마아빠대로 종훈이에게 기회가 왔을 때 가정형편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종훈이의 경우 독지가의 도움이나 후원을 받아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서 교육을 받는다면 분명 훌륭한 일꾼으로 클 것이라고 말한다. 종훈이는 아직 어리고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 그 가능성을 향해 가는 것은 종훈이지만 종훈이 혼자만의 몫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그것과는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종훈이네 가족은 행복해 보였다.

글 김태숙 / 사진 최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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