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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문구 조수용씨 “울트라마라톤이 내 인생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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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가지않은 길, 도전과 모험으로 싱싱해진 중년의 삶

▲ “내 인생은 울트라마라톤, 내가 도전하는 것은 속도의 한계가 아니다. 스스로 길을 찾는 두려움과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고통을 의연하게 견디는 훈련만이 인간을 진정한 삶의 전사로 만들어간다.

 강화에서 강릉까지 논스톱으로 64시간 한반도 종단 308㎞ 완주 마쳐
 아내ㆍ두딸과 함께 떠나는 ‘지리산종주’는 7년째 이 가족의 여름방학 필수코스

 삶을 바꾸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실행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마음먹어도 실행에 옮기지 않은 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에 한 털끝의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조수용(44)씨가 마음먹었던 바를 실행에 옮겨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안면도꽃박람회가 열렸던 2002년이었다. 밤낮으로 문구점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직업상 아주 오랫동안 운동을 마음에만 담아놓고 살았다. 꽃무리 화사한 눈부신 봄날은, 건조한 자기자신과의 싸움인 마라톤을 시작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었다.
 이날 하프 코스(Half Course)에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조씨의 마라톤 역정은 시작되었다. 바쁜 틈틈이 인터넷을 뒤졌고 주말이면 마라톤경기가 있는 곳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그런 그에게는 늘 가족들이 함께 있었다. 부인 강영임(44)씨는 부인대로, 두 딸 아라(18)와 설아(15)는 아이들 대로 각기 마라톤 경기에 함께 출전했다. 변함없는, 그리고 남과 다름없는 일상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마라톤 체험은 매번 힘들었고 매번 새로웠다. 낮시간을 낼 수 없어 매일 밤 문구점 문을 닫은 뒤 당진읍내에서 고대면 공설운동장까지 뛰어갔다 오는 것으로 연습을 대신했지만 경기 출발선에 섰을 때 설레는 마음과 밀려오는 막막함은 생전 처음 달리는 사람같은 낯설음을 느끼게 했다. 그 익숙해지지 않는 도전감이야말로 마라톤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늘 기록을 재는 마라톤은 매번 이전의 기록보다 나아질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게 되었고 ‘속도 갱신’에 대한 묘한 부담을 낳았다. 마라톤에 대해 가졌던 무한한 매력도 살짝 앗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조씨에게 다가온 것이 있었다. 속도개념 없이 정해진 시간동안 스스로 코스를 찾아 정해진 구간을 완주하는 ‘울트라마라톤’. 2003년부터 그의 울트라마라톤 여정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마라톤 풀코스가 42.195㎞라면 울트라마라톤의 코스는 100㎞, 150㎞, 200㎞, 300㎞ 등 다양하다. 지난 3~4년간 조씨가 참가한 울트라마라톤 대회는 대략 20개가 된다. 울트라마라톤은 완주할 거리가 길어질 때마다 극복해야할 과제가 늘어난다. 때로는 며칠밤을 잠자지 않고 뛰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길까지 잃어 냉혹할 만큼 깨어있지 않으면 정말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치고 길을 잃어 주저앉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 반드시 러닝메이트를 만들어 함께 뛰어야 할 때가 있다. 이러한 승리의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울트라마라톤에서 요구되는 기본자세인 것이다. 조수용씨 울트라마라톤의 하이라이트는 2005년 한반도횡단 308㎞ 도전기였다.

서해에서 동해까지 308㎞를 횡단하다
  2005년 추석, 조수용씨 가족은 특별한 연휴를 맞이하고 있었다. 조씨가 1년간 마음먹고 있던 한반도 횡단 308㎞ 울트라마라톤에 첫 도전장을 낸 것이다. 서해부터 동해까지, 강화도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64시간(만 이틀과 16시간)을 논스톱으로 뛰었던 이 코스는 아직도 조씨 가족에게 눈물나는 고통과 가슴벅찬 감동으로 살아있다. 
 출발하는 날부터 이틀간 내내 비가 내려 부상자가 줄을 이었다. 젖은 운동복이 젖은 살갗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상이 되었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새 이틀가량은 잠을 자지 않은 채 달리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가운데 200㎞ 지점을 막 통과했을 때였다. 강원도로 접어들어 고갯길이 많은 그곳에서 조씨는 어느 고개엔가 잠시 쓰러져 있었다. 간신히 걸음을 옮겨 수돗물로 머리를 적시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이 조씨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었다. 그 손은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갈 수 있어, 충분히 갈 수 있어.”
 마치 하느님이 주는 것과 같은 격려에 힘을 얻어 다시 걷고 달렸다. 그런데 280㎞ 지점에서 다시 험한 고개, 대관령이 나타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5명이 일행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산자락의 추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벽이 되고 지붕이 되어 고갯길 위에서 20분간 눈을 붙였다. 천국같은 20분이었다. 막상 고갯길은 올라갔지만 발가락끝에 부상을 입은 조씨에게는 험한 대관령 내리막길이 문제였다. 걸을 수도 뛸 수도 없는 상황. 조씨는 자신이 어떻게 내려왔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 뒤의 드라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뿐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길. 15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조씨는 강릉방면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끝이 있음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목표에 이르는 길  
 울트라마라톤을 통해 조씨가 얻은 것은 자신감과 삶의 즐거움이다. 시작된 고난에는 끝이 있으며 서두른다고 고난이 빨리 가주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자기속도에 맞게 천천히 가고 올 뿐이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나니 삶이 여유롭고 작은 일 하나가 즐겁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목표다. 그것만 놓치지 않으면 아무 일 없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조씨의 이런 사고방식은 두 딸에게도 전해졌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보름간의 국토순례대행진에도 참가했고 아빠엄마와 함께 마라톤에도 참가했다. 벌써 7년째 여름방학 지리산 종주는 이 가족의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시켰죠. 하지만 이 다음에 살아가는 데는 큰 밑거름이 되리라고 봅니다.”
 남보다 빨리 가길 원하고 속도를 중시하는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조씨는 아이들 교육도 그런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천천히, 남과 더불어 가길 바라는 마음에 대안학교도 여러 곳에 가보았고 실제로 그곳에 입학시킬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 엄마가 마음을 먹지 못했다.
 비록 평범하게 자라지만 아이들이 인생의 방향을 잘 잡고 천천히, 남과 더불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 역시도 울트라마라톤의 ‘죽음의 고비’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힘을 얻었듯이 누군가에게 작지만 필요한 힘이 되고 싶다.
 남보다 일찍 고생을 시작해 20년째 한자리에서 천천히, 묵묵히 일교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수용씨. 한반도횡단에 이어 언젠가 ‘한반도 종단’에 도전하리라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레고 벅차다.

글/김태숙, 사진/최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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