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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면 옥현리 이희용 할아버지 백수(白叟) 앞둔 고령에도 자전거 타고 훌~훌 읍내나들이

“건강비결? 다 부모 덕이고 자식 덕이지 맘을 잘 써야 인생 탈이 없어” 김태숙l승인2007.05.28 00:00l(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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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뭐 있겠어?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떠나는 거지
           

 고대면 옥현리에 사는 이희용(96세) 할아버지는 올해 아흔여섯 되신 고령의 어르신이다. 백순을 내다보는 나이인데도 다부진 몸 어디 하나 굽은 데 없이 정정하고 꼿꼿하시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인데 귀에다 가까이 대고 말하면 그 또한 다 알아들으신다. 먼저 세상을 뜬 부인의 기일이 몇년 몇월 몇일인지, 자신이 몇 살 때 무슨 일을 했는지 일일이 다 헤아리면서 얘기할 만큼 기억력도 또렷하다. 논밭을 가꾸는 일도 장정 못지않게 거뜬히 해내시고 갑갑증이 생기는 낮시간에는 자전거를 꺼내타고 휭하니 당진읍내까지 다녀오는 일도 할아버지에게는 그저 예삿일이다.     

 이른 아침 6시.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씻고 정돈하고 자리에 앉아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나이 되도록 교회에 나가본 일은 없지만 아침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소망을 바친다. 이 기도가 시작된 데에는 내력이 있다. 10년전 큰아들 재국씨가 먼저 저세상으로 간 뒤 매일 이렇게 아침을 시작한 게 이제는 생활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종손으로서 집안을 통째로 떠받들고 있던 대들보 장남의 죽음은 온가족과 할아버지에게 큰 충격이었다. 적지않은 농사채와 집안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자리를 보아드리며 깎듯이 문안을 여쭙던 아들이었다. 이때부터 할아버지가 올리기 시작한 기도는 바로 자손들을 위한 것이다. 자손들의 건강과 무탈함과 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기도다. 할아버지의 생활신조는 순리(順理)와 무욕(無欲)이다.
 “사람팔자는 본디 생긴 그릇대로 가는겨. 그릇이 작은 사람은 작게, 그릇이 큰 사람은 크게, 종재기 만하면 종재기 만한대로 사는 거지. 그게 순리여. 그래서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지 억지로 거스르면 안되는겨. 그리고 절대 남을 해치면 안되지. 본인 대가 아니면 자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되받으니까 항상 맘을 잘 먹고 살아야 되는겨.”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에게는 그다지 거칠 것이 없다. 요즘말로 스트레스 될 만한 일이 없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마음이 옹색하지 않은 대신 누구에게건 바른 소리는 잘 하시는 편이다. 순리에 맡기니 거침없고 거침이 없으니 담아둘 게 없는 것이다.        

 아침 일곱시에서 여덟시 사이에 할아버지는 조반을 드신다. 음식에 대한 탐이 없는 할아버지는 늘 소식(少食)을 하시는데 대신 한끼도 때를 놓쳐 드시지는 않는다. 식사 후 할아버지는 소일 삼아 집앞 텃밭을 돌아보거나 일을 거들기도 하고 정미 방향으로 있는 밤동산을 둘러보기도 한다. 이제는 큰 아들 대신 할아버지가 집안 큰일을 직접 관리하신다.

 이런 때 할아버지의 요긴한 교통수단은 바로 자전거다. 열여섯살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수많은 일을 했다는 할아버지는 아직도 망설임없이 자전거를 꺼내 타고 다니신다. 갑갑증이 심할 때는 숫제 자전거를 타고 먼 당진읍내까지 자전거 산보를 나가신다. 오랫동안 그렇게 당진나들이를 했는데 요사이는 가까운 데만 자전거를 타고 나가신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늙은이가 너무 주책이라고 할까봐’ 그러신다고 말하며 웃으셨다. 지나친 것을 스스로 삼가고 주변을 배려하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할아버지의 마음이 늘 넉넉한 것은 먼저 베푸는 이런 마음 때문이었다. 손주들에게도, 이웃들에게도, 경로당 같은 데서 만나는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할아버지는 받기보다 주기를 먼저 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것은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노인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야 작은 것이라도 베풀 수 있고 그래야 말년이 궁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고맙고 뿌듯해 하셨다. 젊어서 고생한 보람도, 자손들이 잘 살아줘서 걱정이 없는 것도 모두 고마울 뿐이었다. 특히 남편을 여의고 시아버지 모시느라고 고생인 며느리, 할머니 대접을 받을 나이에도 그저 며느리일 뿐 제대로 할머니 대접을 못받는 큰며느리 김창남(75)씨에 대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셨다. 
 할아버지는 요새 오전 11시 10분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셨다가 오후 네시쯤 집으로 돌아오신다. 저녁 식사 때까지 논일 밭일 돌보는 것도 이 시간부터다. 어제도 뒷산에 물을 한 통 지고 가서 고구마를 심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잠자리에 들 때 할아버지는 또 한번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여전히 자손들을 위한 한결같은 기도다. 할아버지에게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바라는 것도 없다. 소망은 단 한가지, 자손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날이 언제건, 누구에게도 고통을 남기지 않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건강비결이 따로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건강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재산이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가족과 자손들 덕분이라고 생각하신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무위(無爲)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진대 백순(百旬)에 가까워진 이희용 할아버지는, 온갖 생각과 채우지 못한 욕망에 대한 집착들로 가득차 술렁이는 우리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사뭇 다른 세계에 사는 분 같았다.
 


김태숙  ts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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