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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기 송산면 가곡리 성구미번영회장
"꽃게, 새우, 민어 잡던 그 시절, 그 바다"

유종준 기자l승인2007.05.28 00:00l(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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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송산 성구미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평생 생활의 모든 것을 바다에서 구했다. 바다는 그 때마다 넉넉한 품으로 일용할 양식을 제공했고 뭍에서 들어온 온갖 오물을 정화했다. 평생을 바다와 같이 한 뱃사람으로서 이제 각종 개발로 나날이 오염되고 있는 바다를 볼 때마다 마음 아프기만 하다.

 첫 번째 사진은 1982년 8월, 성구미 바닷가에서 아내 표완숙, 딸 정화와 함께 어구를 손질할 때 찍은 것이다. 손질하고 있는 어구는 낭장그물로 우리는 주로 낭장이나 통발을 주로 이용해 고기를 잡았다. 이처럼 고기잡이가 끝나면 어구를 손질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갯벌에 나가 굴이며 낙지, 조개를 잡기도 했다. 

 두 번째 사진은 1985년 배 타고 나가서 키를 잡고 있을 때의 모습이다. 이 당시는 지금과 같은 조타실이 따로 없었고 키를 이용해 배의 방향을 잡았는데 이 키를 이곳 뱃사람들은 창나무라고 불렀다. 고기가 잘 잡혔던 이 시절, 더 투자해서 배와 어구를 늘리면 큰돈을 벌 수도 있으련만 우리는 욕심도 내지 못했다. 가난하던 때이기도 했고 그렇게 약게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 사진은 당시 바닷가에 놀러왔던 한 대학생이 찍어 보내준 것이다.

 세 번째 사진은 1979년 10월, 그러니까 내 나이 26살 때 성구미 앞바다에서 꽃게잡이를 끝내고 들어와 찍은 것이다. 가운데 밀짚모자를 쓰고 붉은 옷을 입은 이가 나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한 나는 처음 노 젓는 작은 배로 고기를 잡기 시작해 일명 육상기, 즉 방아 찧는 데 쓰던 엔진을 장착한 배를 탔고 나중에 제대로 된 해상기, 즉 선박 전용 엔진을 장착한 배를 탈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배는 3톤짜리 해상기를 갖춘 동력선으로 우리는 바다에서 낭장그물을 이용해 꽃게와 새우, 간재미, 민어, 농어, 우럭, 광어, 도다리 등을 잡았다. 근방에서도 알아주는 황금어장이었던 관계로 출어했다 하면 항상 만선이었다. 

 


유종준 기자  jjyu@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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