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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07.05.28 00:00
  • 수정 2017.08.14 06:02
  • 호수 664

우동기 송산면 가곡리 성구미번영회장
"꽃게, 새우, 민어 잡던 그 시절,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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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송산 성구미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평생 생활의 모든 것을 바다에서 구했다. 바다는 그 때마다 넉넉한 품으로 일용할 양식을 제공했고 뭍에서 들어온 온갖 오물을 정화했다. 평생을 바다와 같이 한 뱃사람으로서 이제 각종 개발로 나날이 오염되고 있는 바다를 볼 때마다 마음 아프기만 하다.

 첫 번째 사진은 1982년 8월, 성구미 바닷가에서 아내 표완숙, 딸 정화와 함께 어구를 손질할 때 찍은 것이다. 손질하고 있는 어구는 낭장그물로 우리는 주로 낭장이나 통발을 주로 이용해 고기를 잡았다. 이처럼 고기잡이가 끝나면 어구를 손질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갯벌에 나가 굴이며 낙지, 조개를 잡기도 했다. 

 두 번째 사진은 1985년 배 타고 나가서 키를 잡고 있을 때의 모습이다. 이 당시는 지금과 같은 조타실이 따로 없었고 키를 이용해 배의 방향을 잡았는데 이 키를 이곳 뱃사람들은 창나무라고 불렀다. 고기가 잘 잡혔던 이 시절, 더 투자해서 배와 어구를 늘리면 큰돈을 벌 수도 있으련만 우리는 욕심도 내지 못했다. 가난하던 때이기도 했고 그렇게 약게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 사진은 당시 바닷가에 놀러왔던 한 대학생이 찍어 보내준 것이다.

 세 번째 사진은 1979년 10월, 그러니까 내 나이 26살 때 성구미 앞바다에서 꽃게잡이를 끝내고 들어와 찍은 것이다. 가운데 밀짚모자를 쓰고 붉은 옷을 입은 이가 나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한 나는 처음 노 젓는 작은 배로 고기를 잡기 시작해 일명 육상기, 즉 방아 찧는 데 쓰던 엔진을 장착한 배를 탔고 나중에 제대로 된 해상기, 즉 선박 전용 엔진을 장착한 배를 탈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배는 3톤짜리 해상기를 갖춘 동력선으로 우리는 바다에서 낭장그물을 이용해 꽃게와 새우, 간재미, 민어, 농어, 우럭, 광어, 도다리 등을 잡았다. 근방에서도 알아주는 황금어장이었던 관계로 출어했다 하면 항상 만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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